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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로 듣는다

무대와 객석 경계 허물고 마룻바닥·SNS에서 클래식 공연 나누는 ‘하우스콘서트’ 500회 넘겨
등록 2016-10-09 11:40 수정 2020-05-03 04:28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지난 9월19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 500회 연주회에서 힘차게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하우스콘서트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지난 9월19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 500회 연주회에서 힘차게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하우스콘서트 제공

지난 9월19일 저녁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 183명의 관객이 마룻바닥에 앉았다. 모두 엉덩이로 음악을 들었다. 바로 2~3m 앞, 피아니스트 김선욱(28)이 쿵쾅쿵쾅 건반을 두드렸다. 베토벤 (하머클라비어)이었다. 마루를 거쳐온 피아노의 ‘망치질’은 엉덩이를 거쳐 가슴을 때렸다. 김선욱의 관자놀이 아래로 반짝! 한 점 땀이 빗금으로 흘러내렸다. 연주자의 미풍 같은 한숨, 미세한 손끝의 떨림, 페달의 진동까지 관객은 함께 호흡했다. 감각기관의 효과를 극대화한 눈과 귀, 아니 온몸. 대형 콘서트홀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하우스콘서트만의 묘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4년2개월 된 풀뿌리문화운동</font></font>

이날 연주회는 ‘하우스콘서트’(하콘) 500회였다. 하콘은 2002년 7월12일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창수(52) 하우스콘서트 대표의 서울 연희동 살림집 거실에서 시작했다. 이후 광장동, 역삼동, 도곡동을 거쳐 현재의 예술가의집에 자리잡았다. 지난 14년2개월 동안 하콘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마룻바닥 음악회’로 돌풍을 일으켰다. 대형 콘서트홀에 익숙했던 클래식 관객에게 ‘마룻바닥 음악회’는 문화적 충격이었고, 또 하나의 ‘풀뿌리문화운동’이었다. 민간 주체의 소규모 공연인 하우스콘서트가 500회를 맞이한 것은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2012년 ‘하우스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이라는 부제를 내걸고 일주일간 전국 21곳에서 100회 공연을 올리는 ‘프리, 뮤직 페스티벌’을 열었다. 2013년에는 한날한시에 소극장, 가정집, 군부대, 학교 등 전국 65개 장소에서 예술가 294명이 1만 명의 관객을 만나는 ‘원데이(one-day) 페스티벌’을 열었다. 2014년에는 이웃 나라로 확대한 ‘한·중·일 원데이 페스티벌’을 모두 94곳에서 진행했다. 또 지난해부터 전세계를 대상으로 ‘원먼스(one-month) 페스티벌’을 열었다. 올해 원먼스 페스티벌은 7월 한 달 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425개 공연을 개최했다. 지금까지 하콘 출연자는 정경화·조성진을 비롯해 모두 2300명, 관객은 3만 명에 이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연주자 ‘건반 망치질’ 고스란히 전해져</font></font>
김선욱(왼쪽)은 박창수 하우스콘서트 대표와 13년째 인연을 이어왔다. 하우스콘서트 제공

김선욱(왼쪽)은 박창수 하우스콘서트 대표와 13년째 인연을 이어왔다. 하우스콘서트 제공

김선욱은 하콘 최다 출연자다. 16살이던 2004년 2월13일(48회) 첫 출연 이래, 독주·듀오·갈라를 포함해 모두 15번 하콘 무대에 섰다. 김선욱에게 하콘은 최대 출연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린 자신에게 연주 기회를 마련해주고,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하는 데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하콘은 어떤 의미일까?

“16살 때였으니까 독주회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프로그램 독주회를 열 수 있었던 게 저한테는 굉장한 의미였어요. 지금까지 (하콘 출연을) 계속하는 것도 옛날의 마음이 지금도 변치 않았고, 여기가 제 초심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밑바탕에는 김선욱과 박창수 대표 간의 믿음이 깔렸다. “박창수 선생님이 하콘에 대한 명분과 의지가 확실하시니까 (제가) 더 믿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14년째 하콘을 해오셨지만, 이후 수많은 하우스콘서트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거든요. 하콘이 그만큼 꾸준한 거죠. 이제 500회에 저를 불러주시니까 무척 고맙습니다.”

박 대표는 본인 말대로 ‘미련할 정도’로 꾸준했다. 500회 콘서트의 인사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통해 “얼마 전 눈앞이 뱅글뱅글 돌던 어지럼증이 심해져 119에 실려갔습니다”라면서도 “500회에 이르는 동안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하콘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실이 미련함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쩌면 경우에 따라 앞으로 한두 번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라며 조금은 자신에게 ‘관대’해졌다.

이날 김선욱이 연주한 베토벤의 는 지난해 첫 독주 앨범에 담을 만큼 그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쉴 새 없이 두드리는 ‘건반 망치질’은 피아니스트가 예술가이면서 노동자임을 알게 했다. 앞서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 독주곡 을 들려줬다. 연주를 마친 김선욱이 두 손을 들었다 내리자, “앙코르!” 함성이 마룻바닥을 치고 솟았다.

2007년 하콘 관객이 된 채정희(36)씨는 그해 말 갈라 콘서트를 잊지 못했다. “저는 클래식을 접할 기회도 없었는데, 피아노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앉아 김선욱씨 연주를 듣고 푹 빠져버린 거예요. 하콘이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꿈꾸는 내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대를 걸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는 지난 7월 ‘원먼스 페스티벌’에 솔로 연주자로 참여했다. 하콘이 마련한 이 장면은 15분 정도 페이스북에서 생방송됐다. 연주곡은 바흐의 과 파가니니의 중 24번과 25번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SNS 생방송 확대</font></font>

SNS 생방송은 이뿐만 아니다. 김선욱은 같은 달 서울 도곡동에서 하콘의 팟캐스트 녹음에 참여했다. 이 장면도 페이스북으로 생방송됐다. SNS를 잘 이용하지 않는 김선욱은 이날 브람스의 를 연주했다.

하콘은 올해 원먼스 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 전세계 425개 공연 중 60% 이상을 페이스북으로 생방송했다. 동영상 조회 기준 생방송 관람객 수는 30만2738명이었다. 강선애 하콘 수석매니저는 “휴대전화로 올리니까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지만, 아프리카 오지에서 이 울려퍼지고 태극기를 걸어놓은 현지 실시간 상황이 너무 생생하게 보입니다. 웹 생방송은 클래식을 가깝게 만들고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했다.

하콘은 내친김에 500회 콘서트 이후 웹 생방송을 더 활발하게 가동할 계획이다. 연주자들이 리허설룸, 집, 학교 혹은 야외 등에서 페이스북 생방송으로 송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가끔 미리 계획된 공연을 연주자와 협의해 내보낼 수도 있다. 공연 시간은 30분 이내로 잡았다. 하콘 쪽은 “무대가 필요한 연주자들은 일상 공간 어디서든 생방송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하콘은 지난 9월26일 501회 연주회에 이어 10월3일 502회 연주회에서 ‘커티스 온 투어’ 실내악단이 피아졸라의 등을 연주한다. 문의 02-576-7061

손준현 대중문화팀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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