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봉규 기자
사위는 캄캄했다. 간혹 흐린 달빛이 괴괴한 그림자를 남겼다. 밖에서 보는 담은 넘을 만했다. 대궐로 월장하는 자객의 심정으로 기왓장에 두 손을 올렸다. 올라오는 취기는 역성혁명이라도 할 기세였다. 멀리 서 경비원이 비추는 전등 불빛이 점멸했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허 공에 뜬 몸은 순식간에 거대한 중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간단치 않 은 중력이었다. 담 안쪽 마당을 깊이 파들어간 구조였다. 얼추 한 장 높이였다. 푹, 켁. 마당에 처박힌 자객은 단말마를 느끼며 왕당파로 남기로 한다.
1990년대 어느 해쯤, 밤이 늦었다. 학교 앞 술집을 2차인지 3차인지 돌았다. 편의점에서 술을 사들고 다시 학교로 진입했다. 풀밭에 퍼질 러 앉아 마시기에는 밤이슬에 입 돌아갈 것 같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교정 한곳에 복원돼 있던 구한말 전각이었다. 의료시설로 쓰였 다는 그곳 대청마루가 떠올랐다. 어쨌든 그렇게 엉망으로 진입한 대 청마루에서 술을 마셨다. 이리 오너라~. 양반 놀이 해가며 마실 때는 즐거웠는데,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문제였다. 밀어주고 당겨주 고 별짓을 다해서 겨우 탈출하니 해가 뜰락 말락이다. ‘주폭’이라고? 뭘 어쨌다고 주폭.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세영 기자도 그 현장에 있었 다는 사실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화재로 주머니 가벼운 이들이 즐겨 찾던 유명 한 술집이 사라졌다고 아쉬워들 한다. 월장을 하기 전 들렀던 1차, 2 차, 3차 술집들이 어디였던가 떠올려본다. 그 술집들도 다 사라졌다. 1996년 어느 날 학회 세미나가 끝나고 열댓 명이 우르르 뒤풀이 장소 로 향했다. 자주 가던 술집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내 학생증이 외상 값 볼모로 잡혀 있었다. 자신들이 처먹은 술인데도 ‘외상이나 하고 다 니냐’는 어이없는 타박을 들으며 다른 술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학생 증이 잡혀 있던 술집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10여 명이 죽고 다쳤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우리들은 가슴을 쓸어내 렸다.
선배들이 자주 가던 ‘훼드라’는 어쩌다 한 번씩 갔다. 소주나 막걸리 는 주로 ‘독포’에서 마셨다. 화장실도 따로 없어서 골목 구석에 덧문을 달고 그 안에 하얀 공사용 양동이를 놓았다. 여성 동지들은 화장실을 어찌 이용했는지 알지만 말 안 하련다. 주인 할머니가 썰어 내주는 머 릿고기와 순댓국이 맛있었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스뎅’으로 된 소주 잔이었다. 술 마시면 손 떠는 친구와 나는 스뎅 소주잔을 하나씩 챙겨 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동아리방에서 술 마실 때 꺼내 썼다. 거의 집 처럼 가던 ‘섬’도 사라졌다. 술값 계산도 대충 하고, 간혹 안 받기도 하 고, 메뉴에도 없는 안주 만들기도 좋아하고, 간혹 누가 보내준 털게를 쪄주기도 하던 주인도 사라졌다. 지난해 말 섬을 무시로 드나들던 이 들이 따로 모임을 열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코앞에 ‘스핑’이라 불리는 술집이 있다. 밤마다 한겨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이제 월장하던 그 기세 는 어디 가고 회사 언저리를 배회하며 술추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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