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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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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해서 가르치라?

등록 2000-10-05 00:00 수정 2020-05-03 04:21

<font size="4" color="#a00000">수준별 교육 놓고 교육당국·전교조 대립… 다양한 기회제공인가, 우열반 편성인가 </font>

지난 9월22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 한반 37명인 아이들이 ‘수학 ②-㉯’라고 표시된 책을 펴놓고 곱셈과 구구단을 배우고 있었다. 담임인 최아무개(46) 교사는 손가락과 숫자카드를 이용해 6 곱하기 1이 왜 6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책상마다 위에는 검정색과 흰색 등 갖가지 색깔의 단추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수업이 시작된 지 30여분 지났을까. 최 교사가 한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워보라고 했다. ‘6×6=36’까지 잘하던 그 학생이 6×7에서 멈칫했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을 찾느라 쩔쩔매지만 끝내 그의 입에서는 42가 안 나온다. 칠판 앞에 선 다른 아이도 마찬가지다. 6×7에서 그만 턱, 막혀버렸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그의 얼굴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잠깐 스쳤다. 천진스럽던 얼굴은 이미 간데없다.

40분 수업이 다 끝나갈 무렵 최 교사는 6단을 완전하게 외우지 못한 아이 다섯명을 따로 앞 자리로 불러냈다. 이어 최 교사가 미리 준비해온 단추를 이용해 6 곱하기 7이 42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6단을 완전히 외운 아이들은 그 사이 개별적으로 수학문제집을 풀었다.

오늘 6단을 못 외운 아이들은 잠시 뒤 점심시간이나 내일 아침 자습시간에 최 교사로부터 따로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른바 심화·보충형 수준별 교육이다.

올해 시작된 7차 교육과정의 핵심 사안

“학업 수준이 낮아 따로 이렇게 수업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늘 우울하고 주눅들어 있어요. 기운 없는 모습이 역력하죠. 성적이 중간쯤 되는 아이들은 자기들도 저렇게 될까봐 더 열심히 하는 게 뚜렷이 보여요.” 최 교사가 말했다.

제7차 교육과정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이 초등학교 2학년 수학 수업도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학습자 중심의 단계별 또는 수준별 교육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은 올해 초등 1, 2학년에 적용됐고, 내년에는 초등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까지, 2002년에는 초등 5, 6학년, 중학교 2학년, 고교 1학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7차 교육과정은 단계별·수준별 교육과정을 위해 기존 학교급별을 벗어나 초등 1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를 10학년으로 편성했다. 그리고 인문, 자연, 실업계 구분없이 초등부터 고교 1학년까지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실과 등 10과목을 국민교육 공통기본과목으로 설정해 똑같이 배우도록 하고 있다.

수준별 교육과정은 3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단계형은 수학과 영어(중등)가 적용되며 수학은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각 단계별로 교과서를 1-가, 1-나 등 20가지로 나눠 수업한다. 영어는 7학년부터 10학년까지 각 단계별로 역시 교과서를 7-a, 7-b 등으로 나눠 운영한다. 심화·보충형은 국어, 사회, 과학, 영어(초등)에 적용되며 학생의 능력에 따라 기본 학습내용을 보충 또는 심화하도록 편성한다. 과목선택형은 11학년(고2)과 12학년(고3)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과목을 학생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 7차 교육과정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전교조는 제7차 교육과정을 “학생과 교사의 삶을 뒤흔들 폭풍우”라고 규정한 뒤 “80%의 학생을 심리적 사회낙오자로 만들고 학생들 사이에 무한경쟁을 부추겨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사회를 만들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는 일선학교별로 학교교육과정운영위원회에서 7차 교육과정을 실질적으로 거부하는 등 앞으로 7차 교육과정 철폐투쟁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교육당국과 전교조가 7차 교육과정을 놓고 가장 크게 대립하는 지점은 수준별 교육이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김경욱 교사는 “지금은 1, 2학년만 해당되지만 내년에 초등 3, 4학년으로 7차 교육과정이 확대되면 수준별 수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수준별 수업은 우열반 편성을 전국적으로 제도화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수준별 교육은 성적에 따른 줄세우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학급당 학생 수나 교원 수 등 현실적인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으로 학교가 엉망이 될 게 뻔하다는 게 전교조의 주장이다.

“우열반 편성을 전국적으로 제도화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7차 교육과정에는 우열반 개념이 없다”며 “능력과 개인차에 따라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우열반 편성으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고 맞섰다. 교육부 송영섭 학교정책과장은 “한 교실에 모아두면 공부 잘하는 아이도 지루해서 놀기만하고 잘 못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며 “능력이 서로 다른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할 때”라고 반박했다.

학부모들의 경우 아직 초등 1, 2학년만 적용되고 있어서 7차 교육과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지만 산발적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 새 교육과정을 시범 적용한 부산 신도중학교의 경우 한 과목의 재이수 대상자로 선정되면 재이수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학생이 60% 이상이었고, 학부모 70%는 자녀가 재이수 대상자가 되면 차라리 학원수강을 받도록 하겠다고 응답했다.

교육부 임광수 교육연구사는 “일부 초등학교에서 수학과목 수업 때 한 학급을 보충반과 심화반으로 완전히 따로 편성해 가르친 탓에 학부모들로부터 ‘왜 내 아이는 보충반을 시키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이는 학급 ‘안에서’ 편성하도록 한 지침을 일선학교에서 오해해 빚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수준별 교육과정이 매 수업시간과 시험 때마다 성적으로 우열반 가르기를 해 아이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7차 교육과정 시범학교인 경북 장산중학교의 경우 주 34시간 중 19시간(56%)을 학생들이 우열반과 우열분단에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어, 수학에서 60점 미만자는 특별보충반에 들어가 아침 자율학습시간과 방과후에 추가로 수업을 더 받았다. 전교조는 이 경우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열등반이나 열등분단에서 보내게 될 학생이 최소 1/5은 되고, 한 과목이라도 열등반이나 분단에 속하게 될 학생은 4/5가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심화·보충형 수준별 교육에서 보충학생은 의욕상실에 빠지고 공부를 잘하는 심화과정 아이들 역시 그들대로 피해를 본다는 게 전교조의 논리다. 정규수업시간의 70∼80%는 기본 학습내용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에 학생을 심화와 보충으로 따로 편성할 경우 그 시간 동안 심화과정 학생은 ‘학생주도활동’이란 이름 아래 방치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응 위한 경쟁 유발… 교육 효과 의문

교육당국과 전교조의 엇갈린 주장은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교육부 송영섭 과장은 “이 제도는 못하는 아이들에게 신경써 배려해주자는 것이지 우열반을 고착화시키자는 것은 아니다”며 “전교조는 편향된 안경을 끼고 7차 교육과정을 바라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금의 학교수업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내 아이에게는 왜 심화과정을 가르치지 않느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이 있지만 이는 평등의식만 강조하고 능력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부모들의 욕심이라는 게 교육부의 생각이다.

특히 교육부 관계자는 7차 교육과정과 관련해 “학생이 사회에 나가 잘 적응하려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쟁은 필요한 것”이라며 “먹을 것을 혼자 많이 먹게 내버려둔 쥐는 금방 죽는 반면 배를 고프게 만들어 경쟁을 시켜준 쥐는 상대적으로 오래 산다”고 말하기도 했다.

7차 교육과정에 대해 비판적이기는 전교조뿐만이 아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인옥 사무처장은 “학생이 자신의 수준에 따라 수업을 선택한다고 교육당국은 말하지만 실제로 학생 스스로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느냐”며 “오직 성적순으로 교사가 일방적으로 자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처장은 벌써부터 초등 1, 2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 똑똑한 줄 알았던 내 아이가 남아서 보충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학원에 보내겠다고 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7차 교육과정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7차 교육과정에 대한 논란은 교육학자들 사이에서도 분분하다. 광주교대 황윤한(교육학) 교수는 능력이 다양한 아이들을 한반에서 같이 수업하는 게 우열반을 가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며 60, 70년대 수준별 교육을 했다가 공부를 못하는 반에 묶인 아이들의 성적이 더 떨어졌다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황 교수는 “장애아들도 일반아동하고 함께 수업시키는 통합교육이 확대되고 있는데 7차 과정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며 “수준별 교육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패배의식으로 인한 이른바 ‘학습된 무능감’만 더해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교대 허종렬 교수는 “미국의 실험결과 열등반 학생들의 학업능력이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획일적으로 모두 똑같은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교육평등을 너무 절대시하는 것”이라며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7차 교육과정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한발 비켜갔다.

7차 교육과정을 둘러싼 논란에서 수준별 교육의 ‘교육적 효과’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를 운영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부재상태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김수동 책임연구원은 “7차 교육과정은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인 97년 말에 고시됐다. 그래서 현재의 학급당 학생 수와 예산, 교실, 교원 수급이 당시에 계획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며 수준별 교육을 할 만한 여건이 원만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는 현실적인 여건이 어느 정도로 갖춰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급당 학생 수가 몇명이 되어야 7차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 없다. 다만 초·중·고교 학급당 학생 수를 대충 35∼40명 수준으로 낮추려면 앞으로 교실을 1만1천개 더 늘려야 하는데 여기에 6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교원 수급 등 곳곳에 파열구 발생

교원 수급문제도 딱히 방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수준별 수업을 하게 되면 초등 6학년의 경우 어떤 학생은 5학년이 보는 수학책을 공부하는 반면 다른 학생은 중학 1학년이 보는 수학책을 배울 수도 있다. 이렇게 하려면 초등 5, 6학년 담임교사가 중학 1학년을 가르칠 수도 있어야 한다. 교육부는 애초 이를 위해 학교급별로 연계해 가르치는 연계교사자격증 제도를 도입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초등과 중학교가 분리돼 있는 만큼 학제가 개편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연계자격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해 결국 유보됐다. 곳곳에서 7차 교육과정에 파열구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전교조는 7차 교육과정은 “이미 시행됐지만 동시에 이미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적인 여건 부재로 인해 수준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는 곳은 거의 없다. 전교조가 지난 7월 전국 초등학교 1, 2학년 담임교사 500명을 대상으로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준별 수업을 ‘부분적으로 하고 있다’가 63.2%, ‘아예 하지 못하고 있다’가 34.0%로 나타났다. 수준별 교육과정을 적용하기 위한 학급당 학생 수는 43.4%가 20∼25명 미만, 31.9%가 25∼30명 미만이라고 답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이아무개 교장은 “우리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가 37∼40명 인데 수준별로 그룹을 조성해 이동식 수업을 하는 것은 여건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준에 따라 분리수업을 하게 되면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많을 것”라며 “시행은 됐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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