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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로 위장한 정글로 아이들 내모는 나라

등록 2026-04-30 22:07 수정 2026-05-05 07:3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맑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진다. 1년 중 한 달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귀한 시기에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인데 제일 신나게 놀아야 할 초등학생들이 정작 소풍을 안 간다. 대다수의 초등학교가 현장체험학습도, 수학여행도 가지 않는다. 요즘은 체육대회를 해도 승패를 굳이 겨루지 않는 무승부 방식의 레크리에이션이 대세라고 한다. 졸업식 때는 전원 상을 주거나 아무에게도 상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비교와 경쟁의 여지를 일찌감치 차단한다. 교사의 책임 부담이나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 그 이유야 여러 가지겠으나 교육 현장을 아우르는 일종의 경향임은 분명하다. 도착하지 않은 현장, 결정되지 않은 승부, 짐작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 등 어디에나 일단 갑옷을 두르려는 데 애를 쏟는 것이다.

 

‘갑옷’만 남은 학교

 

올해 3월 초, 초등학생인 딸이 학교에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치렀다. 학년별로 최소 학업 수준을 성취했는지 확인하고자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일제고사다. 결과는 ‘도달’ 혹은 ‘미도달’로 평가되는데 학생이 아닌 학부모에게만 학교 전용 앱의 개인 메시지로 개별 통보된다. 이 간략한 정보를 전하는 학교와 선생님의 태도가 시종일관 어찌나 조심스러웠는지 암구호를 쓰지 않는 게 의아할 정도였다. 그 취지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수우미양가 줄세우기식 경쟁을 지양하고 배우는 과정을 중시하며 다면적 평가로 사고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기초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당사자는 결과를 정확히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할까.

이 또한 경쟁과 승패, 평가와 순위,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실재를 애써 숨기고 불필요한 갑옷을 두르는 것이다. 갑옷의 효용도 없거니와 그 자체로 조삼모사다. 아이들을 기만한다. 매우 잘함-잘함-보통의 평가만 받던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간·기말고사를 치지 않거나 치더라도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는 순간, 아이들은 일제히 무한 입시 경쟁으로 내몰린다.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하고 내신을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완화해도 백분위와 표준점수는 여전히 남는다. 전체 수능 응시자 중 내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내 앞과 뒤에 각각 몇 명이 있는지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그 결과에 따라 극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라는 낙인을 얻는다. 패자 사이에도 촘촘한 서열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강제로 경쟁에서 배제됐던 아이들이 갑자기 누구보다 치열하게 전투에 임해야 한다. 불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더 이상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항변하지 않는다. 중간고사 한 번 못 봤을 뿐인데도 ‘나락 갔다’고 자조한다.

 

아이들은 이미 안다

 

상처받거나 절망해본 적 없는 아이들은 단 한 번의 실수에도 불안하다. 어릴 때는 이기고 지는 것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실은 입시 결과가 인생의 전부란 것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어른과 사회를 다시 신뢰하지 않는다. 갈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동물의 숲’ 게임 세상에서조차 낚시대회를 열고 점수를 매기며 상품을 차등 지급한다. 어른의 의무는 현상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되 폐단을 교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패배해도 괜찮다고 알려주고 또 다른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 책임을 학교와 학부모, 정부가 서로 떠넘기지만 않으면 된다. 금방 들킬 거짓말로 아이를 속이는 어른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신성아 ‘탐욕스러운 돌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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