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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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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기록하다 푸틴에게 살해된 작가

포화에 휩싸인 삶에서 그가 남긴 미완의 원고 ‘여성과 전쟁’
등록 2025-07-31 21:49 수정 2025-08-04 10:17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2022년 2월24일, 빅토리아 아멜리나는 10살 아들 안드리와 함께 이집트를 여행하고 있었다. 여행 가이드는 한 석상 앞으로 이들을 데리고 간 뒤 주위를 일곱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어보라 했다. 안드리가 그대로 하자 가이드는 “무슨 소원을 빌었어?”라고 물었다. 아멜리나가 대신 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죽는 게 아들 소원이에요.”

아멜리나는 조지프 콘래드 문학상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인권운동가였다. 전쟁이 일어난 뒤 그는 전쟁범죄 조사원이 되기로 했다. 아멜리나는 비정부기구인 ‘트루스하운즈’(Truth Hounds)에서 국제인도법의 원칙 등을 배운 뒤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권변호사였지만 군에 자원입대해 드론 조종사가 돼야 했던 예우헤니아 자크레우스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 러시아군에 납치돼 고문당했지만 끝내 생존해 이를 진술하고 2022년 예순의 나이로 의무부대에 입대한 이리나 도우한 등과 같은 ‘평범하지만 동시에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전쟁 속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아멜리나는 “오직 진실을 밝히고, 기억의 생존을 보장하고, 정의와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는 이 일을 수행했다”며 “이 책에서 내가 우선적으로 탐구하려는 대상은 가해자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정의에 관해서 던지는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썼다.

책에는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우크라이나 곳곳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긴장된 삶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그러면서도 아멜리나는 이렇게 썼다. “전쟁에 살아남기 위한 명확한 규칙 같은 것은 없다. 권고사항을 지켜 제때 방공호에 가고, 구급상자를 소지하고, 아무리 대피하려고 노력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생존을 위한 규칙은 없지만 삶을 위한 규칙은 있다. 우리는 여전히 벌레를 구하고, 파란불에 길을 건너고, 예의를 지키고, 우아함을 잃지 않고,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아멜리나는 2023년 6월27일 우크라이나 크라마토르스크의 한 식당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 중상을 입었고, 7월1일 숨졌다. 향년 37. 아멜리나는 그때까지 ‘여성과 전쟁’(이수민 옮김, 파초 펴냄)의 60% 정도를 집필한 상태였다. 편집부가 최소한의 개입으로 원고를 완성했다. 2024년 볼테르상 특별상, 2025년 오웰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다. 496쪽, 2만원.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반타 펴냄, 1만7800원

세포를 나노봇으로 대체해 불멸의 존재가 된 인간, 그 덕에 몸을 얻은 인공지능(AI). 한 연구자에게서 시작된 일기가 불멸의 인간들, AI, 복제된 클론들에 의해 수백~수천 년에 걸친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국문학을 번역해 세계에 알려온 저자가 영어로 쓴 에스에프(SF) 소설. 그의 번역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가 역할을 바꿔 이 책의 한국어 번역을 맡은 과정도 흥미롭다.

 

 


내가 죽는 날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수오서재 펴냄, 2만원

조력 사망의 현장에서 써낸 죽음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기록. 저자는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지역들의 환자, 가족, 의료진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법제도 바깥에 숨겨진 인간의 고통과 결단, 연대의 현장을 포착한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어떻게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는지, 그 결정을 둘러싼 문화·제도·정서적 측면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왜의 쓸모
찰스 틸리 지음, 최지원 옮김, 유유 펴냄, 2만2천원

인간은 이유를 찾는 동물? ‘21세기 사회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저자는 모든 대화에는 이유를 제시하는 행위가 담겼다고 분석한다. ‘이유 제시’가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혜택과 불이익을 배분하고, 심지어 전쟁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분석해 사회적 상호작용의 구조를 탐구한다.

 


노키즈존 한국 사회 
장하나 등 지음, 교육공동체 벗 펴냄, 1만6천원

차 사고로 아이를 잃은 양육자가 더는 차 사고로 아이를 잃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한국 사회에 내어준 이름들이 있다. 민식이, 하준이…. 그 이름조차 ‘민식이법 놀이’ 같은 조롱과 혐오의 언어로 사용된다. 정치하는엄마들, 어린이책시민연대, 청소년인권단체 활동가인 저자들이 어린이·청소년 인권 존중 사회로 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글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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