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쑥덕거리는 삶, 뒷담화가 세련되려면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오른쪽)이 언니 제인과 소파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의 어머니인 베넷 부인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영화 ‘오만과 편견’ 네이버 스틸컷 갈무리
언젠가 나는 여자인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연인에게 투덜댔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이렇게 뒷담화를 하는지 모르겠어. 꼭 제일 잘하고 있는 애를 욕해. 누구 한 명이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씩 보태는 거야. 제 삶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여자 깎아내리는 데 아주 다들 선수야. 본인들은 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 그냥 배 아픈 거면서! 누구랑 사귀었다가 누구랑 헤어졌다는 둥 이혼했다는 둥 재혼했다는 둥 여자들 행실 따지면서 신나게 소문 퍼뜨리고 다니는 것도 다 여자들이야.”
나는 뒷담화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내 맘대로 분석해대기 시작했다. 그 뒷담화는 결국 시기심의 발로라고. 자기 삶에서 펼치지 못했던 자유를 펼치는 여자. 자기가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버리는 여자. 자기가 채우지 못했던 욕망에 죄책감 없이 달려드는 여자를 누구보다 불편해하는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라고. 도덕적 평가를 띠지만 사실은 다 부러워서 그런다고. 남자들 사이에는 경쟁심으로 여겨지고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만한 감정이 여자들 사이에는 시기심이나 질투심으로 손쉽게 치환되면서 자신의 성장보다는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쓰인다고.
“아! 남자 무리에서 한 사람이 잘되기 시작하면 무리 전체에 좋은 일이 되잖아. 그 남자 덕을 보면서 친구들이 곁에 머물며 계속 잘해준다고. 여자 무리에서 누구 혼자 잘되기 시작하잖아? 따돌림당하다가 퇴출당해. 사랑받기 위해 나대지 않는 법을 처음 배우는 거는 여자 무리에서야.”
말 많은 여자들에게 질릴 대로 질렸던 나는 한참을 뒷담화하는 여자들을 신나게 뒷담화했다. 잘못한 사람들의 잘못을 꼬집는 일이야말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에 딱 좋은 행위니까. 뒤통수로 너도 언젠가 그렇게 뒷담화에 신나게 참여한 적이 있었단다 하고 과거의 내가 말하는 듯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연인은 현명하게도 아무런 덧붙임 없이 맞장구만 쳤다. 어휴, 진짜 왜 그러는지 몰라. 한심해. 나빴어. 그거 다 질투지. 맞아. 그리고 내 감정이 잦아들자 지나가듯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그렇게 험담하고 쑥덕거리는 거 있잖아.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아니야?”
글을 쓰는 작가들이야말로 뒷담화의 귀재다. 구시렁대기의 일인자다. 현실 속에서 만나는 그들의 까칠함을 감당하기란 피곤한 일이지만 문학작품에서 만날 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속에 칼을 품은 듯 타인을 바라보며 서술하는 까칠한 묘사를 읽어 내려가며 나는 세상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 속에 숨은 위험과 고귀함을 알아보는 법을 배워간다.
이를테면 제인 오스틴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야말로 온갖 가십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가 누구랑 결혼하고 재산을 나눠 가질지, 누가 누구에게 반했고 곧 청혼할 예정인지가 소상히 전개된다. ‘오만과 편견’의 서술자가 인물의 내외면을 드나들며 각각의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은 너무 냉정해 가혹할 정도인데, 그러한 서술자의 태도에 독자로서 진지해지기보다는 이상하게 깔깔거리며 웃게 된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서술자가 베넷 부인(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을 소개하는 다음의 대목을 보라.
“베넷 부인의 마음은 그리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어요. 이해력은 짧고 아는 건 없고 성격은 불안정한 여자였으니까요. 베넷 부인은 뭐든 불만이 있으면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라 상상했지요. 부인 인생의 과업은 딸들을 시집보내는 일이었고요, 인생의 낙은 남의 집 방문과 새로운 소식이었답니다.”(‘오만과 편견’ 13~14쪽,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엘리 펴냄, 2025)
실용적이고 계산적인 목적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 콜린스씨에 대한 묘사 역시 만만치 않다.
“콜린스씨는 사리 분별이 빠른 사람이 아니었는데, 타고나기를 눈치가 없기도 했지만 교육이나 사교의 도움도 별로 받지 못했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무식하고 인색한 부친의 지도하에서 보냈으니까요. 대학 한 군데에 소속되긴 했지만 필수 학기만 이수했을 뿐 대학에서 유용한 인맥도 거의 쌓지 못했고요. 아버지에게 무조건 굴종하도록 길러졌기 때문에 원래부터 굉장히 겸손한 매너를 몸에 익혔지만, 빈약한 두뇌의 자만심, 고립된 삶, 일찌감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을 이뤘다는 뿌듯한 자신감 탓에 이젠 그나마의 장점도 상당히 상쇄되어 사라져버렸지요.”(129~130쪽)
이러한 인물 묘사를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오만과 편견’ 서술자의 날카로운 시선에서 안전한 등장인물은 이 소설에서 아무도 없다. 누구도 이 소설 속에서는 편안하게 고귀함을 누릴 수 없다. 그것은 주인공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인 베넷 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음의 대목 같은 것이 그러하다.
“또 한 딸은 콜린스씨한테 시집보낼 거라는 생각 또한 확실히 믿기는 매한가지였고, 그렇게까지 기쁘진 않더라도 상당히 기뻤어요. 엘리자베스는 자식들 중에서 가장 정이 안 가는 아이였고, 신랑감을 보나 혼처로 보나 그 애한테야 충분히 훌륭했지만 빙리와 네더필드 앞에서는 값어치가 빛바랬으니까요.”(182쪽)
명민하고 쾌활하지만 남을 빠르게 판단하는 바람에 실수하게 되는 엘리자베스와는 대조적으로 언니 제인은 누구에게서도 나쁜 점을 보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졌다. 온화하고 겸손하며 남을 나쁘게 말하지 않는 관대함을 갖춘 제인은 오스틴이 글을 쓸 무렵 당대의 이상적 여성상으로 여겨지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다아시의 절친한 친구이자 제인 베넷의 연인으로 나오는 빙리 역시 사람을 잘 믿는 소탈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을 지녔다. 제인과 빙리는 얼핏 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오스틴은 이 둘의 지나친 선량함도 은근히 비판적으로 그렸다.
제인이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는 미덕을 넘어 판단력 결여로 이어진다. 미스 빙리(캐롤라인)는 겉으론 다정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제인과 빙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데, 제인은 그 위선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한다. 제인이 엘리자베스에게 “함부로 남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하자, 엘리자베스는 대꾸한다.
“나도 언니가 그런다는 거 알지. 바로 그래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고. 언니처럼 훌륭한 분별을 갖춘 사람이 타인의 어리석음과 허튼소리에 이렇게 까맣게 눈이 멀다니 말이야!”(31쪽)
빙리는 더 노골적으로 비판받는다. 그는 성격은 좋지만 자기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남의 의견에 휘둘린다. 그런 모습에 엘리자베스는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엘리자베스에게 빙리는 늘 좋아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 까탈스러운 구석 없는 편한 성질, 강단 없는 성격 탓에 다른 꿍꿍이를 품은 친구들의 노예로 전락해 변덕스러운 친구들 기분을 맞추느라 자기 행복을 희생하고 있다니 분노가, 경멸심이 치밀어 오를밖에요.”(230쪽)
제인 오스틴은 소설 속에서 명백히 제인이 아니라 엘리자베스를 주인공이자 도덕적, 지적 중심으로 내세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천사 같은 제인)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가치를 두는 자질(엘리자베스의 명민함, 독립적 판단력)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키고, 후자에 더 힘을 실어준 셈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결함투성이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진행시킨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가 무엇보다 인물들에 대한 묘사 때문임을 알아차리다보면 인간이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관심과 흥미를 가진 존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왜 어떤 이야기는 끝내 뒷담화로 남고, 어떤 이야기는 위대한 영문학이 될까. 왜 어떤 인물은 구시렁대는 사람으로 남고, 어떤 인물은 한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제인 오스틴과 엘리자베스의 뒷담화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뒷담화를 할 수 있을까?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 오스틴의 동생 카산드라가 그렸다. 위키피디아 갈무리
첫째로 엘리자베스는 명민하게 판단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똑똑히 지켜보지만 자신의 역할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고, 상대의 삶을 그대로 둘 줄 안다. 제인과 빙리 사이에 크나큰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된 이후에도 그 사실을 제인에게 섣불리 전하지 않는다. 당사자들끼리 먼저 서로에 대해 완벽한 이해에 다다르지 않는 한, 자신에게 마음의 짐이 된 이 비밀을 털어버리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음을 스스로 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아는(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걸 타인에게 증명하지 않는다.
둘째로 엘리자베스는 죽을 만큼 부끄러워할 줄 알며, 그 수치심을 통과해 자신의 결함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변화한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편지를 재독하고 숙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오판을 천천히 인식하고 강력한 수치심을 경험하면서 다아시라는 인간을 다시 읽게 된다. 기존 자아를 파괴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 자신이 틀렸음을 받아들이고 한 사람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점,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간다는 점, 그 점이 엘리자베스를 특별하게 만든다.
뒷담화가 가장 세련돼지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처럼 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인간을 혐오하거나 인간에게 실망하기는커녕 깔깔 웃다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관용을 베풀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일이 상냥한 말로만 이뤄져 있지는 않은가보다.
하미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하미나의 나쁜 피: 공격성은 인간의 기본 특성이자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지니고 길러야 할 자질입니다. 터부시돼온 여성들의 공격성에 대해 말합니다. 4주마다 연재.
https://h21.hani.co.kr/arti/SERIES/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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