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령 올해 초 달성한 역대 최고 고용률 지표 앞에서는 이면의 청년 실업률과 단기 노인 일자리 수 등을 먼저 확인했다. 또 팔레스타인땅 가자지구의 참상이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펙터클하게 보이는 것이나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얼굴만 유독 클로즈업하는 뉴스 화면도 늘 경계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찾아내는 데 열중해야 할 것 같다.
2026년 3월20일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 진압 중 다친 소방관을 포함해 부상자도 60여 명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서울 광화문에서 컴백 공연을 하기 하루 전의 일이다. BTS의 리더 알엠(RM)이 리허설 중 발목을 다쳐 본공연 안무에 제한이 있으리라는 기사는 포털의 메인 뉴스에, 스마트폰 뉴스 알림창에,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 미디어보드에까지 수백 회 보도됐으나 화재 소식은 단신에 그칠 뿐 집중 보도로 이어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신원확인이 늦어지며 가족들이 장례도 못 치르고 발만 동동 구른다는데 검색어를 입력하고 해당 기사를 굳이 찾아내야 그 소식을 알 수 있었다.
바다 건너 일은 더하다. 미국·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이란의 초등학교에서 175명이 졸지에 목숨을 잃고 부모가 피눈물을 흘리는데 우리가 지금껏 가장 많이 들었던 소식은 언제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언설이다. 이란 정부에 따르면 전쟁 뒤 한 달 동안 175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만 명의 피란민이 생겼으며, 50만 명이 집을 잃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대한 분노니 초토화니 하는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말에 뉴스로서 가치가 부여되고, 오락가락하는 의사결정에는 별다른 논평도 없이 오일쇼크와 인플레이션, 방산주 전망을 예측하는 기사만 관련 콘텐츠로 쏟아진다.
현실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작 내 삶과 맞닿은 것은 거리나 광장에 보이지 않는다. BTS 공연 몇 주 전부터 서울시는 일대에 큰 혼잡이 예상된다고 엄포를 놨고, 다수 시민은 이게 정말 이럴 일인가 하면서도 국격을 높인다니 거대 미디어 기업에 광장을 내주는 불편을 감수했다. 그렇게 BTS는 광장의 얼굴로 전세계에 소개됐지만 앞서 광장에 섰던 평범한 이들의 얼굴은 거의 보인 적이 없다. 더 많은 사람에게 절절하게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가로막혀 광장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들을 보여주는 미디어조차 별로 없다.
요즘은 거리마다 얼굴이 보인다. 차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꿈꾸는 이들의 홍보 펼침막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앗아가지만 그 얼굴은 아무런 정보도 남기지 못한다. 당면한 의제 대신 소속 정당과 대통령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만 열중하니 다른 얼굴과 구별될 리도 없다. 보이는 것이 이토록 빈약하다면 보는 눈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관객을 넘어 목격자가 돼야 한다. 관객은 누군가 보여주는 것만을 보지만 목격자는 현실을 직시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해낸다. 관객의 최선은 화면에 다 보이지 않는 정보를 유추하고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그치나, 목격자는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함으로써 그것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기입되기를 촉구한다. ‘스펙터클의 사회’를 사는 평범한 얼굴들의 절실한 과제다.
신성아 ‘탐욕스러운 돌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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