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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한 습작생의 부고

등록 2026-04-23 21:52 수정 2026-04-26 18:56
일러스트레인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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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의 문학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문학소녀임을 자부한 세월이 꽤 길었건만 기사를 쓸 때마다 즐겁지는 않았다. 아니, 괴로웠다. 문학기자의 본령이 그것은 아니었겠지만, 매번 백일장에 출전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학 기사에는 여타 기사에 비해 기자의 주관도 많이 들어가고, 문장도 유려하다. 그 많은 텍스트를 허겁지겁 읽고서, 고장 난 잉크젯프린터처럼 ‘드득드득’ 출력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반면 타사의 기자들은 소음도 없이 유려한 문장을 뽑아내는 레이저프린터였다. 매일을, 수상 못한 백일장 참가자의 마음으로 살았다.

‘문학’을 참칭한 가해자들

그 와중에 약간의 숨구멍이 시였다. 소설에 대해서는 ‘안다’는 약간의 자만과 ‘잘 쓰고 싶다’는 용심이 같이 있었다. 그러나 시 앞에서 나는 철저히 문외한이었고, 그걸 오롯이 인정했다. 모른다는 홀가분함 때문이었을지, 알아가는 기쁨 때문이었을지. 시를 읽을 때는 몸에 힘이 절로 빠져 가뿐한 상태가 됐고, 기사를 쓸 때도 일필휘지였다. 모르겠으면 시인이나 평론가들에게 무람없이 질문하고, 거침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무 몰랐기 때문인지, 인터뷰 거절도 자주 당했다. 한번은 원로 시인으로부터 인터뷰를 거절당했는데 사유는 내가 ‘시를 모르는 기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료 기자들에게서 듣는 ‘시모기’라는 놀림이 그저 웃길 만큼 상처가 안 됐다.

2년여의 문학기자 생활이 끝났다. 그때부터 소설은 더러 안 보게 됐다. 어느덧 나의 열등감을 일깨우는 장르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는 편한 마음으로 가방에 소지하고,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읽는다. 열등감이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방에는 공항 노동자 이원석 시인의 신작 시집 ‘밤의 공항’이 들어가 있다. “패스트하게 먹고/ 패스트하게 일하러 간다/ 슬로우하게 푸드 할 시간이 없다”(‘나, 맥도날드맨’) ‘패스트하게 일하러 가는’ 이들로 가득 들어찬 만원 지하철 안에서, 그러나 ‘밤의 공항’ 한 권 덕분에, 나는 ‘슬로우한’ 인간이 된다. 시가 나에게 주는 순수한 구원이다.

2026년 4월17일, 시인이기를 꿈꿨던 이의 부고를 들었다. 습작생 시절에 시를 매개로 한 성폭력을 겪고, 그보다 더 가혹했을지 모르는 세상의 가해로 그는 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그는 이상하게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는 시가 읽어지지 않았고, 그게 무엇보다 슬펐다고 썼다. 그러다가 재판이 끝난 2024년에 이르러서야 그는 다시 연대자들이 선물한 시집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가 시를 잃었던 데에 시가, 문학이라는 장르가 미친 역할을 말이다. 여성 습작생과 ‘남성 기성 문인’ 사이의 위계를 조장하고 공고히 한 ‘문단’이라는 곳의 부정의, ‘미투’ 폭로에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날아들던 2차 가해 등등. 다들 모종의 책임이 있다. 당연히 나도 있다. 그가 한창 투쟁을 이어가던 시기, 나도 문학이라는 장을 취재하는 기자였으니까.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해야만 했는데, 너무 오래도록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도 할 준비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야만 한다.

그곳에서 다시 시를 찾을 수 있길

“잃어버린 것을 찾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가장 있을 법한 곳부터 찾아나가는 방법과 가장 없을 법한 곳부터 찾는 방식이다. 나는 없을 법한 곳부터 찾는 사람이다. (…) 왜냐하면 가장 있을 법한 곳부터 찾는다면 찾을 수 없음을 너무 빨리 알게 되기 때문이다.”(산문 ‘럼주 상자’ 중) ‘사랑은 유실될 수밖에 없다’며 이원석 시인은 이렇게 썼다. 시에 대한 나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었기에 유실도 안 됐을 것이다만, 돌아간 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찾은 사랑 앞에서, 나는 그가 하늘에서는 가장 있을 법한 곳부터 시를 찾아나갔으면 좋겠다. 여러 마음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슬기 칼럼니스트·‘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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