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카메라로 붙잡지 않았더라면 문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사라져버렸을 한순간을 물리적으로 포획한, 차갑지만 차가울 수 없는 기록이다. 사진 속 장면은 정지된 시간이지만, 눈에 보이는 이미지 너머의 깊고 풍부한 진실이 담겼을 수 있다. 사진은 강력한 시각적 효과와 객관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왜곡과 선전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다룬 사진은 진실과 왜곡 가능성이 함께 내장된 양날의 칼이다. 촬영자의 신분과 의도, 프레임 속 피사체의 지위, 촬영된 사건의 배경 지식이 사진의 올바른 독해의 전제 조건이자 그 결실이 되기도 한다.
역사사회학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사진 분석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온 연구자다. 그의 작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 분단과 전쟁을 꿰뚫는다.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에 맞춰 펴낸 <작은 ‘한국전쟁’들>(푸른역사 펴냄, 1만7900원)은 사진과 영상물로 보는 ‘비주얼 히스토리’다. 지은이가 2017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을 수정·보완하고 다른 글 2편을 보탰다.
지은이의 문제의식은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사진에는 눈에 보이는 시각(視角)과 감춰진 사각(死角)이 존재한다. 둘은 “촬영자의 위치에 따라 구조적으로 결정”된다. 책은 한국전쟁 관련 스틸 사진 70여 장과 영상 캡처 사진 10장, 만화, 포스터, 지도 등 여러 이미지 자료를 엄선해 거기에 담긴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추적했다. 사진에 달린 캡션(사진 설명)도 진실 또는 오류나 왜곡을 판별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됐다. 지은이는 “(책에 실린) 사진은 기존 한국전쟁사 서술의 보완적 이미지로 활용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 쓰기를 위한 독립된 자료이자 그 자체로 연구할 대상으로 다뤄졌다”고 밝혔다.
책에 실린 사진 대다수는 지은이가 2007년부터 수년에 걸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직접 발굴했다. 미군은 일제가 패망한 직후인 1945년 9월 한반도 38선 이남에 진주한 때부터 한국전쟁 종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방대한 사진과 영상 기록을 생산했다. 지은이가 “상상력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고 표현한 NARA 사진실에는 미군 사진병이 찍은 한국전쟁 관련 사진만 10만 장이 넘는다. 전투 활동 지원, 공보용 뉴스, 역사기록, 심리전 프로젝트 등 쓰임새도 다양했다. 촬영은 “스틸 사진가와 영상 카메라맨이 한 유닛을 구성”해 이뤄졌다.
수만 장의 사진이 펼치는 파노라마를 따라가다보면,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앞서 해방과 분단으로 벌어진 ‘작은 전쟁들’의 귀결이었다는 걸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승만 정부가 제주섬 전체를 고립시키고 초토화한 ‘제주4·3’과, 제주 진압을 거부한 여수 주둔 국군 14연대의 봉기가 전남 동부지역으로 확산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제주4·3 학살의 구실이 된 1948년 5월 ‘오라리 방화 사건’을 담은 무성영화 <한국의 메이데이: 제주도>는 선전과 진실의 엇갈림을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 중 하나다. 오라리 사건은 경찰 사주를 받은 우익 청년단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1989년 <제주신문> 특별취재반이 밝혀냈다. 그 전까지는 40년 넘게 ‘폭도가 마을을 공격하고 주민을 학살하는 것을 경찰이 격퇴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제주 경찰감찰청 정문에서 기관총 사수가 경계를 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구부정하고 빈약한 촌부처럼 보이는 2명의 ‘폭도 살인범’과, 그들에게 노획했다는 죽창·손도끼 등 조악한 무기가 클로즈업된다. 끔찍하게 숨진 여성의 주검, 미군과 한국 경찰이 주민들을 심문하는 모습을 지상 촬영한 장면과, 오라리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미군 항공기에서 공중 촬영한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이어진다. “누가 어떻게 딱 그 시간에 공중과 지상에서 동시에 이 사건을 촬영할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의 ‘게임 체인저’였던 인천상륙작전도 시각과 사각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군’의 전쟁 스펙터클의 절정과 승리가 극대화됐고 ‘적군’의 죽음과 포로 상태, 미군의 대민 구호 활동이 낱낱이 기록됐다. 반면 무차별 네이팜탄 폭격과 기총 소사에 따른 민간인 인명 피해는 외면하거나 비틀린 시선을 보여줬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한국군 장성들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뜨거운 동포애”로 민간 피란민을 직접 챙겨 수송선에 태웠다는 영웅적 미담도 사진 촬영 일시와 군 지휘부의 위치를 비교해보면 거짓임이 금방 드러난다.
지은이의 관심은 사진 속 진실을 길어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역사’로 향한다. 공공역사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 광범위한 공중을 지향하는 공적 역사 표현의 모든 형태”를 말한다. “전쟁의 대량 설득 무기의 필수 부분으로 통합됐던 전쟁사진 속 피사체의 이야기들을 군사적 시각과 목적에서 해방시키고 공공역사로 만들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 역사를 반전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의 텍스트로 삼는 게 가능할까?” 강 교수가 던진 묵직한 질문은 역사가들의 후속 연구과제이자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은유 지음, 창비 펴냄, 1만5천원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약 2만 명의 미등록 이주 아동은 대학 진학과 취업은 물론, 정보무늬(QR) 체크하는 식당에서 밥 먹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만 18살이 되면 생면부지 부모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쥘 미슐레 지음,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펴냄, 2만2천원
19세기 프랑스 역사가가 피억압 계급이자 역사와 혁명의 주체인 ‘민중’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성당에 동물을 데려가 함께 ‘구원’받으려 한 농부들의 모습에서 민중적 낭만주의를 발견한다. 나아가, 국가를 이루는 모든 계층 사람들의 삶과 정서, 욕망과 의지를 읽어낸다.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책과함께 펴냄, 1만5천원
‘디지털 노마드’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자크 아탈리가 바다와 인류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지구에 바다가 형성된 지질학적 기원부터, 생물의 진화를 거쳐, 항해술·교역 지정학까지 인류 역사에서 바다가 갖는 의미를 정치·경제·사회·문화 측면에서 두루 살핀다.
사샤 베이츠 지음, 신소희 옮김, 심심 펴냄, 1만7500원
심리치료사인 지은이가 유일한 가족이자 솔메이트인 남편과 사별한 뒤 겪은 고통과 혼란, 상실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유족으로서의 나’와 ‘치료사로서의 나’라는 두 가지 자아를 오가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양한 애도 이론을 고찰하며, 달라진 삶을 긍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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