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챌 갈무리
“이상한 의무감에서, 그리고 불행하게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계속 보고 있는, 그러나 갈수록 볼 게 없어져서 20~30분 이면 다 보고 마는 한겨레신문을 좀더 오래 쥐고 있을 수 있도록 일조 하거라.”
프리챌(www.freechal.com)에 개설된 대학 학회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 그래. 맞아. 그랬었지. 10여 년 전이었다. 89 학번 선배 누나가 “오늘 한겨레신문을 보니 남일이가 기자 최종 합격 되었네요”라며 글을 올렸다. 선배의 글에 또 다른 선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신문은 20~30분이면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겨레는 더 없이 좋은 신문이다.” 내가 기자가 된 뒤로 선배들의 신문 읽는 시간 은 늘었을까. 아니면 우리 신문은 여전히 더없이 좋은 신문으로 남아 있을까.
접속한 게 도대체 몇 년 만인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몇 번씩 틀려가 며 어렵게 로그인한 프리챌에는 10년 전 선배들의 명민한 농담이 그 대로 보관돼 있었다. 2013년에도 여전히 왕따로 살고 있는, 세계 제일 왕따왕 선배에게 2001년 누군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선행’을 베풀었더 니 “청명한 가을 하늘에 700색깔 무지개가 떴다”고 개뻥이다. 그런 무 지개가 뜬 것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처음”이란다. 내가 술에 취해 자 기 집 옷방에 오줌을 쌌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었다. 쌌나 안 쌌나를 두고 벌어진, 사회구성체 논쟁 이후 최대 논쟁이라는 오줌 논쟁에서 는 “증명될 수 없음” “근대 철학의 난점” “초월자” 같은 용어가 난무했다. 비싼 돈 들여 대학 보낸 결과다. 결국 내가 싼 걸 로 결론 났지만, 몇 개월 뒤 옷방에 놓여 있던 ‘물먹는 하마’가 엎어졌다는 사실 이 드러났다. 정정 보도는 없었다. “남한 급진운동사에 길이 남을 ‘건강 혁명단체 배설파’를 조직했다”는 불쌍한 인간도 있었다. 이 단체는 “대담하게도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똥으로 도색 하려는 발상”에서 시작됐지만 실패로 끝났다.
프리챌이 2월18일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들 어가본 프리챌은 그렇게 과거에 푹 박혀 있었다. 게시판은 어지러웠 다. 어떨 때는 농담으로 웃다가, 어떨 때는 핏대 세우며 싸웠다. 10년 전 아내의 사진도, 친구들의 사진도 있었다. 프리챌은 2000년대 초반 커뮤니티 서비스와 아바타로 인기를 끌었다. 월 3천원을 받는 섣부른 유료화로 급속하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바타가 있었다. 내 아 바타(사진)를 찾아보니 웬 토끼머리다. 아이디가 16개라는 국가정보원 여직원은 10년 전에도 아바타 16개를 썼을까. 거의 분열증이다.
그즈음에는 검정개가 뛰어다니던 ‘라이코스’도 있었다. 프리챌 문 닫기 전에 사진이라도 살려놔야겠다. 다들 프리챌 한번 들어가보시길. 손 발 오그라드는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시게 될 게 분명할 것이니. 어쨌 든, 까먹고 있던 과거들아, 프리챌과 함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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