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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투복은 왜 비키니가 되었나

히로인 검투 영화 ‘레드 소냐’의 반복된 실패… 조악한 CG, 주연배우 교체보다 몰입을 방해한 것은
등록 2026-02-12 15:10 수정 2026-02-14 08:20
‘레드 소냐’의 한 장면. 주인공 노예 검투사 소냐가 복부를 훤히 드러내고 싸우고 있다. 네이버 영화 갈무리

‘레드 소냐’의 한 장면. 주인공 노예 검투사 소냐가 복부를 훤히 드러내고 싸우고 있다. 네이버 영화 갈무리


 

영화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영화계에서 쓰이는 용어 가운데 ‘개발 지옥’(development hell)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개발 과정이 지옥처럼 무기한 반복되고 확장되면서 영화 제작이 어려워진 상태를 뜻한다. 개발 지옥에 빠진 작품은 여러 감독과 배우를 거치며 방향을 잃기 쉽다. 2017년 제작이 확정됐으나 2022년에야 촬영을 시작하고 2025년 단 하루 상영관에 걸렸던 영화 ‘레드 소냐’처럼 말이다.

훌륭한 원작에 인상적인 첫 장면, 그러나…

‘소냐’라는 이름이 우리에겐 낯설지만 원작 만화는 일찌감치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 캐릭터는 온라인게임의 원작으로 유명한 판타지 소설 ‘코난 사가’의 저자 로버트 이(E). 하워드가 쓴 소드 앤 소서리 장르(검과 마법을 기반으로 한 서양 판타지의 하위 장르)의 단편소설에 처음 등장했다. 소설의 빨간 머리 전사 소냐에서 영감을 받은 마블코믹스가 그를 히로인(여성 히어로)으로 재창조해 독자의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소냐의 고국 히르카니아가 이민족의 습격을 받아 주민 대부분이 학살당하면서 시작된다. 어린 소냐는 숲으로 도망쳐 간신히 살아남고 홀로 성장한다. 이후 용병들이 숲의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면서 소냐는 이 일이 드레이건 황제의 소행임을 알게 된다. 분노한 소냐는 용병들을 공격하지만 이내 붙잡힌다. 이후 그는 노예 검투사가 되고 같은 노예들과 합심해 반란을 일으킨다.

첫 액션 시퀀스는 제법 인상적이다. 황제가 총애하는 노예 애니시아가 소냐와 맞붙는데 주짓수의 현란한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이마나리 롤’(누운 상태로 회전하며 상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두 다리로 상대의 한쪽 다리를 옭아매 넘어뜨리는 기술)이 등장한다. 이어서 두 여성은 역시 주짓수 기술인 니바(상대의 무릎을 가동 범위 이상으로 꺾으며 공격하는 기술)로 서로의 무릎을 공격한다. 이처럼 시대물에서 현대 그래플링(주짓수, 레슬링 등의 접촉 격투 스포츠) 기술이 등장하는 순간 고증을 포기한 비(B)급 영화 특유의 쾌감이 살아난다.

소냐의 특별한 능력을 알아본 황제는 그를 노예 검투사로 만든다. 이때부터 소냐는 숨겨둔 검술 실력을 선보인다.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원형경기장에서 그는 노예를 감독하는 군인, 같은 노예, 괴생물체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운다.

‘개발 지옥’에 빠진 액션

하지만 안타깝게도 검술 액션에서 이 영화가 개발 지옥에 빠졌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레드 소냐’를 둘러싼 악평 가운데는 조악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에 관한 지적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액션이다. 원래 주연을 맡았던 배우가 부상으로 하차하고 새롭게 캐스팅된 마틸다 루츠가 시종일관 검을 들고 휘청거린다. 검을 통제하면서 휘두르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이 검에 휘둘리는 모양새다.

게다가 연기마저 역부족이다. 시련을 극복하고 패망한 부족을 일으키는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배우의 감정 처리가 너무 어설프다. 배우부터가 극에 몰입하지 못한 탓에 관객도 영화를 얄팍한 허구로만 보게 되고 가뜩이나 엉성한 컴퓨터그래픽, 저예산으로 만든 세트가 두드러진다.

이보다 더 몰입을 방해하는 건 비키니 형태의 갑옷이다. 소냐는 과도하게 노출한 채로 칼을 휘두르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원조다. 일부 팬은 소냐나 원더우먼이 노출하는 이유는 전투에서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독자 대다수가 남성이고 흥행을 위한 노림수라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다만 시대가 변했음을 의식이라도 하듯 영화에는 갑옷을 빌려주는 남자와 소냐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냐는 보호구가 필요하니 다른 옷을 달라 하고 남자는 관중이 좋아하니 비키니를 입으라 한다.

결국 소냐는 겹겹이 보호해도 모자란 복부를 훤히 드러내놓고 싸우다가 애니시아의 검이 배를 관통하면서 죽음을 맞는다.(하지만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클리셰에 충실한 영화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설정은 소냐를 페미니스트 캐릭터로 재해석하는 바람에 흥행에 실패했다는 주장이 무색하도록 시대착오적이다.

사실 ‘레드 소냐’의 실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했던 1985년 작 ‘레드 소냐’ 역시 골든라즈베리 최악의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비운의 망작이었다. ‘레드 소냐’ 리메이크는 1985년 작품의 실패를 만회할, 새로운 소냐를 보여줄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브라이언 싱어가 아동 성폭력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제작이 보류됐고 결국 그는 감독직에서 하차했다. 이때부터 ‘레드 소냐’의 운명이 꼬였다.

여성 히어로 영화 실패가 더 안타까운 이유

알고 보면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중에 실패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남성 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는 망한다 해도 다른 남성 캐릭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절대 죽지 않는 주인공이다. 반면에 여성 주연의 액션 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은 ‘레드 소냐’처럼 부진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프로젝트의 파이가 줄어들까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 히어로의 실패는 하나의 실패지만 히로인의 실패는 ‘여성 주연은 흥행에 불리하다’라는 전체의 실패나 편견으로 이어지기 쉽다. 제작조차 어려운 여성 주연의 히로인 영화가 흥행하는 건 기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기적이 있다. 그건 바로 ‘레드 소냐’처럼 완전히 좌초돼 사라졌어도 이상할 게 없는 영화가 엉성한 모양으로나마 세상에 나와 관객과 만난 것이다.

 

양민영 주짓떼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자기 방법 팁-최상의 방어법, 빠른 도망

 

나이프 디펜스의 기본은 복부를 보호하는 것이다. 손목뼈의 날을 세워 프레임처럼 활용해 칼날이 복부로 향할 수 없게 계속해서 밀어낸다. 이렇게 밀어내다가 양팔로 상대의 팔을 얽어매는 ‘기무라 록’(팔꿈치 관절을 가동 범위의 반대 방향으로 꺾어 공격하는 기술) 등의 기술로 관절을 꺾음으로써 칼을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맨손으로 칼을 방어하는 것은 훈련받은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므로 상대가 칼을 꺼내는 즉시 최대한 빨리 도망가는 것이 최상의 방어법이다. 칼을 든 상대에게서 멀어져 안전거리 확보하기, 주변 물건을 방패처럼 활용하기, 주변에 도움 요청하기 등의 원칙을 기억하자.

‘레드 소냐’의 한 장면. 노예 검투사 소냐는 복부를 드러내는 비키니 형태의 갑옷을 입고 싸운다. 네이버 영화 갈무리

‘레드 소냐’의 한 장면. 노예 검투사 소냐는 복부를 드러내는 비키니 형태의 갑옷을 입고 싸운다. 네이버 영화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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