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참는 것은 나의 몇 안 되는 재능. 추위, 더위, 허기, 피로, 통증. 때로는 미움과 사랑까지도. 이 한번 악물면 사라지고 또 살아진다. 어금니에 골이 패도록 이를 악무는 버릇을 고쳐야 만성두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지만 한번 난 이골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이 재능은 밥벌이 앞에서 더욱 그 효력을 발휘하는데, ‘먹고살자고 하는 일’을 하면서 종일 음료 몇 잔으로 끼니를 때우는 나를 본 사람들은 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아요? 이 악무는 버릇 때문인지 나는 피곤하면 으레 잇몸이 붓고 이가 흔들려서 뭔가를 씹어 삼킬 의지를 잃고 겨우 뭘 마시곤 하는데, 그마저도 참을 때가 있다. 화장실에 마음대로 갈 수 없을 때다.
촬영 현장은 어떤 일이 벌어지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일의 연속. 그곳에서 나는 주로 카메라나 스케치북을 들고 서서 ‘끊을 수 없는’ 역할을 맡는다. 왜 무슨 일은 꼭 화장실 갔다 온 틈에 생기는 걸까. 갈 만한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산속에서 벌목하는 아보리스트(수목관리사)를 찍을 때, 바닷속에서 몇 시간 동안 물질하는 해녀를 찍을 때, 음식배달 오토바이와 새벽배송 트럭을 숨 가쁘게 쫓아가며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도 화장실 한 번 가려면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그럴 때는 그냥 참는 것이 수다. 나만 참으면 많은 것이 해결되니까.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아니, 참다 참다 화장실도 참아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화장실을 참고 사는 사람이 많다. 흑인 청년이 요의를 참다못해 백인용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백인의 총에 맞아 사망한 1950년대 미국 사회까지는 갈 것도 없다. 당장 오늘 아침 당신의 집 앞에 택배를 갖다놓은 배송 노동자도, 우편함에 가스비 고지서를 넣어두고 간 가스 검침원도, 당신이 출근길에 탔던 지하철 기관사와 버스 기사도 화장실을 참고 있다. 일터에 마땅한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노상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갈 만한 개방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고, 한 평 남짓한 지하철 기관실에는 기관사를 위한 화장실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어렵게 화장실을 찾더라도 갈 시간이 없다는 것.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 기사와 음식배달 기사의 머릿속에는 매 순간 바쁘게 계산기가 돌아간다. 지금 화장실에 갔다 오면 얼마가 빠지지? 한 구간 운행을 끝내고 다음 운행을 준비하는 10여 분 동안 개찰구 밖 승객용 화장실로 뛰어가는 지하철 기관사는 계속 시계를 들여다본다. 출발까지 몇 분 남았지? 이 지리멸렬한 계산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냥, 참자! 아무리 못 참을 것 같다가도 참다보면 어느새 잊어버린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방광염을 직업병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일주일쯤 촬영 현장에서 화장실을 참고 지내다 서울로 오는 길에는 늘 화려하게 꾸며진 고속도로휴게소 화장실에 들른다. 개중에는 ‘아름다운 화장실’로 상을 받은 곳도 많다. 성전처럼 꾸민 화장실 칸에 들어가 앉아서도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찜찜해하는 훌륭한 인간이면 좋으련만, 비겁한 나는 변기에 앉는 순간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인다. 끝났구나. 여전히 누군가의 화장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뻔히 알면서.
김영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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