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의도는 참 추웠다. 그 매서운 추위도, 며칠째 감지 못해 떡진 머리를 한 수습기자의 진격을 막지 못했다. 난 누구? 여기는 어디? 이런 주체적 질문은 수습에게 호사였다. 시키면 한다. 가라면 간다. 까라면 깐다. 자라면 잔다. (폭탄) 말라면 만다. 나는 ‘진격의 수습’이 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1진’이 국회로 가라고 했다. 정확히 는 국회 기자실이었다. 국회 정문을 지났다. 문 앞에 서 있는 경찰이 어디 가냐고 했다. 수습은, 너는 누구냐고 묻는 불심검문류의 질문 을 싫어한다. 아직은 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자가 아니라고 하기 도 그렇고, 후 엠 아이, 난 누구냐는 질문도 호사인 수습에게, 넌 누 구냐고 묻는, 넌 누구냐.
1진이 시키면 후쿠시마 원전이라도 뚫고 진격해야 하는 것이 수습이 다. 적어도 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가기는 갔는데 도저히 안 되겠 다는 보고라도 해야 한다. 원전도 하나 뚫지 못하냐고 1진한테 박살 이 나고(그러는 너는 뚫어봤냐는 질문도 호사다), 다시 뚫어보려 했 지만 그래도 안 된다고 보고하고, 또 박살 나는 것이 수습이기 때문 이다.
누구냐고 묻는 경찰에게, 건성으로 국회 간다고 하고 지나쳤다. 국 회 본관의 돔이 점점 커졌다.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문 안쪽으로 빨 간 카펫이 깔렸다. 나를 영접하는 듯이 보였다. 당당히 밟으려 하는 데, 국회 방호원이 막는다. 어떻게 왔느냐고 한다. 넌 누구냐는 질문 이다. 기자라고 했다. (수습기자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원래 그렇다. 말 안 해도 티 난다. 일부러 말할 필요 없다.) 여기는 출입이 안 되니 뒤로 돌아 민원실로 가라고 했다. (수습인 거 들켰나?) 나는 민원인 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민원실 쪽으로 가라고 했다. 왜 여기는 안 되냐고 했다. 국회의원 출입구라고 했다. 그런 게 어딨냐고 했다. 여 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방호원이 스타카토로 끊어 말했다. 화났 다는 얘기다. 국회도 뚫지 못하냐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의원님들만 쓰는 전용 출입구라니, 강력계 형사가 장복하는 붕어즙 도 기사로 보인다는 수습은 열받았다. 그래도 별수 있나. 15분을 개 개다가 결국은 민원실로 돌아가야 했다.
한번은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 취재를 하고 있었다. 과천 정부종합청 사에 있는 법무부 장관실로 항의 방문을 간다고 했다. 1진은 법무부 로 가라고 했다. 수습은 무작정 법무부로 갔고, 청사 현관문을 뚫었 고(사실은 방문증을 받았고), 법무부 장관실 앞까지 진격하는 데는 성공했다. 법무부 장관실 문이 열릴 리는 없었다. 역시나 15분을 버 티다가 1진에게 박살 날 각오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 “어, 너 거기까 지 갔냐? 왜 갔냐? 돌아와.” 같이 죽자.
이제, 진격은 사라졌다. 얌전히 전화를 하고,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 하고, 아, 그렇지요, 상대방의 처지도 이해해가면서,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요, 이렇게 취재를 한다. 핸디가 빠진 거다. 23기 수 습기자들이 들어왔다. 진격하라!
김남일 정치부 기자 namfic@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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