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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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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노동자 대부분 탈성매매 이후 대책 부재 “이주·빈곤 대책이 우선 ”

싱글맘 극단 선택 진짜 이유는 생활고…채무, 부양가족, 질병, 취약한 이력 등 모두 겪고 있어
등록 2025-02-23 11:41 수정 2025-02-26 13:51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재개발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엔 공가가 늘었다. 생계를 위해 미아리로 온 업계 노동자들은 최근 급격한 수입 감소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공가 사이로 고층 건물이 보인다. 장윤미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재개발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엔 공가가 늘었다. 생계를 위해 미아리로 온 업계 노동자들은 최근 급격한 수입 감소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공가 사이로 고층 건물이 보인다. 장윤미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불법 대부업체가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미아리에서 몸 판다’는 문자를 보내, 결국 그 엄마 이아영(가명)씨를 숨지게 한 ‘미아리 싱글맘 사건’ 뒤 대통령 윤석열은 엄벌을 지시했다. 해당 불법추심 대부업자는 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같은 업소 동료들이 주목한 단어는 ‘대부업’이 아니었다. 이들은 재개발 지역인 서울 신월곡1구역 이주 개시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가 급격히 쇠락한 가운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아영씨의 생활고’에 공감하고 있었다.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한테 말이라도 했으면…. 그게 너무 마음 아파. 아영이가 남편 외도로 이혼했거든. 혼자 아이 돌보면서 어려우니까 양육비 소송도 하고 있었던 거로 알아요.” 현관이모 신미자(가명)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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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센터 손길에 거리 두는 이유

 

아영씨는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매주 목요일 열리는 ‘신월곡1구역 이주대책 요구’ 집회의 일원이었다. 그가 생전 집회 참석 때 이런 글을 썼다. “자격증 하나 없이 배움이 부족해 식당에서 온갖 궂은일 다 해도 한 달에 200만~250만원 남짓입니다. 남들은 200만원으로도 충분히 한 달 생활이 가능하시다고요? 경제적·물질적 지원 하나 없이 혼자 젖먹이 키워보셨습니까? 내 자식, 병든(뇌졸중) 내 부모 생계 책임지겠다는데 저는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아영씨는 성매매 업소에서 돈을 버는 동안 뇌졸중 환자인 70대 아버지와 아이를 챙겨준 시간제 보육 도우미에게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써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월9일 아영씨가 일했던 성매매 업소에서 만난 박소연(가명)씨도 한때 작은 디자인 회사의 회사원이었지만,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간병하는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부모 몰래 미아리로 왔다(30년 일할 때도 내쫓길 때도…미아리 여성들이 한평생 노출된 빈곤과 착취참조). 성매매 여성이 성구매자 1명에게 성을 판매하고 받는 돈은 5만원인데(총 10만원 가운데 절반), 그는 부모에게 주기적 부양비를 보낼 때 많게는 500만원까지 보내봤다. 100명에게 성매매를 해야 가능한 돈이다.

이러한 빈곤 상황에 처해 있다보니 이들은 가장 적극적으로 이들을 돕고자 하는 성매매피해상담소인 ‘여성인권센터 보다’와 같은 곳의 손길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일자리를 겨우 찾는다 해도 최저임금을 받을 텐데, 이를 통해 부채나 병든 가족의 부양 부담을 감당하면서 생계까지 이어가긴 어렵다는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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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에서 나와서 양말 이런 선물을 갖다줄 때가 있거든요. 도와주는 건 고마워요. 그런데 제가 농담식으로 그래요. 돈 주세요. 여긴 돈 급한 사람들인데 왜 돈으로 주지 쓸데없는 걸 주냐고. 제가 저번 인터뷰 때 상황 얘기했잖아요. 남편 아프고 당장 점심 걱정된다고 했잖아요. 옆에서 이모들이 듣고 저한테 만원, 이만원 몰래 쥐여주고 가는데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자기들도 다 어려우면서.” 성매매를 하다 이제는 현관이모 일을 하는 김정현(가명)씨의 얘기다.

이들은 자신들을 써줄 일터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밤낮이 바뀐 생활, 성매매로 인한 건강 악화, 스트레스로 인한 음주 등으로, 당장 식당·공장 등에서 일하기 힘든 몸 상태란 것이다. 인터뷰 때 만난 10여 명 미아리 노동자 가운데는 보랏빛 손에 버짐과 흡사한 피부병 흔적을 보여주는 이, 우울증약 등 다량의 복용 약이 들어 있는 가방을 보여주는 이도 있었다.

서울 성북구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내 한 업소에 부착된 안내문. 성관계 녹음, 욕설, 폭행, 협박 등 위험에 노출된 이곳 노동자들은 ‘불법 성매매 처벌’이 두려워 증거를 찍어놓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위험을 감수하며 성구매자 1명으로부터 성매매 여성이 받는 돈은 5만원(총 가격 10만원의 절반)이다. 장윤미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서울 성북구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내 한 업소에 부착된 안내문. 성관계 녹음, 욕설, 폭행, 협박 등 위험에 노출된 이곳 노동자들은 ‘불법 성매매 처벌’이 두려워 증거를 찍어놓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위험을 감수하며 성구매자 1명으로부터 성매매 여성이 받는 돈은 5만원(총 가격 10만원의 절반)이다. 장윤미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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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려갈 곳도, 올라갈 희망도 없다

 

집회 참여자 가운데 한 명이 쓴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자활지원사업을 했나요? 그걸로 우릴 도왔다고요? (…) 성북구청이 우리에 대한 이주대책 마련이 확실하게 되지 않는다면 저는 성북구청 앞에서 죽을 겁니다. 밑바닥 생활을 하다보니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올라갈 희망도 사라졌으니까요.”

이들은 당장 빈곤 문제에 치여, 탈성매매를 전제하는 지원책을 마뜩잖아했다. 그래서 짧게는 10년, 오래는 30년 이상 일한 일터 폐쇄에 따른 이주 보상비를 요구하고 있었다. 당장 빈곤 대책이 있어야 대안을 찾을 때까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에서 활동하는 서울시 ‘다시함께상담센터’ 쪽에 이런 빈곤 여성 가장들의 상황과 인식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 너무 어렵죠. 성매매 여성 중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사실은 그럴 때 ‘가족과의 정서적 분리’를 이야기해요. 본인 몸이 계속 상해가면서 300만원씩 보내고 하는 건 긍정적인 가족상이라고 보기 어렵잖아요. 언니 몸이 먼저고, 언니 몸이 나아야 가족도 생각할 수 있다고 얘기하죠. (또 부양 의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경우도) 중학교 그만두고 미성년자일 때 들어온 분이 많으니까 식당에 뭘 제출하는 것조차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어렵게 느끼세요. 하나하나 같이 할 수 있도록 ‘사부작공방’이란 공간에서 돕고 있어요.” 오승윤 다시함께상담센터장의 말이다.

2025년 2월13일 오전 서울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노동자들이 재개발로 공가가 늘어난 신월곡1구역 골목길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급하게 김수진 이주대책위원장의 잃어버린 반려견 이름을 외치고 있다. 손고운 기자

2025년 2월13일 오전 서울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노동자들이 재개발로 공가가 늘어난 신월곡1구역 골목길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급하게 김수진 이주대책위원장의 잃어버린 반려견 이름을 외치고 있다. 손고운 기자


이런 괴리 속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오히려 업주에게 정서적으로 기대는 모습을 보인다. 매주 성북구청 앞 집회에 나오는 이들 가운데 유일한 업주인 양진숙(가명)씨는 추운 겨울날 집회를 하는 만큼 보온병에 담은 따뜻한 차나 커피, 집기 등을 지원한다.

“업주란 직업이 솔직히 떳떳하지 못한 거, 아가씨(성매매 여성)들 이용해 돈 번 거 인정해요. 처음에 집회 나갈 땐 나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근데 이제 난 안 받아도 돼요. (서울시·성북구가 계속 집회를 무시하니까) 막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다 허물어져가는 집 건물주들이 1500씩 몇백씩 월 임대료 받고 벌금도 대신 내주고 할 땐 누리다가 이제 이 사람들을 골칫덩어리 취급 하잖아요. 내가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아는데.”

 

세상에 착한 업주 없다지만, 그나마…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가 쓴 책 ‘성매매 경험 당사자 무한발설’(봄알람 펴냄)을 보면 세상에 “착한 업주는 없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필요한 역할은 성매매 여성들이고, 건물주·업주·현관이모 등은 아가씨의 위험한 성노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를 일률적으로 ‘가해자-피해자’로 설정하고, 탈성매매를 전제로 한 지원만 이야기하면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을 뒷걸음질 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밥을 함께 먹고, 유기견을 함께 돌보고, 해코지하려는 성구매자들 사이에서 서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아리의 한 성매매 여성이 집회에 사용하기 위해 쓴 글을 보면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 전해지는 속설에 불과했다. (업주, 현관이모들과) 여름휴가철이면 함께 바닷가에 놀러가고 겨울에 눈싸움도 함께 했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기자가 영업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2월13일 저녁, 업소에 들어서자 현관이모, 성매매 여성, 미용사 등은 “밥은 먹었느냐”는 말부터 시작했다.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깻잎김치, 카레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작은 업소 안에 온기가 도는 느낌이다. 이날 아침에는 김수진 이주대책위원장이 17년째 키운 반려견이 사라졌는데, 새벽 영업시간이 끝나 피곤한 상황인데도 모두 합심해 눈밭 발자국을 따라 쫓으며 반려견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반려견을 찾았을 땐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흡사 ‘가족’ 같은 모습이다.

“노름하던 아버지가 하루 종일 내게 건 말은 ‘물 가져와라’ 등 단 세 마디 정도였다.” “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아버지 재혼 날이었던 거 같은데 집에서 나와도 아무도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가족도 없이 혼자 월세방에서 새벽에 잠에서 깰 때면, 심장이 꽉 조여오는 느낌이다.” 미아리 성매매 여성들이 인터뷰 때 한 말이다. 이주보상대책에 손 놓은 지방자치단체, 재개발 이윤 외엔 관심 없는 조합, 탈성매매를 전제로 모든 지원을 이야기하는 지원단체 사이에서, 이들은 매주 성북구청 앞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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