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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야기하는 마케팅 ‘비법’ ① 다이어리 붙이니 손익분기점이 6만 부로 훌쩍 달아나네
등록 2009-04-24 08:32 수정 2020-05-02 19:25
저자 사인회는 주로 책 발행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저자 사인회는 주로 책 발행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출판사 영업부장을 지낸 5년차 경력의 기획부장을 만났다. ‘출판기획사’의 경력 6년차 마케팅 직원도 만났다. ‘출판기획사’는 10만 부 이상을 목표로 예산이 짜이는 책의 마케팅 기획을 하는 곳이다. 그들에게 베스트셀러를 위한 마케팅 ‘비법’을 청했다. 베스트셀러는 독자의 자발성으로 인해 쌓이는 ‘1인1표제 민주적 보통선거’인가, 마케팅 기법과 물량 공세가 만들어내는 ‘신분제 사회’ ‘귀족사회’인가. 후자에 가까웠다. 두 마케터의 말을 종합해 정리했다. 2회에 나눠 싣는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베스트셀러는 만들어진다. 큰 출판사의 경우에는 더 쉬울 것이다. 단, 원고가 웬만큼은 돼야 한다. 3가지가 기본이다. 사회적 공익성, 긍정적 마인드를 설파해야 한다. ‘사랑이 아름답다’ ‘부모에게 효도하라’ 정도는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문장이 잘 읽혀야 한다. 전체 구도에 논리적인 완결성도 있어야 한다.

원고의 수준을 보면서 마케팅 기획을 잡는다. 출간 기념으로 2만 부에 다이어리 등을 폼나게 걸고 나면 순익분기점은 5만~6만 부로 순식간에 달려간다. 미리 비용을 많이 들인 경우, 특히 선인세가 많거나 인세가 높은 때 더욱더 크게 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어떤 책은 시작 시점 손익분기점이 20만~30만 부인 경우도 있다. 당연히 판을 크게 벌려야 하고, 그러면 출발점이 50만 부인 기획이 잡힌다.

목표가 10만 부 이상일 경우 전체적인 맥을 잡아주도록 이벤트사에 기획을 맡기기도 한다. 의뢰가 들어오면 ‘출판기획사’는 타깃을 잡고, 출간 뒤 기간별 포인트를 잡는다. 이벤트를 개발하고 파티 개최, 건물벽 플래카드, 라디오 광고 등 출판사 영역 안에서는 어려운 일도 집행한다. ‘출판기획사’가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서 중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마케팅비는 책값의 10%다. 예외적으로, 작가와 따로 이야기를 하여 마케팅비를 크게 잡을 수도 있다. 작가의 인세를 줄이고 마케팅비를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세 10%로 1만 부 파는 것보다는 인세를 5%로 줄이고 마케팅비를 15%로 늘려 3만 부를 파는 게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크다. 그만큼 팔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유명작가의 경우는 쉽지 않다.

많이 노출할수록 잘 팔린다. 책의 발행 시점에 노출이 최고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의 ‘예고편’이 ‘개봉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과 비슷하다. 책 발행 전에 이루어지는 이벤트는 ‘발행’ 시점의 노출 효과를 극대화한다. 요즘은 이런 ‘예고편’이 강화되고 있는 경향이다. 예약판매가 그 예다. 연예인은 팬카페를 통해 발행 시점을 알려주고 인터넷 서점은 구매 예약을 받는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먼저 맛보여서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도 사용된다.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독점 연재’ 하는 방식이다. 저자 사인회도 발행 시점에 몰려 있다. 최근에는 “예약판매는 ‘사재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책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는 현상이 ‘사재기’를 닮은 것이다.

구태의연하지만,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수단으로 사재기가 최고라고 믿는 출판사가 분명히 있다. 사재기를 한 책은 다시 출판사로 돌아오기 때문에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 제작비가 빠지는 것이다. 작은 출판사들이 욕심낼 수밖에 없다. 최근에 ‘찜질방 사재기’도 있다더라. 찜질방에 온 분들에게 무작위로 돈을 주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일주일 내내 주문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점은 사재기를 막기 위해 몇 ‘권’이 아니라 몇 ‘건’이냐를 기준으로 판매량을 집계한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정말 감동받아 직원들에게 다 주겠다 마음먹은 사장님처럼, 한 명이 정말 ‘필요’에 의해 여러 권을 주문할 때 한 번에 하겠는가, 일주일 내내 주문을 하고 있겠는가. 인터넷 서점에서 하루에 몇 만 건이 되는 주문 물량을 일주일 내내 비교하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재기가 공공연히 행해지기도 한다. 저자 사인회도 사재기의 일종이다. 광고를 통해 저자 사인회를 알려주고, 플래카드를 걸고, 현장에서 줄을 서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저게 뭐지 하고 따라붙게 마련이다. 한 서점에서 50~100권 정도 팔리면 베스트셀러 순위 진입이 가능하다. 저자 사인회를 개최한 경우 일단 진입 성공이다. 출판사 직원들이 먼저 줄을 형성하기 위해 동원되는데, 이 책은 출판사 쪽이 서점에서 구입을 하는 것이다. 서점은 사인회 유치에 더 적극적이 된다.

책은 거칠게 말해서 두 종류가 있다. 한꺼번에 팔아먹는 책과 이른바 양서다. 문제는 이 ‘양서’에도 마케팅 차원에서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사례들이 늘어간다는 것이다.”(다음회에 계속)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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