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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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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들 정치 맞서 ‘오롯’이 섰다

서울 광화문 ‘블랙텐트’서 공연·시위로 활약

실천하는 무용인들로 세대교체 될지 주목
등록 2017-04-13 19:01 수정 2020-05-03 04:28
블랙텐트 제공

블랙텐트 제공

침묵하던 춤판이 ‘오롯’이 일어섰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바람직한 예술생태계를 위한 생각과 실천을 공유하는 무용인 네트워크입니다. 예술검열 사태에 항거하는 무용인예술행동에서 비롯됐으며, 무용계 안팎으로 개선돼야 할 것들에 대한 토론과 행동을 공유하는 열린 모임입니다. 무용을 사랑하고 무용계의 건강한 변화와 발전을 고민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현장에 반영하기 위한 토론회 및 캠페인 등을 전개해나갈 것입니다.”

‘오롯’이 4월15일 ‘춤, 상생을 꿈꾸다’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토론회를 연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에서 열리는 자유토론 안건은 ‘(촛불)광장 이후 무용인들의 향후 전망과 과제’ ‘무용 생태계 변화를 위한 건강한 드러냄’이다. 이 자리에서는 박성혜 무용평론가가 ‘포스트 블랙텐트’, 김소연 연극평론가가 ‘예술검열은 어떻게 작동되었는가-검열이 배제한 것들’을 발표한다. ‘오롯’은 지난 3월18일 같은 장소에서 첫 토론회 ‘검열장막과 춤’을 열고 출범했다.

춤, 바리케이드를 넘다

춤판이 일어서기 전 연극판이 먼저 일어섰다. 예술검열을 처음 공론화한 것은 2015년 1월6일 출범한 젊은 연극인들의 모임 ‘대학로엑스(X)포럼’이었다.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서울연극제의 대관을 탈락시킨 사건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공공성 위기 문제를 집중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 말 예술위 ‘창작산실’에서 특정 예술인을 배제했다는 사실과 2016년 9월 박근혜 정권이 주요 연극인·연극단체 등을 ‘블랙리스트’를 통해 통제했다는 사실이 잇따라 확인됐다. 블랙리스트 등 예술 검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데 젊은 연극인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대학로X포럼에 이어 20여 개 대학로 극단이 참여해 2016년 6월부터 시작한 릴레이 공연 ‘권리장전 2016-검열각하’가 대표적이다. 시국선언으로 이어진 저항의 거센 물결은 방파제를 넘어 다른 장르로 확산됐다. 비교적 사회문제에 소극적이던 클래식음악계, 대중음악계 그리고 무용계까지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했다.

마침내 촛불의 바다 위에 돛단배처럼 임시 공공극장 ‘블랙텐트’가 떴다. 검열과 블랙리스트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똬리를 튼 블랙텐트는 1월7일부터 71일간 풍찬노숙 속에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공공성을 탐색했다.

특히 무용인들이 눈에 띄었다. 블랙리스트 반대와 박근혜 탄핵 서명운동, 1인시위, 광장 무용공연 등이 두드러졌다. 김윤진 안무가, 박성혜 평론가, 김서령 기획자 등이 무용인 250명의 시국선언 서명을 끌어냈고, 30여 명은 2016년 11월3일부터 올해 3월9일까지 19주 동안 매주 목요일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1인시위를 이어간 것은 무용계가 유일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최보결 안무가와 시민무용단 ‘도시의 노마드’가 서울 광화문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물의 꿈: 빛을 향하여> 공연을 마친 뒤 관객과 어울려 춤을 췄다. 블랙텐트 제공

최보결 안무가와 시민무용단 ‘도시의 노마드’가 서울 광화문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물의 꿈: 빛을 향하여> 공연을 마친 뒤 관객과 어울려 춤을 췄다. 블랙텐트 제공

무용계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경험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본다.

오랫동안 무용인들은 현실 발언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권력에 굽실거린 굴종의 역사였다. 무용인들은 1980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계엄령을 옹호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때도 침묵했고 그 후로도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시국성명을 내는가 하면 광장에서 당당하게 춤판까지 벌였다.

그 시작은 2015년 10월 말 정영두 안무가의 1인시위였다. 연출가 박근형이 연극 에서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국립국악원이 박 연출가의 공연을 배제하자 정 안무가가 항의한 것이다. 그는 해를 넘겨 2016년 10월29일부터 11월6일까지 영국 런던 한국문화원 앞에서도 1인시위를 벌였다. 용호성 한국문화원장이 과거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 재임 시절 벌어진 사전검열 사태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 것이다.

블랙리스트 정국에서 무용계의 광폭 행보는 놀라웠다. 올해 2월27~3월2일 블랙텐트 무용 주간 행사에서 김혜연, 그룹 14피트(feet), 오후의 예술공방, 프로젝트그룹 정오의 1인, 두 댄스 씨어터, 최지연, 보결댄스라이프무용단, 한국민족춤협의회 등이 광장 시민들과 만났다. 광장극장은 비가 새고 조명이 침침했으며 자동차 소음까지 들렸지만 무용인은 공연 뒤 시민들과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

“공정한 심사를 원하는 것과 블랙리스트를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이다. 무용인들은 지원기금이라는 명분으로 예술을 농락하는 권력이 싫었다. 블랙리스트를 인지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진행되는 자기검열이 얼마나 예술가를 가두고 창작 가능성을 협소하게 하는지 잘 알기에 광장으로 나왔다.” 춤꾼들의 이야기다.

춤판 새로 짜는 ‘오롯’

하지만 한국무용협회나 원로그룹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말로는 무용인들의 권익 증진과 창작·유통 환경 촉진을 위한다지만, 한국무용협회는 광장을 찾지도 응원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간혹 50대 무용인과 평론가들이 블랙텐트 무용 공연장을 찾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1인시위와 블랙텐트 공연에 참여한 무용인 상당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앞으로도 정치적 성향이나 지향점에 관계없이 춤판을 지켜나갈 것이다. 무용인들이 그간 보여준 서명운동과 1인시위, 블랙텐트 공연은 예술을 세속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편 나누기로 전락시키는 사고방식에 맞선 실천이었다. 예술 본연의 목적과 이를 실천하는 무용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제 무용이 동시대 예술의 전면으로 나서면서 무용계의 발언권도 세대교체를 할 시기로 보인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협회나 원로그룹 대신 ‘행동하고 발언하는’ 무용인들로 자연스레 무게중심이 넘어가고 있다.

블랙리스트 이전 예술과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 그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직능협회나 원로그룹으로 상징되는 ‘하늘만 쳐다보는 수동적’ 예술에서 ‘스스로 움직이며 판을 바꾸는’ 예술로의 전환이다. 그것은 춤판의 의식-생활-예술혁명으로 나아간다. 그 맨 앞에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이 있다.

손준현 대중문화팀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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