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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 일 하루 만에 입안 세 군데 헐어… 그보다 힘들었던 것은

등록 2024-08-03 15:05 수정 2024-08-09 13:20
2024년 6월20일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가 식판을 세척하고 있다. 식기세척기는 헹구는 역할을 할 뿐 조리실무사들이 식판을 하나씩 떼어 내 세제로 꼼꼼하고 빠르게 씻어야 한다. 규모가 큰 과밀학교의 경우 단시간에 수천명의 식판을 불리기 위해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해 근육과 피부가 아리다. 한겨레 채반석 기자

2024년 6월20일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가 식판을 세척하고 있다. 식기세척기는 헹구는 역할을 할 뿐 조리실무사들이 식판을 하나씩 떼어 내 세제로 꼼꼼하고 빠르게 씻어야 한다. 규모가 큰 과밀학교의 경우 단시간에 수천명의 식판을 불리기 위해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해 근육과 피부가 아리다. 한겨레 채반석 기자


학교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대체근로를 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 준비할 때다. 학교 제출 필수 서류인 보건증을 떼러 보건소에 갔다. 담당자에게 용건을 얘기하고 신분증과 서류를 내밀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옛 주소를 현주소로 착각하는 듯했다. 최근에 이사해 현주소가 신분증 뒷면에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에 주소가 있어요”라고 알려주려는데, 갑자기 담당자는 확 손을 빼더니 잠시 허공을 보며 정색했다. 그는 “제가 볼게요” 하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그 뒤 이어진 말도 무척 차가워서, 잠시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보건소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하루에도 찾아오는 주민이 원체 많을 테니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겠나’ 생각하며 거울을 보고 억지 미소를 지어봤다. 스스로 ‘괜찮아. 과민반응이야’ 다독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때였다. 보건소 한쪽에서 중년 여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은 아까 그 보건증 발급 담당자가 있는 곳이었다. ‘식품, 유흥1종, 학교급식’ 중 용도를 표기해 보건증을 발급받는 그 코너에서 이 중년 여성은 담당자에게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느니, “태도를 배워야 한다”느니 말하며 모욕을 주고 있었다. 이번엔 그 담당자가 놀라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왜 서로에게 이렇게 상처받거나 혹은 상처를 주며 사는 걸까.

취재 과정에서 마음이 착 가라앉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학교 행정 관계자가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톡 쏘아붙일 때, 조리실무사들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젊은 남성 조리사가 호칭은 “여사님”이라고 존대하면서도 실제 행동과 말투는 하대할 때, 90분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은 채 식판을 세척한 뒤 손이 덜덜 떨려오는데 관리자가 막대걸레를 내밀며 “이제 바닥을 닦으라”고 말할 때, 뜨거운 불 앞에서 조리하느라 속옷까지 땀에 다 젖었는데 20만원짜리 제빙기가 없어 포트에 물을 끓여 얼린 음료를 녹여 먹었을 때, 휴게실 바닥에 누워 다른 조리실무사들과 함께 누가 어디까지 얼마나 다쳐봤으며 어떤 병원에 다니고 있는지 얘기를 나눌 때….


나는 이 기분들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을 보고서야 이 기분의 이름을 알았다. “현 종사자로서, 곧 떠납니다. 보람도 없고, 노력에 비해 보상도 없는 일. 최저임금이지만 용기 내 시작했던 일인데 노동 강도보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입니다.” 아, 그래. 그 마음이 ‘잔반이 된 기분’이었구나.

단 하루를 일했는데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서 일주일 동안 두 딸의 아침밥을 차려주지 못하고 빵이나 시리얼 따위로 때우게 했다. 입안 세 군데가 헐어서 고함량 비타민을 주문했고, 각종 영양제를 먹으면서도 2주 뒤에야 입안 상처가 사라졌다. 그러나 ‘고강도 노동’ 때문에 힘든 건 아니었다. 취재 기간 내내 나를 가라앉게 한 건, 존중 없는 노동환경이 만든 지독한 ‘잔반이 된 기분’ 탓이었다.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이런 존중 없는 노동환경을 방치해서 결국은 ‘부실급식 사태’로 이어진 이 현실은 아이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걸까. ‘너희들이 커서 이런 존중 없는 노동환경에 내몰리지 않으려면 남들을 이기고 관리자로 설 자격을 획득해야 하는 거란다’라는 비교육적 메시지 아닐까. 심지어 현장에서 본 혹은 인터뷰에 응한 조리실무사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은 뒤 경력이 단절된 여성,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돈을 벌어야 했던 여성, 아이들 저녁을 직접 차려주고 돌봐줘야 하는 상황에 있는 여성들이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는 게 맞을까.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급식실 대체인력 체험기

① 1500명 먹이는 학교에 정수기 없는 급식실… 그들이 찬물 먹는 방법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28.html 
② 급식실 고강도 노동 8시간, 어느덧 손이 덜덜 떨려왔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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