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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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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닉은 ‘노’ 성찰은 ‘예스’

등록 2001-12-13 00:00 수정 2020-05-03 04:22

대학입시 성패 좌우할 논술·심층면접, 그 미로를 통과하는 길찾기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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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국 학원가마다 열리고 있는 게 논술과 심층면접 설명회다. 논술 및 면접고사에 대비하는 비법을 얻으려는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속시원한 답은 딱히 잡히지 않는다. ‘애초에 없는’ 정답을 찾으려니 돌아오는 건 허망하고 애타는 심정뿐이다. 출제위원들의 눈에 속성으로 익힌 기술인지 아닌지가 빤히 비친다는 주변의 충고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당장 논술과 면접이 당락을 가를 판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렇다면 논술과 면접을 잘 치를 수 있는 길은 정말 없을까? 더 정확히는, 그런 길찾기를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2002학년도 대입에서 논술고사를 보는 대학은 24개 대학으로,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등 대부분의 대학이 총점의 3∼10%를 반영한다. 반면 면접고사를 치르는 대학은 서울대·경희대 등 64개 대학으로, 총점의 5∼10%를 반영한다. 특히 20여개 대학이 15% 이상을 반영하는 데서 보이듯 논술 못지않게 면접도 이번 입시의 성패를 좌우할 공산이 크다.

논술은 글재주 겨루는 시험이 아니다

좋은 논술을 쓰기 위해서는 거꾸로 나쁜 논술이 나오는 이유를 따져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논술고사 채점위원들의 한결같은 한탄은 “미리 준비해온 답을 옮겨적기라도 하듯 천편일률적이고 상투적인 답안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출제진이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거나 급조된 ‘기술’만 갈고 닦은 데 있다. 후자라면 논술에 정답이 있다는 관념부터 깨야 한다. 출제자들은 결코 정답을 원하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갖고 있는 정답도 없다. 논술은 자신의 개성있는 시각과 논리적 사고력을 재는 시험이다. 단순한 글재주를 겨루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논술 출제진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성학원 마상룡 논술면접팀장은 “논술고사에 출제되는 지문은 주로 고전이지만 출제자의 관심은 현대사회의 각 영역에서 나타나는 핵심문제와 삶의 근원에 대한 것”이라며 “따라서 현실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폭넓고 다양한 글 읽기와 사고를 통해 삶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을 통해 세상보는 눈을 기르는 것만으로는 좋은 논술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평소에 자신이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현실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거듭 던져야 한다.

물론 질문 자체도 그냥 나오는 건 아니다. 읽은 내용을 현실의 문제와 연관지어 사고하는 ‘습관’이 몸에 배야 물음표도 던질 수 있다. 좋은 논술을 쓰기 위해 시사적인 흐름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사실 논술문제의 텍스트는 주로 고전이지만 정작 묻는 건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세운 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시사 흐름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나아가 답을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시사잡지다. 신문은 사건을 나열식으로 보도하는 데 그칠 뿐 아니라 담긴 내용이 너무 방대해 무엇이 중요한지 얼핏 분간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한겨레21>같은 시사주간지는 의미있는 사건이나 현상이라고 여겨지는 것만 골라 근본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어간다는 점에서 수험생에게 훨씬 도움된다. 마상룡 팀장은 “수험생들의 경우 굵직굵직한 시사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최근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며 “시사잡지의 심층적인 해설기사를 통해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논술시험이 임박한 만큼 사회적 흐름을 깊이있게 짚어주는 시사잡지는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

논술을 대비할 때 고정관념과 편견, 상식적 사고가 담고 있는 오류와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글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펼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발랄하고 전복적인 사고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과 삶에 대한 인식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칫 혼자만의 ‘사고의 감옥’에 갇히기 십상이다.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실장은 “시사잡지의 경우 특정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논리정연하고 깊이있게 분석하는 글들이 많기 때문에 자주 읽다보면 어떤 내용이 자신의 주제가 될 수도 있다”며 “밑줄을 쳐가며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자신의 관점 세우도록 시사잡지 등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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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어디서 많이 출제된다더라, 하는 말에 휘둘리다보니 나타나는 게 많은 글과 책을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고 마는 잘못된 습관이다. 사실 출제진이 지문을 제시하는 건 문제만 달랑 내놓을 경우 채점기준이 없는 백일장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지문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박학천논술연구소 윤성진 연구원은 “논술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인 만큼 평범한 사고보다는 평소에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글을 높게 친다”며 “현실과 연관시켜 문제와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을 꾸준히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어떤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동의’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고 치자. 과거 시민운동단체가 선거법 위반을 무릅쓰고 벌인 낙선·낙천운동을 통해 사회적 동의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비록 동의에 기초한 것이라도 불합리한 동의라면 거부할 수 있는지를 논하면서 훌륭한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주변의 문제나 현상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이런 기반 위에서 자신의 눈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는 논술뿐만 아니라 학문을 하는 기본 태도이기도 한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없이는 그런 능력을 기르기 어렵다. 단순히 외워서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윤성진 연구원은 “논술지도를 하다보면 현실문제에 대해 안목이 열려 있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며 “안목이 열리면 독창적이고 현실을 날카롭게 인식하는 글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논술은 글이 유려한지를 재는 ‘작문시험’이 아니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글은 그 사람이 살아온 만큼만 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삶과 체험, 사회적 현상에 대해 늘 의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습관이 몸에 밴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한다면 자기 주장을 훌륭하게 논술에 담아낼 수 있다. 물론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풍부한 만큼 시사적인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면접고사 또한 논술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보다 더 좋은 대비책은 없다. 마상룡 팀장은 “면접에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펼치려면 사회나 삶의 기본적인 쟁점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관점과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면접관의 관심은 ‘무엇을 주장하느냐’보다 ‘왜 그런 주장을 하고 다른 견해에 반대하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관점이 가다듬어지지 않은 채 유창한 언어나 즉흥적인 순발력에만 기대려하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일반면접과 심층면접으로 나뉘는 면접고사에서 측정하는 건 수험생의 인성과 가치관 등 기본소양과 지원한 학과에 대한 전공소양이다. 일반면접(5분 안팎)이 기본교양과 전공소양을 5 대 5 정도로 묻는 반면 심층면접(20분 안팎)은 3 대 7 정도로 전공소양을 주로 묻는다. 심층면접을 실시하는 대학은 서울대와 중앙대의 전 학과, 전남대·건국대의 일부학과 등이며 대부분의 대학은 일반면접을 치른다.

면접도 폭넓은 이해 바탕으로 조리있게

기초소양에서는 인생, 이웃, 사회, 국가 등에 대한 자신의 일정한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난해 서울대는 심층면접에서 △가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과외 허용이 정당한가 △유전자조작농산물 생산에 찬성하는가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하는가 △낙후지역의 카지노산업 유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흐름을 정리하는 글을 읽음으로써 의견이 갈리고 다툼이 생기는 이유와 근거를 파악한 뒤 그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자신의 견해와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점을 돋보이게 하면 면접관에게 어필할 수 있다. 예컨대 이번 9·11 미국 동시테러와 보복전쟁이라면 미국과 이슬람주의 가운데 ‘누구의 시선으로’ 사태를 볼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논술 및 면접고사는 12월19일부터 실시된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김영일 교육연구실장은 “요즘, 최근 석달치 시사주간지 등에서 다룬 내용을 모아 대비하고 있다”며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수험생이라면 시사잡지를 훑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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