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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베스트셀러


여행과 긴급구호 정보 대신 ‘한비야’에 대한 정보만 있는 <그건 사랑이었네>
등록 2009-10-15 07:29 수정 2022-12-15 06:50
〈그건 사랑이었네〉

〈그건 사랑이었네〉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의 이름을 부른다. 이 칼럼에서 한 말이다. 순위에 오르면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이기에 더욱더 팔리게 된다(751호). 베스트셀러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반복된다. 이전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는 다시 한번 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공지영의 작품은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다. 출판계에서는 충성 독자를 30만 명 정도로 예상한다. 신경숙, 김훈, 파울루 코엘류,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다. 서거를 즈음하여 1위를 차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들처럼 그의 새 책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교보문고 10월 첫쨋주 1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1권, 2위는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3위는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4위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다.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는 여러모로 베스트셀러 요소를 갖춘 책이다. 그 이름, 한비야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다 아는 활동가다. 그 열정, 보기만 해도 사람을 전염시킨다. 그리고 그 역사, 한비야의 책들은 이전 베스트셀러 1위 경험이 있다.

이번 책 <그건 사랑이었네>는 이전과 다른 면모도 있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은 모두 여행서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긴급구호’라는 단어를 세상에 알렸다. 정보성 도서라는 것이다. <그건 사랑이었네>는 ‘한비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책이다.

“전시에 군인이 배낭 속에서 헤르만 헤세를 꺼내 보듯이, 머리맡에 두고 지치고 기운 빠질 때마다 읽는 책이 콘셉트였다.” 김미정 푸른숲 문학교양팀 대리는 말한다. ‘이 시대의 멘토’ 한비야는 독자로부터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자우편을 받는다고 한다. 오륙십대에서 칠팔십대까지 아우르는 독자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무너지는 자존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비야는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는 말을 “언젠가 꼭 해주고 싶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해주고 싶었다.”(들어가는 글)

책에 실린 글들의 주제는 이렇다. “난 내가 마음에 든다, 당신들도 ‘걱정 가불’하지 말고 살기를” “하고 싶은 일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나이가 잘 들어가는지 체크하자” “구호 현장에서 근육과 힘도 필요하지만 ‘여성성’도 필요하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응원도 있다” “누구나 흔들리고 비틀거리면서 큰다”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그의 내밀한 고백도 곁들여진다. 결혼하지 않은 그가 첫사랑과 재회한 이야기가 적나라하다. 천주교 신자로서 개신교 신자가 많은 구호단체에 들어가서 여러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한비야가 아닌 사람들도 늘상 해줬다. 어떤 글에서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야”라고 말을 하는가. “흔들리면서 성장한다”라고 하지(노래 버전으로는 ‘아픔만큼 성숙해지고’가 있다) “아프면 아파 죽어버려”라고 말하는가. 모름지기 첫사랑을 이야기한다면 “그때 그 사랑은 가시처럼 아픈 추억이 아니라 아픈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이라고 해야지, “그때 그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팠고 빼내고 났더니 속이 시원했다”라고 하겠는가.

한비야는 7월9일 책을 출간한 뒤 토크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다. 녹화분은 8월12·19일 2주에 걸쳐서 방송됐다. <무릎팍 도사>는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준다’는 포맷이다. 말하자면 <그건 사랑이었네> 풍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방영 전주(8월5~12일)에는 4만7천 부 팔린 책이 12일 방영된 주에는 2만 부, 19일 방영된 주에는 3만3천 부 팔렸다. 대신 한비야의 다른 책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면서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무릎팍 도사>에서 한 이야기만으로 <그건 사랑이었네>는 충분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무릎팍 도사>에 갖고 간 질문, “길치인데 고민이에요”는 한비야가 도사에게 묻기에는 너무 약하다. 한비야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그 이전 책의 제목에서 그는 이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고 외쳤지 않았나.

10월8일 현재 <그건 사랑이었네>는 23쇄 31만 부가 발행됐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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