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을 사랑하던 친구 영대가 귤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달랑 들고 산속 암자로 들어간 게 1990년대 어느 겨울이었다. 골초였던지 라 담배 한 보루 사들고 갔을 법한데, 법전에 집중하겠다며 그 좋아 하던 담배까지 끊겠다고 했다. 장하다. 몇 달 뒤 나타난 영대는 맛나 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공부는 끊어도 담배는 못 끊었던 것이다. 영대가 풀어낸 암자에서의 생활은 그 옛날 신농씨가 100가지 풀을 맛보고 죽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독초와 약초를 골라냈다는, 그런 신화적 숭고함마저 느껴지게 했다.
얘기는 이렇다. 첫날 시작은 그런대로 담배를 참았다고 했다. 사가지 고 간 귤을 까먹었다. 고통은 밤에 숨어 있었다. 끽연 욕구는 야차처 럼 찾아왔다. 담배가게는 소실점 너머에 있었고, 깜깜한 겨울 산길 을 내려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던 영대의 눈에, 온돌 아랫목에서 그새 바짝 말라버린 귤껍질이 들어왔다. 영대는 덜덜 떨 리는 손으로 귤껍질을 비볐다. 영어사전은 한낱 담배 마는 종 이에 지나지 않았다. 찢어낸 사전에 귤껍질 가루를 올려놓고 돌 돌 말았다. 시골 촌로처럼 종잇장 끝에 혀로 침을 발라 마무리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모금 빨았다. 당연히 맛이 없었 다. 있을 리가 없지. 죽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피울 게 아니었다. 전매제도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불산보다 독했을 연기를 빼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마른 낙엽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대의 눈에 순간 광기가 스쳤다. 영대는 맛있어 보이는 낙엽을 골라 열심 히 비볐다. 말았다. 피웠다. 영대는 그 뒤의 기억은 별로 없다고 했다. 한 모금 마시고는 너무나 독해서 바로 고개가 푹 꺾였다고 했다. 그 겨울, 죽을 뻔했다는 얘기다.
나도 그랬다. 친구 하숙방에 모여서 술 마시며 놀다가 밤이 깊어지면 담배가 떨어지곤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담배 사러 나가기는 무지 귀 찮다. 플라스틱 생수통을 잘라 만든 재떨이에서 ‘장초’를 찾아서 피 웠다. 생수통에는 꽁초들이 퇴적층을 이루고 있었다. 꽁초의 고고학 이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재떨이에 침 뱉는 인간들이 미웠다. 그나 마 노래를 부르며 기다란 장미 담배만 피우 던 선배의 꽁초는 길어서 좋았다.
더럽게만 피운 것은 아니다. ‘오렌지 담배’라는 것도 있었다. 냅킨을 깔고 그 위에 라이터돌을 살살 갈아낸다. 담배 허리가 부러지지 않 을 정도로 촉촉하게 물을 묻힌다. 라이터돌 가루 위에 젖은 담배를 굴려가며 골고루 옷을 입힌다. 담배가 마른 뒤에 불붙여 빨기 시작 하면 팍팍팍 불꽃이 튀었다. ‘폭탄 담배’도 있었다. 성냥개비 하나를 담배 안에 깊숙이 박아넣는다. 남의 담배로 연명하는 미운 녀석에게 선심 쓰듯 건넨다. 즐겁게 피우다가 갑자기 성냥개비에 퍽 하고 불이 붙는다. 한껏 멋 부린 앞머리가 타버리기도 했다.
그랬다는 얘기다. 2009년 1월1일 담배를 끊었다. 참는 게 아니라 끊 었다. 술만 엄청 늘었다. 담배 맛보다는 담배 피우던 그 분위기가 그 리울 때는 있다. 걱정 안 하고 막 피우던 시절은 이제 가버렸다.
김남일 기자 한겨레 정치부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