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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제 이름을 부른다


‘백가쟁명’했던 3월 초 서점의 순위들, 그러나 얼마의 기간이 지나면 비슷해지네
등록 2009-03-11 08:13 수정 2020-05-02 19:25

경기 고양시 화정에 있는 한 일식집은 가게의 ‘베스트셀러’ 메뉴를 한켠에 붙여놓는다. 주문량도 옆에 적어놓았다. 처음에 갔을 때는 그날 먹고 싶은 것을 시켰는데, 여러 번 방문하면서 1·2위에 랭크되는 것으로 주문이 수렴해갔다. 1위는 초밥 세트, 2위는 튀김우동이다. 메밀이 먹고 싶어 갔을 때는 순위가 놓여 있는 창가에 앉았는데, 2위인 튀김우동으로 메뉴를 바꿔 주문했다. 그 일식집은 신제품을 론칭하는 일이 ‘거의’ 없다. 순위는,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계절에 따라 조금의 변동이 있다. 내가 처음 방문한 날 시킨 동태찌개가 순위에서 꼴찌인 것을 보고는, 그때 먹었던 실망스러운 맛에 대한 기억이 합쳐져 베스트셀러 순위에 고개를 끄덕였다.

2주간 베스트 순위 변동

2주간 베스트 순위 변동

이 사라진 것은 1990년대 말이다. 순위의 공정성 문제가 지적됐는데, 그 요체는 많이 팔려서 1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1위가 되면 많이 팔린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 말 기욤 뮈소의 를 펴낸 출판사의 사재기가 발각돼 순위에서 제외됐다. 이렇게 많이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셀러가 되면 많이 팔리기 때문에 출판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건다. 몇 안 되는 메뉴를 가진 일식집에서도 그럴진대, 하루에도 100권 넘게 신간(2008년 발행종수 4만3899종)을 더하는 광대한 라이브러리에서 베스트셀러는 우선 눈이 가는 종목이 된다.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집계 발표는 보통 교보문고를 참조한다. 교보문고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해 순위를 매기고 있으며, 판매량에서는 제일 많다. 그 밖에도 오프라인 서점과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집계하고 있다. 3월 첫쨋주 인터넷 서점 일일 판매 순위에서는 독특한 점이 눈에 띄었다. 알라딘의 1위는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이레 펴냄), 인터파크와 교보문고 1위는 (신경숙 지음, 창비 펴냄), 예스24의 1위는 (고경호 지음, 다산북스 펴냄)이었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다양하게 나타난 것이다. 한국인이 그날 가장 많이 산 책, 이라면 한 가지일 수밖에 없지만 이를 집계할 방법은 대한민국에 현재 없다.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은 자신의 사이트와 서점을 통해 판매한 양(‘권당’이 아닌 ‘건당’으로 계산한다)을 순위로 매긴다. 순위들이 달라서 이상한 것이 아니라, 똑같다면 이상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서점마다 색다른 특성도 보인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 소설인 가 1위에 오른 것은 의외의 일이다. 알라딘에서는 2월23일 ‘하루만 반값’ 할인을 진행한 뒤 순위가 급상승했다(현재는 40% 할인). 알라딘의 박하영 팀장은 최근 순위에서의 소설 강세를 짚으면서 알라딘 독자의 성향도 한몫했을 거라고 말한다. 알라딘 독자는 “진지하고 마니악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스24의 1위를 차지한 은 라디오 광고와 신문 광고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주력 마케팅 상품이다. 예스24의 김병희 팀장은 사이트의 특색을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주말에 방문객이 줄어들지 않고, 책을 많이 사는 고객이 많다. 예스24 방문자들이 정보에 빠르다.” 가 1위를 차지한 인터파크는 어떨까? 김미영 인터파크 언론홍보총괄과장은 “쇼핑몰 내에서 책을 판매하기 때문에 독자풀이 넓고 평균적인 독서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는 절대적이지 않다. 베스트셀러는 다양하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는 서로를 곁눈질하며 닮아간다. 는 다른 인터넷 사이트의 순위에도 조금씩 파급됐다. 김병희 팀장은 이 다른 곳보다 일찍 순위에 오른 것임을 강조했다. “정보가 빠른 방문자들이 많아 다른 사이트보다 1위에 오르는 시기가 빠른 경향이 있다.” 박하영 팀장은 지난해 의 경험을 예로 든다. “지난해 는 진지한 소설이고 영화 개봉 등의 외적 요인도 없었는데 1위에 올랐었다. 이 영향은 곧 다른 서점에도 미쳤다.” 이 ‘평준화’ 현상은 최근에 와서 더 빨라졌다. 알라딘 박하영 팀장은 “예전에는 순위에 오르는 특이한 타이틀이 꽤 있었는데, 요즘에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르든 조금 늦든 한 사이트의 ‘꾸준한’ 베스트셀러는 다른 곳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 제 이름을 부른다.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잘 팔린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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