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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 강한 젤렌스키의 말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삶을 굽어살피소서”

러-우크라 전쟁에서 세계의 지지 끌어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집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록 2023-02-08 11:19 수정 2023-02-09 09:21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아래)이 연설하는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뒤 왼쪽),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아래)이 연설하는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뒤 왼쪽),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리의 아이들을 돌보소서. 우크라이나의 모든 소년 소녀에게 행복한 유년기와 성년기, 노년기를 허락하소서. 이 전쟁으로 찢긴 끔찍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 만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하소서. 숨바꼭질 술래 대신 폭탄을 피해 숨어야 하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대신 총알을 피해 방공호로 달려가야 하고, 여름휴가가 아닌 피란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이 잔인한 놀이를 강요당한 아이들의 삶을 굽어살피소서.”(2022년 4월2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부활절 연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가 한국에 도착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문집(박누리·박상현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으로 지난 3년 동안 국민과 전세계를 상대로 한 수많은 연설 가운데 19편을 골랐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2년 12월 처음으로 전쟁터를 떠나 미국 의회를 방문해 한 연설은 한국어판에만 단독으로 실렸다. 역자인 박누리씨는 페이스북에서 “12월 초 영국과 미국, 유럽에서 동시 발간된 원서에는 당연히 실려 있지 않은 ‘이 연설은 놓칠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거꾸로 역자들이 편집자를 들들 볶았다”며 저작권 소송당할 것을 불사하며 인쇄기를 돌리기 직전 “젤렌스키 측으로부터 허락이 왔다”고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군사강국인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가진 유일한 힘은 연설이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나약하지 않을까 의심받던 그는, 러시아가 침공한 지 38시간 만에 정부 청사 앞에서 카키색 옷차림으로 32초짜리 연설을 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군인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독립국가일 것입니다.” 러시아 특공부대원들이 그를 찾아내려 혈안이었을 때 숨어 있지 않고 나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연설을 올렸다. 이후 상황은 우크라이나군의 저항과 반격, 수복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이 책은 정치인의 연설이 가진 힘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영국 언론인 아르카디 오스트롭스키는 “전세계의 국회와 의회를 상대로 연설할 때, 젤렌스키가 호소하는 상대는 그 나라의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그 정치인들을 선출한 그 나라 국민에게 호소한다. 그의 연설에 마음이 움직인 베를린, 파리, 런던 시민들이 대규모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를 벌여 자국 정부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지원을 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공동역자인 박상현씨는 “20세기형 전쟁이 우리가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오래된 기술 하나를 되살려냈다. 바로 대중 연설이다”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반복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청중에게 과거 사회를 하나로 묶어준 명연설을 떠올리게 해 지금 일어나는 전쟁의 본질을 확인하게 했다는 것이다.

다시 우크라이나 전황이 급박해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한 뼘의 땅도 예외 없이 모두 피에 물들었다”며 “버티고 있다”고 한 바흐무트 지역이 러시아군의 대공세로 전투가 격화하고 있다. 이 책의 인세는 파괴당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설립된 유나이티드24에 기부된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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