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X라고 있었다. 198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8비트 퍼스널 컴퓨터 규격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얼라들이 가지고 노는 말 하는 뽀로로 전화기도 8비트는 넘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는 대단했 다. MSX 규격을 적용한 컴퓨터들이 출시됐는데, 우리 집에는 대우 아이큐 1000이 들어왔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로고가 기억난다. 그 당시 일기장을 찾아보니 1984년 5월25일에 엄마가 형에게 사준 것 으로 확인된다(역시 큰아들이다). 아이큐 1000은 지금도 집에 보관 돼 있다.
학습용 컴퓨터? 거짓말이다. 컴퓨터는 학생들의 친구? 다 거짓말이 다. 솔직해지자. MSX 컴퓨터는 그냥 게임기다. 화려한 그래픽, 지독 한 몰입을 요구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게임이 쏟아졌다. 1990년대 가 좋았다고? 헛소리다. 게임은 1980년대였다. 당시 삼성에서 나온 SPC 시리즈 컴퓨터로는 구현할 수 없는 놀라운 게임의 세계가 MSX 에는 있었다. 그런 MSX 유저들을 겜돌이라며 무시하는 이가 많았지 만 그건 다 부러워서 그런 거다.
한겨레 자료
나의 생활은 아이큐 1000 이전과 이후로 갈렸다. 담 배 연기 자욱한 동네 오락실에서 50원이 없어 남이 하는 게임이나 구경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집에 오 락실이 차려졌다. 그린 모니터(바탕 색깔이 녹색이라 그린 모니터다. 나중에는 컬러 브라운관 TV에 컴퓨터 를 연결했다)라도 좋았다. 모니터에는 탁구채를 쥔 손목만이 둥둥 떠 다니며 강력한 스매싱을 날렸다(코나미 탁구). 당시에는 중계도 안 해주던 골프를 오락으로 먼저 배웠다. 드라이버를 잡으면 비거리가 엄청났다(홀인원). 요즘 같으면 화물연대에서 공식 게임으로 지정했 을 주야간 화물차 운전 게임도 있었다(페이 로드). 미국이 싸구려 기 종을 한국에 떠넘기기 전에 이미 F16 전투기를 몰았다(파이팅 팰콘). 컴퓨터 커서키를 사정없이 두들겨야 했던 탓에 커 서키가 여러 차례 부러져나갔다. 뭐니뭐니 해도 MSX는 일본 게임회 사 코나미의 세상이었다. 코나미가 만든 대표작 에 등장 했던 수컷 펭귄은 이후 대륙과 기후를 가리지 않고 숱한 게임에 등 장하며 오존층 파괴로 인한 펭귄 서식지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당시 이라는 게임이 출시됐다. 에 나오는 그 호 빗이다. 지금 보면 유치한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한 용 그래픽이 모니터에 ‘한 줄씩’ 뜨는 장면을 경외감을 느끼 며 바라보곤 했다. 한 줄씩 뜬다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설명이 필 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데이터 저장 아이콘이 왜 사각형인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플로피디스크를 써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고 속도로 휴게소에서 트로트 음악으로나 팔리는 카세트테이프에 게임 을 저장하고 로딩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에러가 엄청났다. 정성 들여 카세트 레코더의 헤드를 닦고 조였다. 5분 넘게 손 모아 기다린 뒤 에러 없이 게임이 작동될 때 느끼는 희열은 엄청났다. 나에게 남 은 요만큼의 인내심은 그때 생겼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한 번 더 해야겠다.
김남일 기자 한겨레 정치부 namfic@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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