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을 찾아 국자 위에서 버둥거리는 물방개를 본 일이 있는가. 좋은 경품 놔두고 ‘꽝’만을 찾아다니는 쇠대야 안의 물방개. 나는 꽝이 아 니라 잉어를 타고 싶다.
그랬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앞에는 이런저런 유혹이 많았다. 특히 물방개의 유혹은 강렬했다. 이름도 즐겁지 않은가. 물·방·개. 묵직한 ‘스뎅 대야’에는 찰랑찰랑 물이 담겼다. 도톰한 물방개는 그 안에서 자유형을 즐겼다. 대야 안쪽은 물방개가 들어갈 만한 크기 로 자잘하게 칸막이가 나눠져 있다. 말하자면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이다. 칸막이마다 검정 매직으로 잉어, 꽝, 용, 꽝, 단검, 꽝, 호랑이, 꽝이라고 쓰여 있다. 말하자면 운명의 수레바퀴, 운명의 칸 막이들. 대야 한가운데는 물방개를 투입하는 ‘홀’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홀을 통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설탕을 녹여 만든, 그러나 잡히기만 하면 나 표지 모 델이 분명한 잉어한테서 비릿한 냄새마저 풍겨왔던 것 같다. 아이는 국자를 들어 헤엄을 즐기는 물방개를 건져올린다. 좁은 세수 대야일 망정 자유의지로 헤엄을 즐기던 물방개는 아이를 보며 실실 쪼갰던 것 같다. ‘또 너냐?’ 물방개는, 좌로, 좌로, 좌로 꽝을 향해 헤엄친다. 돈 50원을 날린 아이는 물방개의 자유의지를 의심한다. 훈련받은 물방개에게 당했다며 야바위꾼을 원망한다.
군항제가 열리기 직전 경남 진해를 찾았다. 장모님이 다녔다는 진해 여고 근처는 벚꽃 명소다. 사람들에 떠밀려 그 앞을 지나는데, 잉어 가 보였다. 30년 전 놓쳤던 바로 그 잉어였다. 물방개 못지않게 아이 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숫자 야바위판(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잉 어·용·호랑이·단검·총·거북이·남대문 등 경품이 적힌 막대기 여 러 개를 숫자판에 이리저리 배열한다. 산통처럼 생긴 그릇에는 숫자 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20번에 잉어를 걸쳤놓았는데 20번 쪽지 를 뽑으면 잉어는 내 것이 된다.
‘요금 선불’, 한 판에 무려 3천원이었다. 설탕값이 아무리 올라도 저 건 아니다 싶은데, 30년 전 나만 한 아이가 멋모르고 야바위판에 뛰 어들었다. “아저씨,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야바위 아저씨는 대 답 대신 돈을 달란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혼자서 신난 아이는 경 품 막대기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우리의 전통보다 물 건너온 ‘젠가’ 에 익숙한 아이가 분명했다. 아무리 몰라도 저건 아니다 싶었다. 내 돈도 아니니 도와주기로 했다. “아이야, 그건 아니다.” 중등 수학교육 과정 확률 편을 통해 이론을 다지고, 매주 로또를 통해 정교한 실전 경험을 쌓은 나는 학익진 형태로 경품 막대기를 배열하기 시작했다.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이 진해 앞바다에서 펼쳤던 그 학익진이, 해군사관학교의 도시 진해에서 공군 출신에 의해 펼쳐지고 있었다. 경품 막대기 사이로 잉어가 빠져나갈 틈은 없어 보였다.
숫자판에는 뻔히 80번까지밖에 없는데도 아이는 ‘81번’이라고 소리 쳤다. 종이 쪽지를 뒤집어 읽고 있었다. 아이는 ‘18번’을 뽑았다. 꽝이 었다. 알아서 18, 욕이 나왔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잉어 들아.
김남일 기자 한겨레 정치부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