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인션 슬로우어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엔 내가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아빠 과업 체크리스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기를 품에 안기 전에는 자신 있게 체크할 항목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기가 두 돌이 지난 지금, 체크된 항목은 꽤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은 강도 높은 신체 활동이 수반되는 과업이다. 이를테면, ‘캠핑’이 그렇다.
캠핑은 내가 발을 들일 수 없는, 발을 들여서도 안 되는 세계라 믿었다. 세 가족이 있는 산후조리원 동기 채팅방에서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마침내 추진되기 시작한 뒤에도 난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들었다. 다른 두 아빠는 한 명은 추진력으로, 한 명은 실행력으로 캠핑을 끌어가는 사람이었다. 반면 내겐 경험도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아기에겐 미안하지만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나만 살짝 발을 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봄철의 신록은 타들어가는 내 속도 모르고 짙어지기만 했다. 이런 날씨에 캠핑을 가지 않는다면 아기의 믿음에 대한 배반이자, 자연 섭리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경기 양평의 한 캠핑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숲의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흙냄새 섞인 싱그러운 숨결과 자갈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이곳이 일상을 벗어난 공간임을 실감하게 했다. 꽁꽁 얼었던 내 마음도 벌써 조금은 녹고 있었다.
옆에선 두 아빠가 짐을 내리고, 폴대를 끼우고, 의자를 펴고, 흡사 군사작전에 가까운 속도로 캠핑장을 세워갔다. 나는 손 둘 곳을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저쪽은 내가 조금 할 수 있겠다. 텐트는 못 세워도 넘어지는 아이 하나쯤은 붙잡을 수 있지 않겠나.
해가 저물 무렵 숯불 냄새가 번졌다. 고기는 두 아빠가 구웠고, 나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 쪽에 앉았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훨씬 씩씩하게 고기를 받아먹었다. 입안 가득 고기를 씹으며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더 달라 아우성이었다. 그 소리만 들어도 나는 배가 불렀다.
그때 두 아빠가 숯불가로 나를 불렀다. 의자에 앉으니 얼굴 앞으로 따뜻한 기운이 왔다 갔다 했다. 장작이 타닥, 하고 터질 때마다 불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불은 꽤 수다스러웠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캠핑 장비에서 육아 이야기로 흘렀다. 나는 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특별한 순간이 있느냐고. 두 아빠는 각자 잠든 아기의 천사 같은 표정과, 매일 “아빠” 하고 불러주는 순간을 꼽았다. 나는 품에 안긴 아기가 손가락질로 분유통을 가리킬 때를 떠올렸다. 아기의 요구사항이 복잡해질 때마다 늘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때 나는 짐짓 그냥 아빠로 앉아 있었다. 고기를 못 굽는 사람, 텐트 칠 때 별 도움 안 되는 사람이란 사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사실이 대화를 가로막지는 않았다. 결국 아기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감격하는 건 우리 셋이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까.
밤이 깊어 다른 가족들이 텐트로 들어간 뒤, 우리 세 식구는 차 뒷좌석을 펴서 만든 잠자리에 누웠다. 아기는 내 속도 모르고 “아빠, 운전해요!”라며 귀엽게 외치다가, 곧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기분 좋게 놀았다. 차 지붕 위로 빗방울이 타악기 소리처럼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다른 두 가족은 새벽같이 일어나 우리 차로 아침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우리는 여전히 초보였다. 하지만 아기를 데리고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음을 경험한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에겐 얼마간의 자신감이 돋아나고 있었다.
비록 할 줄 아는 것보다 어설픈 게 많은 아빠지만, 이젠 아기에게 캠핑의 추억을 만들어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전적으로 고마운 산후조리원 동기 가족 덕분이지만. 이것도 아빠라고, 아빠 과업 체크리스트의 한 칸을 슬쩍 채워본다.
김헌용 신명중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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