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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이 동사가 되려면

등록 2026-05-23 11:38 수정 2026-05-28 09:50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항상 앎에 고픈 나는 이제껏 기자로 산다. 내 관심은 늘 이미 일어난 일을 뒤쫓는 데 있으며, 주로 ‘why’(왜)에 시선이 꽂혀 있다. 2024년 12월21일부터 22일까지 경기도 과천에서 서울을 잇는 고개인 남태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여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으며 결국 길을 열었을까. ‘왜’가 궁금해서 그날 남태령에 간 여성과 퀴어들을 만나 기사를 쓰고 책을 냈다. 그러고 나는 감히, 그날의 남태령을 안다고 생각했다.

영화 ‘남태령’을 봤다. ‘어른 김장하’를 만든 김현지 엠비시(MBC)경남 피디의 새 다큐멘터리다. ‘남태령’은 12·3 내란 국면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불렸던 ‘남태령 대첩’으로부터 시작한다. 윤석열 구속 등을 촉구하며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서울로 오던 농민들의 트랙터는 남태령에서 경찰에 가로막힌다. 트위터(현 엑스·X)에서 ‘남태령으로 와달라’는 트위트를 본 여성과 퀴어들은 속속 남태령에 집결한다. 계엄 당시 국회 앞에 달려가지 못했다는 부채감,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서울 광화문광장과 달리 경찰이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다는 남태령 사이의 낙차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혹한 속에 ‘위플래시’를 부르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화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켰다. 영화의 내레이션을 대신해 끊임없이 팝업되는 트위트들은, 남태령에서 오롯이 사람의 얼굴을 띤다. 생전 처음 보는 농사용 트랙터 안에도 사람이 있음은 물론이다.

 

여성·퀴어가 만든 ‘오병이어 기적’

 

영화는 트위터와 트랙터를 경유하지 않은 남태령의 시민들도 꼬박 호명한다. 겹겹의 경찰 차벽을 뚫고, 라이더들은 남태령으로 향하는 음식과 물품을 날랐다. 택시 기사들은 무료로 사람들을 실어다 나르고, 시민들 모금으로 마련된 난방 버스의 기사들도 어렵사리 그곳에 당도해 힘을 보탠다. 그날의 남태령에서 사람들은 서비스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닌 동료 시민들로 적극 조우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궁금해한 ‘why’라면, 이후부터는 남태령에서 시작된 ‘how’(어떻게)에 관한 얘기다. 희망이 넘쳤던 광장 너머, 돌아온 일상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내란 청산은 아직이고 투쟁은 여전하다. 카메라는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퀴어 축제, 대구의 성서공단과 거통고(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등을 부지런히 비춘다. 투쟁은 지난하고 ‘연대’라는 말은 어느덧 식상해지려는 찰나다.

그때 카메라의 시선 끝에서, 남태령의 시간을 거쳐온 이들은 부지런히 세상에 말을 건다. 집회 현장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과 차별금지법은 악법이라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도 안다. 그러나 남태령이 가져다준 생에의 활기와 효능감은 이들이 오늘을 사는 에너지이자 다른 내일을 꿈꾸는 원동력이 된다.

 

신화 아닌 오늘을 사는 원동력으로

 

김현지 감독은 “남태령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줄곧 했다. 남태령이 신화가 되는 것을 경계함과 ‘현재 진행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말일 것이다. 앎에 집착하는 나는, 사실 영화를 다 보고서도 잘 모르겠다. 그날 남태령에서 일어난 스펙터클을.(심지어 영화에 잠깐 출연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후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남태령이 만든 스펙트럼 속에 있다는 것은 알 것만 같다. 나 또한 일부라는 것도.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웬일인지 기운이 뻗쳐 평소 내리는 지하철역의 한 정거장 전에 내려 한참을 걸었다. 영화에 나왔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영화 속 남태령에서와 달리 잡음 하나 없이 완벽한 음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날의 ‘노이즈’를 상상할 수 있다. 남태령과 그 후를 감각하는 장으로서, 영화 관람을 권한다.

이슬기 칼럼니스트·‘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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