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송년회 자리에서 난데없이 <엄마를 부탁해>(창비 펴냄)를 읽을 것을 권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서 혼났다”. 어느 부분이 가장 슬펐냐고 질문을 하였더니 큰아들이자 남편인 그는 “큰아들 부분과 남편 부분”이라고 답했다. 참고로, J는 감성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아주 메마른 편이다.
<엄마를 부탁해>가 12월 120만 부를 돌파했다. 창비 편집부에 따르면 한 달에 10만 부꼴로 팔려나갔다. 2008년 11월10일 출간됐고 출간 10개월 만인 올 10월 100만 부 100쇄를 돌파했으니 그 추세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의 100만 부 돌파 시점은 문학 단행본 사상 가장 짧다. 1990년대 이후 밀리언셀러는 박완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공지영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푸른숲 펴냄·1998), 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 1·2>(생각의나무 펴냄·2001) 등이 있다. <칼의 노래>의 경우 2001년 5월11일 출간돼 6년 만인 2007년 12월에 100만 부에 이르렀다.
<엄마를 부탁해>의 ‘실험’적인 서술 방식을 돌아보면 이같은 열광적인 호응은 예상외다. <엄마를 부탁해>는 보기 드문 ‘인칭실험소설’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긴 했으나, 실지로는 만나본 적이 없는 ‘2인칭 시점’으로 1장, 3장, 에필로그가 전개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를 잇는 두 번째 문장은 이렇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어리둥절한 ‘너’란 지칭의 어색함은 상황의 긴박감에 빨려들어간다. 어머니는 당신의 생일, 아버지와 한 달 차라 아예 포기해버린 생일, 언젠가부터 자식들이 있는 서울에서 치르던 생일, 그 생일을 치르러 올라온 서울역에서 실종되었다. 어머니의 실종은 어머니의 존재를 절절하게 만든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120쪽) 그리고 ‘너’라는 호칭이 간절해진다. 그렇다면 ‘너’라 지칭하는 자는 누구인가. 아들의 시점인 2장은 ‘그’, 어머니의 시점인 4장은 ‘나’로 전개된다.
내용 역시 실험적이다. 환상기법이다. 아들 형철은 제보 전화를 여러 통 받는다. 하지만 실종 당시 행색과 다르다. 파란 슬리퍼에 엄지 쪽 발등이 깊게 패어 있었노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목격한 것도 실종되기 전이다. 사진을 가리키며 “정말 이 사람이 맞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답한다. 이 소를 닮은 눈은 꼭 그대로라고. 그들이 어머니를 목격한 곳은 형철이 공무원으로 처음 근무한 동사무소, 처음 집을 마련한 역촌동 등 형철이 살던 곳이다. 동사무소에 근무할 때 형철이 부탁한 서류를 급하게 들고 온 어머니는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발등이 파인 채. 4장은 아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는 어머니가 떠돌면서 내레이션을 한다.
결국 내용은 실험적이지만 주제는 ‘영원’하다. “오늘의 우리들 뒤에 빈 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작가의 말) 언제나 가족 속에 있었으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엄마.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자신은 초라하지만 자식은 당당하기를 바랐던 엄마. “엄마 앞에서 그 모습을 보이면 엄마는 당장 그의 손바닥을 펴주고 어깨를 바로 세워주었다.”(136쪽) 떠돌다가도 돌아오면 아랫목에서 밥을 꺼내주었고, 안 되던 밭작물도 그의 손에서는 살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거두어 먹인 아내. “다들 당신의 아내가 짓는 밥은 살찌는 밥이라고들 했다.”(172쪽)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연결되는 전근대적인 가치가 드러난다. “매년 추석 때면 올해는 유난히 해외로 나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사회다. 몇 해 전까지는 명절에 여행 가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놓고 조상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까지 하고 공항으로 나선다.”(113쪽)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호출해내는 것이 다인데 딸은 자기 몫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262쪽)
환상기법으로 쓰인 어머니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환상’이 되어간다. 자식들에게 받는 60만원 중 45만원을 고아원에 기부했고, 고아원 마당에서 농사도 짓고 애들 빨래도 해주었다. 할머니랑 사는 동네 아이들의 먹을 것까지 꼬박꼬박 챙겼다. 몹쓸 딸내미는 소설을 읽는 내내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참고로, 딸내미는 감성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촉촉한 편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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