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가 된 풍자, 인도 모디 정권을 뒤흔들다

2026년 7월20일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어쩌면 특별한 용기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아니라면 현실과의 특별한 괴리가 있었을까? 특정 직업의 최고 정점에 오른 사람이 한 말이다. 쌀 한 톨, 천 한 조각, 집을 지을 벽돌 한 장조차 만들어본 적 없는 그 사람이 인도의 실업 청년들을 ‘기생충’이라고, ‘바퀴벌레’라고 말했다. 수리아 칸트 대법원장의 말이다.”
인도 인권운동가 아난드 텔툼브데는 2026년 6월9일 현지 일간 ‘더힌두’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누군가의 노동으로 세워지고, 유지되고, 관리되는 재판정의 높은 단상에 오른 칸트 대법원장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인도의 청년들을 기생충이라고, 바퀴벌레라고 말했다. 인도 청년들은 그 불합리함에 정면으로 맞섰다”고 덧붙였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영국 사법제도를 따르는 인도에는 ‘선임 변호사’ 제도가 있다. 대법원 또는 각 주 고등법원 법관들이 법조 경력과 법률 지식의 탁월성을 지닌 변호사를 선임 변호사로 지정하는데, 법원에서 특별한 복장을 하고 재판 때도 특별한 예우를 받는다. 5월15일 대법원에서 선임 변호사 지정과 관련한 청원 심사가 열렸다. 뉴델리고등법원이 지정한 선임 변호사 지위 확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형사법 전문 변호사 산자이 두베이의 항의 청원이었다. 심사 도중 칸트 대법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를 공격하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 있는데, 당신은 그들과 손잡으려는 건가? 바퀴벌레 같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을 생각은 않고, 소셜미디어 같은 걸 통해 이른바 ‘활동가’입네 하면서 사회 전체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그런 놈들을 법률적으로 대리하고 있고.”
2025년 기준 인도의 청년 실업률은 16%에 육박한다. 칸트 대법원장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소셜미디어를 타고 청년층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래, 우린 바퀴벌레만도 못하다.” 자조 섞인 불만을 하나로 모아낸 것은 유학생 아비지트 딥케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정치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일자리를 찾던 딥케는 소셜미디어에 “바퀴벌레들, 다 모여보자”고 외쳤다. 그는 7월26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16일 잠을 깼는데, 실업 상태인 청년들을 대법원장이 ‘기생충’ ‘바퀴벌레’라고 불렀다는 보도가 나오더라. 너무 충격적이고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소셜미디어 엑스(X)에 ‘우리 바퀴벌레들이 다 모이면 어떨까?’란 글을 올렸다.” 그냥 홧김에 한 소리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수백만 명이 화답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고,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는 “마치 인도 청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외침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26년 7월22일 인도 수도 뉴델리 중심가 잔타르만타르 부근에서 ‘바퀴벌레당’ 지지자들이 웃으며 거리를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틀 뒤 그는 인공지능(AI)과 주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 ‘인도인민당’(BJP)을 패러디한 ‘바퀴벌레인민당’(CJP)으로 모임 이름을 정했다. 당원 가입 자격은 “게으르고”, “실업자”이면서, “화낼 수 있는 사람”으로 정했다. 불과 2주 만에 ‘바퀴벌레당’ 인스타그램 ‘당원’은 2200만 명을 넘어섰다.
2026년 5월3일 인도 의과대학 입학 자격시험(NEET)이 치러졌다. 의대 입학은 카스트 계급 구조가 강고한 인도에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통한다. 온 집안의 기원과 바람을 안고 똑똑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오랜 기간 NEET를 준비한다. 2026년 시험엔 약 220만 명이 응시했다. 그런데 시험을 전후로 공개돼선 안 될 문제지가 소셜미디어를 떠돌았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인도 교육부는 시험 자체를 취소하고, 6월21일 재시험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했던 똑똑하고 가난한 아이 1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갓 탄생한 바퀴벌레당은 즉각 ‘직접행동’에 나섰다.
사실 NEET뿐이 아니었다. 2026년 2월17일부터 4월10일까지 과목별로 실시된 우리의 수학능력시험 격인 중등교육중앙위원회(CBSE) 고사에서도 ‘부정’ 의혹이 불거졌다. 응시자 170여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시험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교육부 쪽은 채점 과정과 결과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NEET 시험지 사전 공개 파문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수도 뉴델리 중심가에 18세기 초 마하라자 자이 싱 2세가 세운 거대한 석조 천문대 유적지 ‘잔타르만타르’가 있다. 그 앞 광장으로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바퀴벌레당은 CBSE와 NEET 시험 부정의 책임을 물어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6월 초 인도로 귀국한 딥케도 잔타르만타르를 지켰다.
6월28일 인도를 대표하는 생태·환경운동가 소남 왕추크가 청년들의 시위를 지지하며 잔타르만타르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인도 최북단 산악 지역 라다크 출신인 왕추크는 2018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인도 시민사회의 상징적 인물이다. 청년들의 들끓는 요구에도, 모디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잔타르만타르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집회·시위를 불법화했다. 광장에 모인 청년이 늘기 시작했다. 왕추크는 7월18일 사실상 체포된 뒤에도 단식을 끊지 않았다.

2026년 7월22일 인도 비하르주 파트나에서 경찰이 반정부 시위대를 겨냥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7월20일 바퀴벌레당이 주최한 대규모 집회가 뉴델리를 뒤흔들었다. 성난 청년 5만여 명이 잔타르만타르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의회 의사당으로 향했다. 진압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막대기를 휘둘렀다. 더러 다치고, 더러 붙잡혔다. 2014년 5월 모디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분노가 산처럼 쌓였다. 끔찍한 습도와 고열에도 수천 명의 젊은이가 광장을 지켰다. 정부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젊은이들의 안녕과 미래다. 우리 젋은이들의 미래를 갉아먹는 자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잔타르만타르 시위에 침묵하던 모디 총리는 7월22일 엑스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바퀴벌레당 시위가 벌어진 뒤 처음 내놓은 공식 반응이다.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병원에 머물던 왕추크도 7월24일 단식을 중단했다.
7월25일 오후 잔타르만타르에서 집회를 진행하던 딥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딥케는 “정부가 요구조건을 거의 다 들어줬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프라단 장관은 자진 사임 형식으로 물러났다. 정부는 NEET 시험지 유출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험생의 유족에게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바퀴벌레당 시위대 탄압도 중단하기로 했고, NEET와 CBSE를 포함한 국가기관 주도의 시험제도 개혁도 약속했다. ‘바퀴벌레’의 완승일까?
“정부가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고 체포된 시위대를 석방하지 않는다면, 우린 시위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바퀴벌레당 아슈토시 란카 대변인은 7월27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중범죄 혐의 등으로 체포된 시위대가 적어도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21살 시위 참가자는 7월29일 ‘타임스오브인디아’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아버지한테 경찰서로 출두하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고는 어머니한테도 같은 내용의 전화를 했다. 부모님이 경찰서에 갔으니 나도 출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시위에 참여했을 뿐이지,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 이상 경찰에 붙잡혀 있었다. 경찰 쪽은 신문에 “구금된 사람은 없다. 폐회로티브이 화면에 나온 사람들을 불러서 조사했을 뿐이고, 정당한 조사를 마친 뒤엔 풀어줬다”고 말했다.

2026년 7월20일 인도 카르나타카주 벵갈루루에서 ‘바퀴벌레인민당’ 지지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인도 북부 구자라트주 주지사 출신인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워 2014년 5월 집권했다. 12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가 ‘ 외부 압박’ 에 장관을 교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성장지상주의’ 를 내세운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은 고도화한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켰다.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인구대국이 된 인도는 전체의 65%가 35살 이하 청년층이다. 이 가운데 25%는 대학에 다니지도, 직업을 갖지도, 직업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잔타르만타르 시위대의 청년 절대다수는 대학생이었다. 프라단 장관의 사임 발표 직후 바퀴벌레당은 잔타르만타르 시위 종료를 선언했다.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인도는 인구의 3분의 2가 35살 이하인 나라다.” 로이터 통신은 7월28일 이렇게 짚었다. 말하자면 ‘2030 없는 정치’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모디 총리 정부가 하지 못한 것을 바퀴벌레당이 해냈다. ‘기생충’과 ‘바퀴벌레’는 기성세대가 던진 ‘축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앞날은 알 수 없다. 로이터는 “인도 청년들이 모디 총리를 굴복시킨 걸 다 같이 축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운동의 핵심인 교육과 고용, 청년층의 미래에 대한 해답은 없는 상태다. (…) 온라인에서 농담처럼 출발한 바퀴벌레당은 전국적인 운동으로 커지고 있다. 그들이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같은 물음을, 우리도 안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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