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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결혼할 거야’ 40대 남성, 응원할 수 없는 로맨스

결혼에 몰입하는 남성 그린 웹툰 ‘마흔 즈음에’… ‘다양한 가족 꾸릴 권리 없는 사회’가 공감의 이유 아닐까
등록 2026-02-12 15:15 수정 2026-02-14 11:59
‘삼포 세대’에서 마흔이 된 성민은 ‘뒤늦게’ 결혼을 향해 질주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삼포 세대’에서 마흔이 된 성민은 ‘뒤늦게’ 결혼을 향해 질주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마흔 즈음에’(글·그림 서쿤스, 2025년부터 연재 중) 를 비평하기로 한 뒤 든 생각은 연재명을 (내가 지었지만) 참 잘 지었다는 것이었다. ‘마흔 즈음에’도 일단, 장르는 로맨스다. 좀더 정확히는 ‘리얼로맨스’라고 소개되어 있다. 무엇이 리얼한가. 주인공이 마흔 살 남성이다. 세월을 조금도 피하지 않은 육체의 소유자다. 친구들은 전부 결혼해 육아 중이고 유일하게 남아 있던 친구마저 최근 결혼했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불 꺼진 쓸쓸한 현관을 마주해야 하고, 외로운 주말 저녁에 술이라도 한잔하려니 젊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며 막아선다. 웹툰은 누가 봐도 ‘아저씨’가 된 성민이 연애와 결혼을 목표로 내달리는 과정에서 겪는 수모와 분투를 리얼하게 그렸다. 성민의 주름과 뱃살도, 아직 나 정도면 괜찮다고 믿고 싶은 어긋난 자의식도, 그가 밤마다 견뎌야 하는 외로움도. 모두 너무나 리얼해서 과연 로맨스가 가능할지 의문스러울 지경인데, 그럼에도 일단 장르는 로맨스다.

마흔이 된 ‘삼포 세대’

작품은 성민과 비슷한 나이의 남성 독자들에게 특히 공감을 자아냈다. 30대 후반부터 40대 초중반의 남성 독자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성민의 삶이 슬프고 공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연령대의 기혼 독자들은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 어떤 결혼 장려 정책보다 효과적’이라는 농담의 댓글도 있다. 성민이 겪는 노화, 젊음과 젊음을 매개로 가능했던 기회의 상실은 재현되는 것 자체로 파괴력이 있었다. 30대 초반 여성 입장에서 작품을 읽어도 주인공과 독자의 공포가 전이되듯 생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불편한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질감의 정체는 작품이 드러내는 결혼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민은 자기 객관화와 관리에 소홀한 채 오만할 정도로 현실감각 없던 과거를 반성한다. 지나치게 눈이 높아 무심히 넘겼던 지난 인연들을 아쉬워하며 지금이라도 노력해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 결심한다. 그 결과,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거의 공격적으로 구혼 활동에 나선다. 일단 살을 빼고 매너를 익힌다. 지인을 통해 소개팅을 이어나가는 것은 물론, 다대다 로테이션 소개팅, 와인 동호회 가입, 데이팅앱 활용 등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면 가리지 않고 도전한다. 친구 결혼식이나 운동하려고 다니기 시작한 수영장에서조차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찾으며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성민을 향한 댓글이 유독 인상적이다. ‘저 꼴 나고 싶지 않으면 비혼이니 딩크니 깝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 애 낳아라.’ 읽는 이를 주눅 들게 하는 가혹한 조언이다.

이쯤에서 짚어볼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성민이 한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포 세대’의 당사자라는 점이다. 연재를 시작한 2025년에 마흔이 된 성민의 나이를 계산해보면, 삼포 세대라는 말이 처음 쓰인 2011년엔 그의 나이가 스물여섯이다.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으로 고생할 즈음이었을 것이다.

삼포 세대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취업, 연애, 결혼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가리킨다. 통과의례로 여겨지던 것들조차 포기할 만큼 청년들이 가혹한 현실에 내몰렸다는 의미를 담았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삼포’를 넘어 ‘엔(N)포 세대’로까지 확장되던 개념은 후반에 이르러 그 의미가 다소 모호해졌다. 결혼이 점차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결혼은 ‘할 수 없는 일’을 넘어 ‘굳이 할 필요 없거나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은 일’로 그 인식이 분화해왔다.

결혼하지 않은 다양한 이유 ‘소거’
웹툰 ‘마흔 즈음에’의 한 장면. 성민이 갖고 있는 결혼에 대한 세계관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마흔 즈음에’의 한 장면. 성민이 갖고 있는 결혼에 대한 세계관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네이버웹툰 제공.


회한과 반성, 경고로 가득 찬 ‘마흔 즈음에’가 정작 현실과 어떤 괴리감을 자아낸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작품 속에선 철없이 눈만 높아서 혹은 일에 몰입하다보니 무심코 때를 놓친 미혼들이 그려지지만, 성민과 같은 삼포 세대의 미/비혼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맥락이 존재한다. 이런 배경을 고려한다면 ‘깝치지 말라’는 조언은 그런 맥락을 지워버린 말이다. 어떤 댓글은 ‘늙으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비참하니 남녀 모두 현실을 받아들이고 결혼할 것’을 권하지만, 이 역시 수긍하기 어렵다. 2025년 9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60.8%가, 여성은 47.6%가 결혼 의향을 밝혔다. 여성의 결혼 의향이 10%포인트 넘게 낮았다. 결혼을 원치 않는 이유도 주목할 만하다. 남성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꼽은 것과 달리, 여성은 가부장적 가족 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결혼으로 인한 경력 단절 우려를 이유로 골랐다. 결혼의 성사만이 아니라 결혼 이후에 이어질 삶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다. 과연 마흔 살 여성에게도 결혼이 성민에게만큼 매력적인 종착지가 될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성민이 결혼 생활을 상상하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읽힌다. 그의 상상 속에서 매일의 퇴근길은 다정한 아내와 귀여운 딸아이의 마중으로 완성된다. 성민보다 10살쯤 젊어 보이는 미모의 아내가 “저녁은 먹었어요?”라고 물으며, 아내를 꼭 닮은 어린 딸과 함께 남편을 반기며 현관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성민이 꿈꾸는 이 장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들이 결혼을 원치 않는 결정적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민의 성장과 성혼을 응원하는 다른 독자들과 달리, 그의 로맨스를 응원하기가 겁나는 것은 그래서다. 그는 최근 회차에서 (하필) 미모의 여성 시이오(CEO)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여성이 인연을 재고하든 성민이 결혼 생활에 대한 상상력을 고치든 부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작품이 보여준 ‘평면적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마흔 즈음에’는 분명 설득력을 가진다. 성별과 경제적 형편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감할 사회적 고립에 대한 공포를 그렸기 때문이다. 성민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건강함에도 ‘고작’ 외로움에 절망과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경제적 기반이 갖춰져도 관계적 기반 없이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성민이 마흔 즈음에야 결혼에 사활을 걸게 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국 사회가 결혼하지 않은 중노년의 삶에 대해 입체적인 이해와 대비책이 있었다면, ‘마흔 즈음에’가 보여준 공포가 이렇게까지 유효했을까?

‘마흔 즈음에’가 보여준 공포는 왜 먹혔나

이제 ‘결혼을 포기한다’는 의미의 N포 세대는 옛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 개개인의 포기는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결혼하지 않고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공동체를 꾸릴 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최윤주 만화평론가

 

*현실 연애엔 무관심하면서도 로맨스 만화는 가세가 기울 만큼 읽어왔다. 그 경력을 살려 다양한 관점에서 로맨스 만화를 읽어보려 한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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