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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서 울지 않은 돌봄 청년의 죄… 국가 책임은 어디에

등록 2025-05-08 21:27 수정 2025-05-15 16:49
2023년 송지은씨와 남편이 만든 아티스트 듀오 ‘라움콘’이 2023년 만든《1+1=1 (1).5》. 남편이 편마비로 지팡이를 쓰게 되며 우산을 쓸 수 없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우비. 라움콘 제공.

2023년 송지은씨와 남편이 만든 아티스트 듀오 ‘라움콘’이 2023년 만든《1+1=1 (1).5》. 남편이 편마비로 지팡이를 쓰게 되며 우산을 쓸 수 없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우비. 라움콘 제공.


어버이날이었던 2021년 5월8일. 당시 스물두 살이었던 강도영(가명)은 방 안에서 숨진 채 누워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며칠 전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를 테니까, 그 전에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마”라고 한 뒤 도영은 아버지를 돌보지 못했다. 그가 살아 있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5월3일. 아버지는 아들에게 먹을 걸 달라고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도영은 울며 아버지의 방에서 나온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도영은 존속살해죄로 재판을 받고 4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 2024년 7월 가석방됐다.

도영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한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도영의 죄는 소리 내서 울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영의 울음을 듣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는 ‘도영들’의 울음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의 ‘간병 살인의 실태 및 특성에 관한 고찰’ 연구를 보면, 2021년 12건이었던 간병 살인은 2022년 18건, 2023년 15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누군가 아프면, 그의 가족도 함께 아프고, 결국은 공동체까지 모두 아프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었지만 코로나19로 3만 명이 넘는 사람을 세상에서 떠나보내고도 우리는 이 교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히 늙음과 질병, 돌봄은 개인과 가족의 일 정도로만 여겨진다.

국가 권력과 미디어는 건강한 몸을 이상화하고, 영포티(젊고 멋있게 사는 40대)니, 액티브 시니어(은퇴 후에도 여가와 취미를 즐기는 노인)니 하는 말로 유혹하지만 우리는 이 시간에도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 우리는 미래 어느 시점에 반드시 질병과 장애를 얻은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돌봄은 우리 공동체 모두의 일이다. 공동체(共同體)는 한자로 직역하면 ‘하나의 몸’이다. 한겨레21이 인터뷰한 송지은(43)씨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남편이 한 손을 못 쓰잖아요. 비가 오는 날 외출하는데 우산을 못 쥐어요. 한 손은 지팡이를 짚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같이 (한 벌처럼 연결된) 비옷을 입고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한 손으로 남편을 잡을 수 있고 비에 젖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12·3 내란 계엄으로 2025년 6월3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의 의제는 단연 ‘돌봄’이어야 한다. 노화와 치매, 질병으로 시름하는 시민뿐만 아니라 내란 계엄으로 상처 입은 시민의 마음까지 돌봐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5월8일 “어르신 돌봄 국가책임제를 시행하겠다.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통합돌봄을 확대해 어르신이 동네에서 편하게 돌봄을 받게 하겠다. 간병비 부담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나누겠다. 공공이 부담을 나누어 간병 파산의 걱정을 덜어주고, 어르신 등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주치의 제도’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계기로 대선 후보들이 돌봄 국가책임제, 어르신 돌봄뿐 아니라 장애와 은둔 고립 청년,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까지 다양한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의 사회화와 돌봄 민주주의에 대해 논쟁하길 바란다.

한겨레21이 ‘100인 돌봄시민회의’를 계기로 치매 환자와 정신질환자, 장애인을 가족 돌봄 하는 사례를 심층 취재해 현행 돌봄 제도의 미비점과 정책 대안을 밀어올리려 하는 것도 그런 취지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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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회원들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중심 돌봄체계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회원들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중심 돌봄체계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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