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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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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자가 되어보았다, 글이 술술 나왔다

다른 존재와 어우러질 때 새 글이 나온다… 작은 이동이 만들 낯선 글
등록 2026-02-12 15:10 수정 2026-02-16 09:06
꽤 큰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종일 문 앞에 있던 택배 상자는 무엇을 보고 듣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슬슬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2026년 1월 집 앞에 도착한 택배. 박은지 제공

꽤 큰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종일 문 앞에 있던 택배 상자는 무엇을 보고 듣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슬슬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2026년 1월 집 앞에 도착한 택배. 박은지 제공


 

글이 안 써질 때보다 더 곤란한 순간이 있습니다. 글은 잘 써지는 것 같은데 영 재미가 없을 때입니다. 문장은 말끔하고, 주제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고, 마무리도 늘 가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신이 나지 않습니다.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마음은 딴 데로 가고 싶어 벌써 현관 밖입니다. 슬럼프일까요? 슬럼프라고 하기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쓰기에는 또 찜찜합니다. 글쓰기란 원래 이런 걸까요?

다른 존재가 되어봅시다

과거의 저라면 ‘나는 역시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 흑흑’ 하고 좌절했겠지만, 현재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다른 도구를 탐색할 때다!’ 글이 잘 써지는 것 같은데 재미가 없다면 지금 내가 쓰는 방식이 손에 익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익숙한 도구는 일의 속도를 높이고 실패할 확률도 줄여주지만, 늘 같은 도구만 사용하면 쓰던 관절만 쓰지 않겠어요? 그럴 때는 다른 도구를 집어 듭시다. 여러 도구를 잘 다룰수록 일의 능률이 올라가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쓰는 글들이 비슷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많은 경우 내가 나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도구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글이 나오는 것이지요. 나에게서 벗어나고자 멀리 여행을 떠나고, 사색에 잠겨도 글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고요?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를 바꿔보고, 그 자리에 맞는 다른 도구를 사용해봅시다.

오늘 제안하고 싶은 도구는 ‘다른 존재가 되어 쓰기’입니다. 720번 버스 기사님, 자전거 타는 학생, 칼국수를 좋아하는 친구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 볼을 스치는 바람, 밤새 내린 눈 같은 것이 되어봅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른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하기’가 아닙니다. 그 존재가 무엇을 느끼는지 상상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잘 쓰려고도 하지 마세요. 늘 앉아 있던 자리에서 빠져나와 옆으로 옮겨 앉아보기 정도면 충분합니다.

타자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내가 이동해야

다른 존재가 되어 쓰려고 하면 연기하듯 감정을 몰입하거나, 그 존재의 마음을 헤아려 대신 말해주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의미 있는 시도이지만 금세 다시 익숙한 글쓰기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다른 존재를 통해 쓰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과 언어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다른 존재를 나에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존재의 자리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무엇이 중심이 되고 무엇이 주변으로 밀려나는지를 따라가봅시다. 익숙하지 않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내가 나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그리하여 다른 존재와 어우러지는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의 자리로 가볼까요? “낮에 이곳에 툭 떨어졌다.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고, 문도 열리지 않았다. 복도는 조용했고 가끔 TV 프로그램 소리가 윙윙거리며 벽을 채웠다. 오후가 되자 햇빛이 쏟아졌고, 상자 윗부분이 따뜻해졌다. 떠다니던 먼지가 바닥에 내려앉으려 할 때마다 바닥 가까이에서 작은 진동이 일어났다. 복도 가장자리는 작은 벌레들이 차지했다. 문은 몇 번 열렸다가 닫혔지만,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상자 아랫부분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같은 장면을 나의 자리에서 쓰면 택배 상자는 처리해야 할 대상에 가까워집니다. “문 앞에 택배 상자가 생각보다 컸다. 내가 뭘 시켰지, 잠시 생각했다. 허리를 숙여 송장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지만 피곤이 몰려와 그러지 못했다. 한 손으로 들 수 없을 만큼 크기도 했다. 문밖에서 택배 상자를 뜯고 버리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아주 귀찮다. 복도 바닥에 남은 먼지를 보며, 지금 이 상자를 안으로 들일지 그대로 둘지 잠시 서 있었다.”

같은 택배 상자 앞에 서 있지만, 하나는 문 앞에 놓인 채 하루를 보내고, 하나는 그 앞에 잠시 멈춰 서 있습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기다림이 먼저 보일 때도 있고, 처리해야 할 일이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문장의 시작 위치에서 생깁니다.

반가운 불편함

글을 쓰기에는 아무래도 두 번째 방식이 더 편합니다. 늘 내가 서 있던 자리니까요. 판단하고 결정하는 말을 바로 사용할 수 있고, 문장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반면 첫 번째 방식은 불편합니다. 결과물이 썩 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느꼈는지 쉽게 말할 수 없고, 문장은 더디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기존에 쓰던 글과 다르게 쓰고 싶다면, 이 편하지 않음과 익숙하지 않음을 반가워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른 존재의 자리에 서보는 일을 굳이 글쓰기로 해야 할까. 생각만으로도 가능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생각은 쉽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글로 옮기는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집니다. 어떤 단어를 쓸지, 무엇을 남길지, 어디에서 멈출지 선택해야 하고, 또다시 나로 돌아와버리는 것은 아닐지, 나와 다른 존재는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수많은 질문이 탄생합니다.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글이 완성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 연습이 효과적인 이유는 익숙한 언어를 잠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데 있습니다. ‘처리하다’ ‘의미 있다’ ‘불편하다’ 같은 말들이 뒤로 밀리고, 탐색의 언어가 문장의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이 정도의 이동만으로 글은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고, 쓰는 사람은 낯섦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낯섦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익숙한 언어가 작동하지 않을 때, 세계는 설명을 벗어나 관계로 다가옵니다. 무엇을 빨리 이해하고 판단하기보다, 무엇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오래 보게 하니까요.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오늘날 세계가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가 조응하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조응은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하듯 교류하는 상호작용이 아니라 어우러져 나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며 함께 엮어가는 상태를 말하지요. “사물들과 조응하는 행위는 타자를 존중하면서도 각자가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강조합니다.(팀 잉골드, ‘조응’, 김현우 옮김, 가망서사 펴냄, 2024) 이 조응의 연습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존재가 되어 글쓰기가 아닐까 합니다.

글이 재미가 없을 때 필요한 건

글이 잘 써지는데도 재미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좋은 주제나 더 새로운 경험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필요한 건 그보다 작은 이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작은 이동이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꿔놓을 수도 있겠습니다. 문장을 여는 자리를 조금 옮기는 일, 익숙한 언어를 잠시 내려놓는 일. 다른 존재의 자리에 서서 쓰는 연습은 그렇게 글쓰기를 다시 낯설게 하고, 그 낯섦이 우리를 다시 쓰게 할 것입니다.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독자 글

‘쓰지 않았던 하루’를 주제로 일곱 편의 글이 도착했습니다. 난해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멋진 글들을 보내주셔서 덕분에 새해 시작이 좋습니다. 이번 글들은 쓰지 못한 시간에 머물렀던 상태와 움직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방문쌤님의 글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하루를 따라가며 쓴 글입니다. 씀과 멈춤에 관한 사유가 구체적인 장면과 어우러져 인상 깊었습니다. 에세이를 넘어 다른 장르의 글쓰기에도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정선님은 바느질이라는 은유를 통해, 쓰지 않는 시간에도 글이 준비되고 있음을 섬세한 구조로 보여줬습니다. 미진님의 글은 오랜 멈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쓰지 않았던 시간이 남긴 갈망과 질문을 그리는 힘이 돋보였습니다. 연주님은 숨바꼭질 장면을 통해, ‘글 쓰는 나’를 찾는 시간이 결국 삶의 다른 국면에서 돌아온다는 서사를 완성도 있게 풀어냈습니다. 지안님의 글은 쓰기를 둘러싼 고통과 회피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글쓰기가 감당해야 할 윤리와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숙연님은 끝내 말로 붙잡지 못한 감동을 이미지에 맡기며, 표현의 한계를 선택으로 전환하는 글쓰기의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이번에는 나영님의 글을 함께 읽고자 합니다. 나영님은 쓰지 못한 하루를 청소와 몸의 움직임으로 치환하며, 설명 대신 장면을 선택한 안정적인 구성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멈춤의 시간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지, 지금 쓰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나영님 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못 쓰게 된 하루는 없다

 

그날은 아침부터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요가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야 하는 일이 생겼다. 산책을 하고 수다를 떨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다가 결국 생각만 하고 미뤄둔 대청소를 시작했을 때는 오늘 글을 포기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자포자기나 자괴감, 또는 원망으로 감정이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직 눈앞에 있는 일, 더러운 거울을 닦고, 잡다한 물건 중에 버릴 것과 닦아서 정리해둘 물건을 분리하고, 쓰레기를 버린 뒤 바닥을 밀고 빨래를 돌리는 것에 신경을 모았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글이 생각났다. 어디까지 썼더라, 분위기를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캐릭터를 드러낼 단어에는 뭐가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보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질문에 머리를 부딪치게 마련이었고, 그러면 나는 다시 일에 몰두하려 애썼다. 침대를 끌어낸 뒤 몰딩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훔치고, 옷장 뒤편의 먼지를 쓸어내기 위해 기다란 막대 끝에 물티슈를 동여맸다. 욕실 타일 사이에 낀 곰팡이를 박박 문지르고,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세면대를 솔로 쑤셔대다가, 노끈으로 겨우 묶어놓았던 배관을 아예 못 쓰게 만들어버리긴 했지만, 뿌듯했다. 아주 망친 하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은때가 사라지고 내가 하루를 보내는 공간이 쾌적하고 말끔해졌다. 훨씬 예뻤다.

배관은 어차피 언젠가는 고칠 거였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저녁에 침대에 누웠는데, 뭔가가 떠올랐다. 아침에 절망 속에서 했던 생각이 문장이 되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다니. 그것이 내 글의 다음 문장이나 하다못해 실마리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기쁘면서 또 슬펐다. 내게 쓰지 않는 하루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생각하지 않는 하루는 없었으니까. 윤나영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이번에는 문장을 시작하는 자리를 바꿔 글을 써봅시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떠올린 뒤, 나의 시각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다른 존재의 자리에서 시작해보세요. 사람이어도 좋고,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물이 되어 써보는 것이 더 새로울 거예요. 무엇을 느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교훈적인 내용, 아름다운 마무리도 필요 없습니다. 자꾸 ‘나’로 돌아오려고 할 때마다 다른 존재의 자리로 떠밀어보십시오. 생각보다 재밌을 거예요!

 

주제: 내가 좋아하는 장소

분량: 1천 자 정도

마감: 2026년 2월22일

보낼 곳: ha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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