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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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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결정체

화염병 , 생산에서 유통, 투척까지
등록 2013-05-24 17:14 수정 2020-05-03 04:27

유리병을 준비한다. 맥주병은 조금 크지만 소주병이 없다면 대용으 로 괜찮다. 날라리 대학이라 외제 맥주병이 많이 나오냐고 했다. 그 럼 니들은 깨지지도 않는 막걸리통으로 만들든가. 어쨌든 밀러 맥주 병이 잘 깨지고 좋았다. 역시 미제였다. 두루마리 휴지의 종이심을 뺀 다. 역시 휴지는 우리 집 화장지 뽀삐였다. 조금 싼 뽀비도 쓸 만했다. 바깥부터 휴지를 풀지 말고 종이심이 박혀 있던 안쪽부터 휴지를 풀 어 쓴다. 헝겊, 주로 철 지난 플래카드(피시천)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낸다. 휘발유와 시너를 대대로 내려온 비율에 따라 배합한다(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혁신은 필요 없고 그냥 배운 대로 한다. 제 작소와 제작자에 따라 배합 비율은 달랐다. 국제 유가에 영향을 받지 는 않았던 것 같다. 배합한 연료를 병에 절반 정도, 혹은 그보다 약간 적게 채워넣는다. 소주병 주둥이에 헝겊을 올려놓고 그 위에 휴지를 올린다.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헝겊과 휴지를 동시에 병 안쪽으로 쑤 셔넣기 시작한다. 두루마리 휴 지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병목 안으로 볼록하게 휴지가 채워지면 휴지를 끊는 다. 헝겊을 당겨본다. 병이 들리고 연료가 새지 않으면 된다. 샜 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병을 기울여 헝겊과 휴지를 적당히 적셔준다. 완성된 제품을 박스에 담는다. 현장으로 배달한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투척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일단 불을 붙인 병 하나를 바닥에 깬다. 그 걸 불씨 삼아 여럿이서 병에 불을 붙인다. 천천히 돌리면서 앞으로 나 아간다.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이고 던지기도 편하다. 성급한 이들은 양 손에 쌍끌이로 들고 나가기도 한다. 재수없게 불량 제품을 골랐다가 는 불붙은 연료가 새며 손이나 팔에 흉한 화상을 남긴다. 포물선을 그 리지 말고 언더스로로 바닥에 깔리듯 던져야 한다는 둥 유파에 따라 투척법도 다양하다. 겁먹고 뒤에서 던지면 동지들이 다친다고 했는데, 그래도 꼭 뒤에서 던지는 동지놈들이 있었다.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으레 그렇듯 일말의 진실과 아홉말의 뻥이 넘쳤다. 병을 어찌나 힘차 게 던졌던지 교통신호등을 때려맞혔고, 일대 교통이 5시간 동안 마비 됐다고 주장하는 놈도 있었다. 그건 도로를 막고 시위했으니 마비됐 던 거지, 너 때문은 아니었다. 페퍼포그차를 잡기 위해 소주 됫병으 로 대용량 병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대포동이냐. 그거 어떻게 던졌는 지 모르겠다. 장인정신을 발휘해 박카스병으로 만든 미니미도 있었 다. 그냥 병으로 맞혀잡겠다는 얘기다.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먹물 이름보다 ‘염병’이 좋았다. 꽃병이라는 말도 썼지만 나는 별로였다. 염병은 생산·유통·투척에 이르기까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결정체였다. 최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집 에 염병이 투척됐다는 기사가 떴다. 5·18이다. 전대머리 집은 서울 연 희동에 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김남일 기자 한겨레 정치부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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