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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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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도 신문을 뜨는구나

TV 속에서도 사라진 신문
등록 2012-11-03 12:18 수정 2020-05-03 04:27

10여 년 전 라는 영화를 봤다. 결혼까지 한 마당에, 이제 와서 내가 미쳤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선을 보기로 했던가. 남녀 주인공은 서울 대학로 KFC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서로 알아보자고 정한 게 를 들고 서 있으라는 거였다. 신문을 말아쥔 남자와 여자는 그날 밤 바로 모텔로 직행한다. 음, 를 보면 저런 효용도 있구나라는 ‘얼척’ 없는 생각을 했었다.

10년 전이라고 신문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어쨌든 스마트폰 시대에 신문 말아쥐고 대학로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사람은 신문기자 겸 주간지 기자인 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로 샘터 파랑새극장 앞에는 신문을 보고 있는 세 남자의 청동상이 서 있네. 얘네는 뭐니.

최근 DC코믹스의 히어로 슈퍼맨이 70년 넘게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냈다. 만화 얘기다. 외계인인 슈퍼맨이 지구인 행세를 하며 가진 직업은 ‘데일리 플래닛’ 기자였다. ‘행성일보’쯤 되려나. 지역신문이 일단 스케일이 크네. 어느 일등 신문처럼 나름 취재력은 있지만 ‘찌라시’에 가까운 편집 방침을 보여준다. 슈퍼맨은 신문사가 대기업에 인수된 뒤 기사가 저널리즘이 아닌 가십으로 전락했다며 신문사를 그만뒀다고 한다. 바지 위에 빤스 입는 주제에 폼은 다 잡는다. 나도 날아다닐 수 있으면 신문사 그냥 막 관둔다. 그런 슈퍼맨에게 신문사 편집국장은 ‘인쇄매체는 죽어가는 매체’라고 했다나. 그럼 우린 어쩌라고. 슈퍼맨은 블로거나 온라인 매체 쪽으로 이직할 거라고 한다. 슈퍼맨도 신문을 뜨는구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도 신문이 사라졌다. 예전에 같은 대가족 드라마 속 아버지들은 신문을 보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보니까 드라마에서 사라졌다고? 그럼 대가족은 있니? 별 능력도 없어 보이는 실장님이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는 삼성 스타일 드라마에서도 실장님 회사의 위기는 신문을 통해 찾아왔다. 회사 비리나 매각 소식은 신문이 알렸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을 보고 허걱 놀란다. 하긴 요즘 드라마에서는 신문 배달하는 주인공도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다 사극이라 그런가. 신문을 안 보니까 그렇다고? 아, 인터넷 기사도 신문 기사라니까. 요즘 신문 열독률 조사는 종이신문+온라인을 종합해서 나온다.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는 방송 뉴스가 끊임없이 몰락하고 있는데,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방송 뉴스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따위의 손발 오그라드는 미드가 설친다. 설득력 떨어진다. 영화 에서 오드리 헵번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것은 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이었다. 신문기자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오드리 헵번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그레고리 펙이 신문기자인 걸 몰랐구나. 우리 이웃들도 내가 신문기자인 걸 모른다. 매일 술이나 마시는 놈팽이쯤으로 보는 것 같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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