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김남일 어디 갔어’라며, 시대를 걱정하는 눈 밝은 독자가 있으 실까봐 한 말씀 올린다. 김남일은 을 떠나 로 자 리를 옮겼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 멀리 가지 않았습니다. 김 남일은 언제나 여러분 마음속에 있으니까요(저에게 언론중재를 걸 겠다고 하셨던 분만 저를 찾지 마시고 김성환 기자를 찾아주세요).
어쨌든 출입처를 바꾸고 보니 ‘프로토콜’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 낀다. ‘합’이 중요하다는 거다. 새 출입처는 새누리당이다. 기자칼럼 ‘부글부글’에 모셨던 분들이 참 많은 곳이다. 어제의 ‘부글 러’가 의관을 정제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분들을 대하게 됐다. 참고로, 나는 그런 방향 전환에 아주 능하다.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 지 말자. 사람이 다 그렇지. 기자만 그런 건가?
새누리당 출입 첫날인 3월21일 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 의 롤러코스터 협상이 이어졌다. 타결을 한다, 안 한다. 밤이 늦어질 수록 자꾸 어깃장을 놓는 야당이 미워졌다. 자정을 넘겨 퇴근하자 니, 이건 다 야당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자가 다 그렇지. 나만 그런 건가? 하지만 그건 나만의 유턴일 뿐. 새누리당은 신출내기 출 입기자, 그것도 기자에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출입 첫날 점심은 국회 구내식당에서 동료 기자와 먹었다. 외로웠지만 2800원 짜리 밥은 의외로 맛있었다. 꿋꿋해지자.
불현듯 검찰에 처음 출입하던 때가 생각났다. 참여정부가 끝나가던 시기의 기자들은 외로웠다. 밥 한번 같이 먹자는 검사가 참 드물었다. 그때 함께 밥을 먹은 검사들은 지금도 기억한다. 원래 배 고플 때 잘해주면 오래간다. MB 정권 초기 그런 상황이 더 심해졌 다. 우리끼리 자주 밥을 먹다보니 기자들끼리는 어느 때보 다 서로 친해졌다. 나만 친해진 건가?
정당과 관련해 남아 있는 구체적인 기억은 1985년 초에 박혀 있다. 그해 2월에 12대 총선이 있었다. 아침부터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추운데 누구야, 이러며 내복 바람으로 문을 열었더니 웬 남자가 묻 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른들께 드리라’며 포장 꾸러미를 주고 갔다. “왜요? 왜요? 왜요?”라고 물었지만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옆집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우리만 주는 게 아니구만. 어른들께 안 보 여주고 일단 뜯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석유 냄새가 옅게 밴 하얀 수건에는 귀퉁이가 꼬인 빨간색 로고(사진)가 새겨져 있었다. ‘민주정의당’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신한민주 당 돌풍이 거셌다. 집집마다 수건 한 장으로 표를 사려는 저렴한 매 수였던 셈이다. 그즈음부터 집에 배달되던 를 보기 시작 했다. 그때 내가 받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민주정의당 로고가 찍힌 수건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대학생 때인가 엄마가 버리려고 내놓은 것을 발견하고는 기념으로 따로 챙겼다.
한 달 뒤면 4·24 재·보궐 선거다. 요즘 공직선거법으로는 수건 한 장 받았다가 몇십 장을 토해내야 할 거다. 이제 수건 주는 곳은 돌잔 치나 체육대회밖에 없나.
김남일 한겨레 정치부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