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14일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의 새벽. 2024년 12월 재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면서 인적은 더욱 드물어졌다.
2025년 2월13일 서울 성북구 길음역 인근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인적이 드문 골목의 한 업소 앞에 70대 여성 노인이 앉아 있었다. 차가운 공기 때문에 모자를 눌러썼고, 난로를 켠 채 프림커피로 몸을 녹였다. 노인은 성구매 남성을 호객하는 현관이모(마담)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인 신월곡1구역 이주가 본격화하고,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의 요구로 성매매 업소들도 하나둘 집결지를 떠나면서 최근엔 호객보다 창고 철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새벽녘, 30대로 추정되는 술 취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와 욕설을 섞어가며 시비를 걸었다. “야…×나 불친절하네. 나 서운하다?” 노인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휴대전화 화면만 봤다. 반응이 없자, 남성은 흥미를 잃고 그냥 돌아섰다. 노인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욕설과 반말은 익숙하지만, 이유 없는 목졸림이나 폭행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 매번 긴장된다. 의자 옆에는, 이전에 한 남성이 폭력을 휘두르며 깬 유리창을 대충 박스로 이어붙인 흔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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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 저걸 쳐다보면서 생각해. 70대가 됐는데 내가 그동안 한 게 뭐지? 반평생 미아리서 보냈는데 인자 뭐 해갖고 먹고살지? 좋아서 여기 온 사람은 없어. 아가씨들 해코지하고 녹음하고, 진상 짓 하는 남자들 오면 내가 ‘아가씨 없어요’ 하거든. 그럼 젊은 남자들이 반말로 ‘야, 안에 아가씨 없어? ××년아’ 하기도 하고 ‘내가 널 죽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러기도 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 살면서 찌들어가는 거 있잖아. 그걸 풀고 가는 곳이야. 불법 성매매 벌금 때문에 신고 잘 못하는 거 아니까. 우리끼린 그런 말을 해. 미아리 없어지면 저 사람들은 이걸 (이 폭력성을) 어디 가서 풀까.” 김정자(가명)씨가 말했다.
김씨는 언론인이었던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이곳으로 왔다. 40대 주부였던 그가 식당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해도 20억원 빚을 감당하지 못하자, 지인이 당시 활황기였던 미아리 일을 권했다. 장성한 자식은 아직도 그가 시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안다. 서울은 주거비가 비싸 경기에 거주하는데, 일하는 주중엔 좁은 업소 방 안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다.

2025년 2월13일 서울 성북구청 앞에 ‘미아리 싱글맘 사건’ 당사자인 이아영(가명)씨가 생전 남긴 글이 세워져 있다. 이씨는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앞두고 생활고를 겪으면서 이자율이 수천%에 이르는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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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씨가 30여 년을 일한 동네인데, 유독 새벽이 무서워진 건 2024년 9월 이후였다. 업소에서 1년 가까이 함께 자며 생활하던 이아영(가명)씨가 100만원 이하 돈을 빌렸다가 연이율 수천%를 요구하는 불법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려 목숨을 끊었다. 아영씨 역시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김씨처럼 일주일의 반은 업소 방 한편에서 자고, 반은 병든 아버지와 6살 딸이 있는 집에 가서 가족을 돌봤다. 또 다른 현관이모인 60대 여성 신미자(가명)씨는 아영씨가 수입의 일정 부분을 “아빠 반찬도 해주고 딸도 봐주는 시간제 보육 도우미를 구하는 데 써가면서 정신없이 살아야했다”고 전했다. “내가 그 사건 이후로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아영이가 자던 방에 들어가질 못했어. 집에 갔다 오면 딸내미 보라고 막 동영상을 보여줬었거든. 문을 열면 ‘이모~ 나 일어났어’ 하면서. 얼마나 딸을 사랑했는데, 얼마나 무서웠으면…. (다른 업소들) 현관이모 다 같이 계속 울었다고.” 김정자씨의 회고다.
아영씨가 자던 공간이라는 업소 한구석 방문을 열었다. 성인 2명이 겨우 앉을 수 있고, 1명만 누워도 꽉 차는 크기다. 담배 연기가 흘러들어 가는데 창문은 없었고, 누렇고 오래된 벽지는 낡았다. 켜지 않는지 오래된 텔레비전과 옷걸이가 가구의 대부분이었다.
아영씨의 죽음 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추심을 뿌리 뽑고, 금융당국은 서민 금융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서민들이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서울시도 ‘성매매 집결지를 대상으로 불법 채권추심으로 인한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성매매나 불법 대부업 광고를 걸러내는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발표해 기사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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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5개월, 미아리에서 기자와 대면한 여성 30여 명 중 실태조사를 받았다고 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골목 벽에 불법 대부업 피해를 받았으면 신고하라는 취지의 포스터가 붙은 것이, 이들이 체감한 변화의 전부였다. “배운 사람들은 뭔가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대책이라는 게 상담하라는 포스터였어요. 아영이가 불법 대부업체를 왜 쓸 수밖에 없었는지, 지금 미아리 노동자들의 상황이 어떤지를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수진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대책위원장이 말했다.

2025년 2월9일 아침 7시30분,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에서 새벽 근무를 마친 업소 노동자들이 거실에 앉아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입이 크게 줄어 막막한 건 아영씨만의 일이 아니었다.(19쪽 참조) 2월9일 아침, 미아리의 한 업소에서 만난 40대 김정현(가명)씨가 기자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 수중에 돈 10만원도 없으니까 너무 조급해서 정신이 나간 거예요. 조회수 올리는 부업 10시간 하면 7만원 준다고 했는데, 또 뭘 미션이라고 돈을 보내면 이자를 붙여서 준대요. 이거 통장 보이스피싱에 이용하는 거 아니에요? 혹시 나한테 해코지할까봐 겁나서 대화는 다 지웠는데, 다른 앱에서 또 말 걸었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김씨는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노름 등으로 외로웠던 어린 시절 집을 나와 성노동을 시작했다. 갑상샘 등 건강 악화로 몸무게가 늘자 그나마 하던 성매매도 할 수 없어, 현관이모로 일을 바꿨다. 현재는 당뇨 합병증으로 몸이 불편한 남편(사실혼)을 부양하고 있다. 식당 서빙, 설거지 일도 알아봤지만 건강이 좋지 않고 경험이 전무한 그를 반기지 않았다. 미아리에서 모은 돈으로 옷가게를 차려 재기하려 한 적도 있으나 실패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수입을 가늠하기 위해 2월13일 영업 시작 시간인 오후 7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상황을 확인(영업은 새벽 5시30분까지지만, 2시 이후론 인적이 드물다)했다. 첫 성구매자는 오후 7시30분쯤, 두 번째 성구매자는 오후 8시쯤 왔다. 밤 11시15분쯤 세 번째 성구매자가, 밤 11시30분쯤 네 번째 성구매자가 왔다. 업소를 이용한 뒤 다른 곳으로 갔다가 한 번 더 온 성구매자도 있었다. 문을 열어달라고 해 아가씨들을 확인한 뒤 그냥 문 닫고 가버리는 성구매자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성구매자가 오지 않는 시각에도 성매매 여성들은 불편한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문 쪽을 보고 대기하면서 잠을 자지 못했다. 도중엔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이번엔 못 들어가겠다”고 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날 근무한 성매매 여성은 모두 3명. 성구매자들의 1회(30~40분) 업소 이용 비용은 10만원으로, 5명이 방문했으니 수입은 총 50만원으로 추정된다. 그중 절반은 업주 몫인데 업주는 여기서 주방이모와 현관이모 등의 비용을 처리한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하루 일하고 3명이 25만원 정도를 번 것이냐”고 묻자, 30대 후반 박소연(가명)씨는 “1시간 이용한 사람도 있어서 그것보단 많다”고 말했다. 이날 10만원을 벌었다 해도, 여기서 업소에 출장 나온 미용사 비용(1만원)이 나가면 9만원이다. 김수진씨는 “어릴 때 한 번에 2만원대 돈을 받았으니 나아진 거지만 ‘이 돈 벌려고 이 고생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으로 성매매 집결지는 꾸준히 쇠락했지만, 1년여 전까진 이 정도 상황은 아니었다. 박소연씨에게 ‘지금보다 성구매자가 많을 땐 돈을 주로 어디에 썼느냐’고 묻자 “가족을 부양했다”고 답했다. 박씨는 20대 초반엔 작은 회사에 다녔으나 당시 100만원대였던 월급으론 혈액암에 걸린 아버지, 간병하는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었다. 가족 몰래 미아리에서 일하면서 부모에게 월 500만원까지 송금도 해봤다.

물론 모두가 박씨처럼 극단적 상황에 놓인 건 아니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살지만 빠져나갔다가 사기를 당한 여성도 있었고, 씀씀이를 조절하지 못한 여성도 있었다. 그러나 사치의 사례로 언급한 것이 겨우 “유기견이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불쌍해 한번 밥을 줬는데 안 가고 문 앞에서 기다리더라. 주제도 모르고 강아지를 들였다”거나 “뱅뱅 청바지 안 사 입고 솔직히 게스 청바지(정가 기준 10만원 안팎)를 사 입었으니까 제 잘못도 있다. 어릴 땐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 정도였다.
인터뷰를 위해 업소에 모인 10여 명에게 ‘신월곡1구역 재개발 지역 이주가 끝나면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자, 뾰족한 답변이 없었다. 다만 현관이모인 60대 여성 신미자씨는 이들이 집결지를 떠나 조건만남 등 더 음지로 들어가면 왜 더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휴대전화 영상들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휴대전화 안에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등 이유 없이 욕설하거나 폭력을 쓰는 남자, 이용 시간에 소리를 녹음해놓고 지워달라고 부탁해도 끝까지 지워주지 않는 남자, 이용 뒤 오히려 신고 안 할 테니 200만원을 달라고 협박하는 남자 등의 영상이 들어 있다. 외제차 베엠베(BMW)를 끌고 온 남자도 있었다. 신씨는 경찰에 신고할 목적으로 이 영상들을 찍었으나 불법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처지로 인해 모두 신고하지 못했다. 업소 안에선 여럿이 힘을 합쳐 대항하지만, 공간이 오페스텔로 바뀌면 그럴 수 없다.

2025년 2월13일 오전,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노동자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는 미아리에 남은 성매매 노동자를 300여 명으로 추산한다. 이 중 30여 명은 매주 목요일 아침 성북구청 앞에서 이주대책(최소한의 이주보상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에 나선 여성들은 “건물주들은 다 허물어져가는 작은 주택을 임대하면서 자리 좋은 곳은 월 1500만원을 받기도 하고, 중간 자리도 월 500만원을 받아가며 누렸다. 아가씨(성매매 여성)들이 이사 가려 하면, 재개발되면 이윤을 나눠줄 수 있다는 식으로 월세 내며 계속 살라고 꼬드기기도 했는데, 본격적으로 재개발이 시작되자 이제는 눈엣가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월곡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관계자는 “재개발하는데 식당 주인이 아닌 종업원과 보상을 협의하는 재개발도 있느냐”며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들은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지방정부는 서로 책임만 미루고 있다. 전주·대구·파주 등에선 성매매 집결지 폐쇄와 함께 종사자들을 지원한 사례들이 있지만, 서울시와 성북구는 지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하영 여성인권센터 ‘보다’ 소장은 탈성매매를 전제로 생계비·주거이전비·직업훈련비 등을 지원하는 ‘서울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가 제정됐음에도, 지자체가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성북구는 “대다수가 (미아리 내) 주민등록을 두지 않고 있어 자치구 차원에서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자치구만이 아닌 정부와 서울시 협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책임을 미뤘고, 서울시는 “사실 도시정비사업이 자치구가 진행하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다시 책임을 미뤘다.
글·사진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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