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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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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1만권 1만권, 16일간 17만부


빅뱅 다섯 멤버가 세상에 외치는 ‘어른 같은 소리’, ‘청소년 자기계발서’ <세상에 너를 소리쳐!>
등록 2009-02-18 07:25 수정 2020-05-02 19:25
<세상에 너를 소리쳐!>

<세상에 너를 소리쳐!>

빅뱅의 가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가고 있다. 1월28일 서점에 나온 뒤 하루에 1만 권씩, 소비자들의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새로운 ‘베스트셀러 우주’다. 빅뱅의 책은 1월8일 예약 주문만으로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예약 주문량은 4만6천 부. 2월12일 현재, 17만 부가 나갔고 5만 부가 인쇄를 마치고 풀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1만 권씩, 16일간 17만 부가 팔린 것이다.

‘꿈으로의 질주, 빅뱅 13,140일의 도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아이돌 힙합그룹 빅뱅 멤버인 G-Dragon, 태양, 대성, T.O.P, 승리가 음악과 춤에 입문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다. 빅뱅은 탄생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는 간난신고를 겪었다. 이라는 tvN의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를 통해 그 과정이 생생하게 중계됐다. 자존심 상하는 비교를 당해야 했고,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새벽에 홀로 춤을 추었다. 가족과 떨어져 몇 개월, 몇 년을 지냈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이 ‘춤과 노래 실력을 겸비한 실력파’라는 말을 듣는, 가장 각광받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사실이다. 빅뱅은 대한민국 청소년 중, 아마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다.

‘자기계발서’ 전문출판사인 쌤앤파커스가 ‘청소년 자기계발서’의 저자를 물색하던 중에 빅뱅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준혁 이사는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는 먹히지 않는다. ‘꼰대’같이 보이는 것이다. 청소년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해줄 이로 빅뱅이 기획회의에서 논의됐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적극적으로 섭외를 시작했다”고 한다. 경쟁이 치열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빅뱅 소속사인 YG패밀리는 의외로 빨리 대답을 주었다. 양현석 사장은 화보집이나 에세이집 등 기존과는 다른 포맷의 책을 원했다며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책은 5명의 멤버가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소리치’는 형식이다.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일 뿐 잘하지 않으면 절대로 한 배에 남을 수 없다’(G-Dragon), ‘세계적인 프로게이머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그렇게 작은 꿈을 꾸는 건 분명 큰 낭비고 위험’(태양), ‘여덟 번까지는 누구나 한다. 문제는 마지막 두 번이다’(태양),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과 같다’(대성), ‘랩 16마디, 혹은 24마디 쓰기 하는 식으로 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는 원칙이 있었다’(T.O.P), ‘재능이 뛰어난 사람, 잘하는 사람이 자신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 자신감을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승리). 요약하자면 음악산업은 비즈니스였고 가수 활동은 제조산업이었고 가수는 비즈니스맨이었다.

책은 빅뱅 멤버들이 직접 썼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출판사는 각 멤버들에게 A4용지 20매씩의 글을 달라고 부탁했다. 두 달 만에 모든 원고가 들어왔다. ‘정리’로 책에 이름을 올린 김세아씨가 편집을 맡아, 자기계발서에 맞게 문단을 나누며 주제를 명확히 했고, 거기에 맞게 글이 오고 갔다. 빅뱅의 멤버들은 책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 멤버는 기존의 자기계발서 포맷에 맞춰 써와서 다시 써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준혁 이사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따로 대필작가가 붙거나 하지 않았다. 나중에 양현석 사장이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이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고 그것을 추가했다”고 말한다.

빅뱅의 최근 음반은 불황 속에서도 20만 장을 판매했다. 음반 가격과 거의 비슷한 값(1만5천원)의 책이 음반보다 더 많이 나갈 것 같다. 출판사 쪽은 청소년보다 청소년 부모를 마케팅의 타깃으로 삼고 있다. 팬들이 초반을 이끌었다면 이제 부모들이 자신의 말을 대신 전할 사람으로 빅뱅을 선택할 것이다.

(잠깐 여기서 왕비호를 부르고 싶은 마음) 그런데, 음악산업이 아무리 비즈니스지만 가수는 어쨌든 예술가가 아닌가. 예술가가 “어떤 일이든지 유야무야, 은근슬쩍, 얼렁뚱땅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리멍덩한 것을 선천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베껴 옮겨적을 말은 아닌 듯하다. 이 책을 읽고 빅뱅 멤버의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게 된 것은 중요한 수확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은 너무 비슷해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것을 쏟아내던 입이 아버지 혹은 선생님이었다는 것이, 저 멀리 어두운 기억 속에서 오버랩된다.

그런데 타고나지 않았다는 음감을 음표를 갖고 놀 만큼으로 키워내고, 한때는 몸치였던 몸을 안무를 짜내는 ‘춤달’로 만들어낸, 노력하고 자존심 센, ‘완벽한’ 그들이 낸 책은 왜 이렇게 허술한 걸까. 빅뱅에겐 ‘책 내기가 제일 쉬웠어요’? 그들의 말대로 “무대란 언제든 가짜는 다 들통나고야 마는 곳”이다. 1년 뒤에 이 책을 누가 다시 펼쳐보겠는가. 한 인터넷서점에는 벌써 중고서적이 나왔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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