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손가락과 이별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의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돌림노래 같은 말을 부르게 했다. “참 게으른 손이다!” 그 게으른 손 덕분에 그는 한때 기타리스트를 꿈꾸기도 했지만, 못갖춘마디처럼 허름한 통장 잔고를 견디다 못해 결국 부지런한 봉급생활자의 삶을 결심했다. 늘 일손이 모자란 2교대 공장은 그가 쭈뼛거리며 내민 게으른 손을 선뜻 잡아주었다.
첫 출근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열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희고 얇은 악보를 쓰다듬던 엄지와 검지, 손톱 밑에 굳은살이 단정하게 박혀 기타의 G7 코드와 Am 코드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던 중지, 허물어질 줄 알면서도 영원을 약속하던 새끼손가락, 그토록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과는 영영 이별이라고, 미련이 남으면 손가락을 부러뜨려서라도…. 비장한 결심 끝에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은 무안할 정도로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그의 일터에 손가락과 이별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 뭐라도 해보려는 게, 얼마나 장해? 그의 손을 처음 잡아준 작업반장은 왼쪽 엄지 한 마디가 없었다. 흔히 있는 절단 사고였다. 노무사 말로는 9급 장해를 받을 수 있었는데, 10급밖에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공장에서 매긴 엄지 한 마디의 가격은 5천만원이 조금 넘었다. 나는 카메라 뒤에서, 그가 멀뚱히 서서 공장 사람들을 보다 말고 자신의 길고 가느다란 ‘게으른 손’을 슬그머니 내려다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공장에서 일한 지 두 달여 만에, 그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던 ‘게으른 손’이라는 오명을 마침내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프레스 작업을 하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골절됐기 때문이다. 툭 불거진 손가락 마디는 깁스를 푼 뒤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14급 장해를 인정받아 500만원의 보상금을 받고서야 자신이 받은 등급이 장애가 아니라 ‘장해’임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거래요. 일상생활에도 아무 문제 없고. 보기에만 좀 그런 거지. 그는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삐뚤어진 새끼손가락을 들이대며 웃었지만, 나의 야속한 눈썰미는 그가 가방에 늘 달고 다니던 기타 모양의 키링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채버렸다. 공장 사람들은 그가 참 씩씩하다고, 요즘 보기 드문 장한 청년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나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는 보상금이 지급된 다음 날 아무런 말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장해란 상해 또는 질병에 대해 치유된 후 신체에 남아 있는 영구적인 정신 또는 육체의 훼손 상태. 영영 훼손당한 그의 새끼손가락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다시 아름답고 무용한 곳으로 돌아가 전처럼 움직일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있을까. 혹은 이전보다 한 마디쯤 더 게으른 손에서 멀어졌을까. 그때도, 누군가 또 일터에서 손가락을 잃었다는 뉴스를 들은 오늘도, 게으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알량한 일뿐이다.
김영희(필명)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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