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경기도를 비롯해 6·3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주 4.5일제 도입을 내세운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도 주요 의제로 떠올랐지만,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주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도 무려 반세기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법제도 개정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그 기준과 쟁점에 대해 함께 협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갑론을박했던 만큼 주 4.5일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는 그리 낯설지 않다. 과연 노동시간을 줄여도 생산성이 향상되는가,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만 줄일 수 있는가, 단축된 시간만큼 일자리가 늘어나는가, 사업장 간 양극화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러나 여태 언급조차 되지 않은 중요 쟁점이 하나 남아 있으니, 주 4.5일제는 정말 모두에게 워라밸을 보장하는가.
줄어든 노동시간은 남성 노동자들에게 여가를 즐길 시간을 제공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늘어난 개인 시간만큼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노동자야 일터에서 업무 밀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 수월하겠지만, 집에 와서 저녁도 지어야 하는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이 도무지 줄지 않는다. 뿌리 깊은 성별 분업 논리가 남아 있는 한 연간 노동시간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맞춘다 한들 삶의 질이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주 4.5일제 도입에 따른 기업 규모별·직종별 차이를 메울 보완책은 여러모로 궁리하면서도, 성별 격차에 대해서는 누구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일상을 바꿀 주요 정책을 설계하거나 실행할 때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언제나 너무 쉽게 단일화된다. 연령·직업·지역·입장 등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은 돌봄과 가사노동의 현역이거나 퇴역, 혹은 예비조이며 이들 사이에는 숙련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고위 공직에 오른 소수의 여성조차 그저 ‘여성’ 정치인으로 한데 묶인다. 100여 년 전 서프러제트(Suffragette·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목숨 걸고 참정권을 쟁취해냈지만, 여성은 여전히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온전히 갖지 못했다.
경기도청이 시행했던 주 4.5일제를 이어가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후보도,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도 모두 여성이다. 그러나 경기도지사를 제외한 광역단체장 중 거대 양당이 낸 여성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기초단체장 후보 역시 여성은 더불어민주당이 221명 중 18명을, 국민의힘은 187명 중 7명을 공천했을 뿐이다. 양당 모두 당헌에 여성 30% 공천을 명시했으나 여성 후보는 죄다 비례대표 기초의원에 편중돼 있다. 꼭 필요한 노동이나 그에 마땅한 위상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돌봄노동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여성의 공직 참여율이 아주 극적으로 높아져야만 한다. 여성의 존재 자체가 국회 또는 정부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여성들 사이의, 혹은 그 외 다양한 정체성 간의 차이가 우리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 더 많은 여성이 중요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할 때, 그래서 인구 절반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때 주 4.5일제가 활로를 찾을 것이다. 그간 평가절하된 이들의 역량과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분배할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역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신성아 ‘탐욕스러운 돌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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