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테이크다운’, 아빠의 착취를 꺾어라

영화 ‘퍼스트 매치’는 아빠의 인정을 갈구하는 10대 여성 레슬러 모니크의 각성과 성장을 담은 영화다. 넷플릭스 제공
경기장에서 선수를 보는 건 관중의 특권이다. 그러나 관중만 선수를 보는 건 아니다. 선수도 관중을 본다. 겉보기에 선수는 승리나 기록에만 열중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경기장에 선다. 그리고 그 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영화 ‘퍼스트 매치’의 주인공 모니크는 아빠의 인정을 갈구하는 10대 여성이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그는 길에서 우연히 출소한 아빠 대럴을 만난다. 레슬링 선수였던 대럴의 관심을 얻으려 모니크는 그만뒀던 레슬링을 다시 시작한다. 경기장에서 뛰어난 재능을 드러낸 모니크는 아빠와 함께 살 날을 꿈꾸지만 아빠는 그런 딸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레슬링은 몹시 거친 운동이다. 상대와 최대한 밀착해 폭발적으로 힘을 쓰기 때문에 선수들의 귀는 콜리플라워 모양으로 변형된다. 그래서인지 레슬링은 오랫동안 여성성과 거리가 먼 운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모니크는 자신이 좋아하는 레슬링 못지않게 터프하다. 터프함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적개심을 발산한다.
모니크가 이처럼 분노한 데는 이유가 있다. 모니크를 맡는 대가로 보조금을 받는 어른들은 덮어놓고 그를 골칫덩이로 치부한다. 하나뿐인 소꿉친구와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고 어렵게 찾아간 레슬링팀에는 남자 선수들뿐이다. 한마디로 모니크는 완벽하게 고립된 상황이고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날이 선 선제공격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런 모니크 앞에 나타난 대럴은 구원자나 다름없다. 문제는 그의 삶 역시 가난과 범죄에 잠식돼 딸을 책임질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심지어 그는 어린 딸에게 “아빠가 왜 필요해?”라고 되묻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모니크에겐 대럴이 절대적이다. 그가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봐줬고 두 사람 사이에 레슬링이라는 연결 고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영화 ‘퍼스트 매치’는 아빠의 인정을 갈구하는 10대 여성 레슬러 모니크의 각성과 성장을 담은 영화다. 넷플릭스 제공
‘퍼스트 매치’의 남다른 부녀 관계, 그리고 레슬링이라는 소재는 2018년에 나란히 개봉한 인도 영화 ‘당갈’을 연상케 한다. ‘퍼스트 매치’와 ‘당갈’의 두 아빠는 닮은 듯 대조적이다. 먼저 두 사람 모두 어려운 환경 탓에 메달리스트의 꿈을 접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이들에겐 자신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딸들이 있다. 두 아빠는 똑같이 딸을 통해서 뭔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선택이 엇갈린다. ‘당갈’의 아빠는 딸들을 인정받는 레슬링 선수로 키우려 고군분투하고, ‘퍼스트 매치’의 아빠는 딸을 음지로 끌고 가 착취하려 한다. 한마디로 ‘당갈’이 2세 선수의 희망을 그린 영화라면, ‘퍼스트 매치’는 그에게 드리운 그림자에 관한 영화다.
대럴이 모니크를 착취하는 이유는 역시나 돈이다. 모니크는 아빠의 강요로 레슬링에 쏟아야 할 열정을 불법 격투장에서 허비한다. 대럴은 모니크에게 타격을 가르치며 싸움판의 퀸이 되라고 종용한다. 이 대목에서 모니크의 액션도 위기를 맞는다. 영화의 레슬링 훈련과 경기 장면은 과장된 연출 없이 매우 사실적이다. 그런데 몸싸움으로만 이뤄진 레슬링에 난데없이 타격이 끼어들면서 모니크는 레슬링 경기장에서 주먹을 쥐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또 그의 장기인 레슬링 기술들, 대표적으로 상대의 두 다리를 잡고 몸통으로 밀어 넘어뜨리는 ‘더블레그 테이크다운’이 싸움판에서는 쓸모없음을 알게 된다. 테이크다운을 노리고 상체를 낮게 숙였다가는 니킥으로 얼굴을 공격당할 위험이 있어서다. 영화는 같은 기술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재능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하는 절묘한 지점을 조명한다.
모니크는 급기야 경기장을 무단으로 이탈하고 아빠를 따라 격투장으로 가서 싸운다. 그러나 타격에 서툰 탓에 심각하게 얻어맞고 아빠는 무책임하게도 경기를 포기하라고 한다. 이때 모니크는 자신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저항하며 대럴의 지시를 무시한다. 그는 곧장 기습적인 테이크다운으로 상대를 쓰러트리고 주먹을 내리꽂는다. 모니크는 싸움에서 힘겹게 이기지만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격투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빠는 딸을 버린 채 혼자 도주하고 모니크는 그제야 자신이 철저하게 이용당했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영화의 제목인 ‘퍼스트 매치’는 단순히 모니크가 처음 치르는 결승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 누가 자신의 성장을 돕고 또 누가 자신을 착취하려 하는지 가려내고 불운한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이 어린 여성의 인생 최초, 첫 번째 대결인 셈이다.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은 모니크에게 연대할 만한 여성이 없다는 것이다. 레슬링팀에는 여성 선수가 없고 또래 여성이 나오기는 하지만 모니크와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적대적 삼각관계에 놓여 있다. 불법 격투장의 여성들도 착취당하는 피해자인데 영화는 그들을 위협적인 존재로만 묘사한다.
‘당갈’의 주인공도 아빠의 훈련에 불만을 품으며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끈끈한 자매애가 있었다. 모니크에게도 아버지를 대신해 기댈 여성이 있었다면 그의 퍼스트 매치가 조금은 덜 아프고 덜 힘겨웠을지도 모른다.
양민영 주짓떼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자기방어 팁
그래플링과 타격, 두루 익혀라
‘퍼스트 매치’를 보면서 실전에서 그래플링(‘얽혀서 싸운다’는 뜻으로 주짓수·레슬링·유도·이종격투기를 포함한다)이 더 유용한지, 아니면 타격이 더 유용한지 의문이 들었다. 가끔 그래플링과 타격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서 배우는 게 좋냐고 묻는 여성들도 있다.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타격은 상대와의 거리를 만들고 도망칠 틈을 여는 데 유용하다. 반면에 그래플링은 이미 붙잡혔거나 넘어졌을 때 상대의 압박에서 빠져나오는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답은 그래플링과 타격의 감각을 두루 익히는 것이다. 압박하는 상대를 몸으로 밀어내기, 손목을 잡혔을 때 풀면서 빠져나오기, 팔을 크게 휘둘러 기습적으로 상대의 뺨 때리기 같은 기본기만으로도 위급 상황에서 방어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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