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1분에 10권’ 팔릴 정도다. 교보문고와 알라딘, 예스24에서 경이로운 판매 속도를 보이고 있다. (…) ‘한강 쏠림’은 어쩔 수 없지만 수상을 계기로 침체된 한국문학이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
‘채식주의자’ 열풍이 불던 2016년 5월 뉴스 기사의 한 대목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 수상 소식에 전 국민이 앞다퉈 책을 사들였다. 수상작 쏠림과 온라인 판매 쏠림을 우려하면서도 평론가들은 ‘한국문학이 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노벨문학상을 탄 2024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한강 작가 작품이 수상 엿새 만에 100만부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대부분 온라인서점 몫이고 지역서점은 책을 못 구해 전전긍긍이다. 서점가를 뒤덮은 한강 마케팅이 다른 작품으로 확대될 기미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반짝 유행을 넘어 한국문학 흥행을 만들자는 제안, 이번엔 가능할까.
“출판계에 내리는 ‘단비’를 같이 맞고 싶은데 이쪽(동네책방)으론 안 와요. (품절 대란으로) 책을 만져볼 수도 없고요. 출판사는 제작 중이라 하고 배송은 한참 늦는다 해서 그나마 가진 견본만 비치하고 있어요.”(박진창아 제주 달리서점 대표)
한강 열풍은 소규모 지역서점엔 그림의 떡이다.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기업이 온라인 판매 편의성과 15% 할인율을 내세워 대부분의 구매 수요를 흡수한 탓이다. 싸게 공급받고 싸게 파는 규모의 경제 탓이 크다. 온·오프라인서점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정 도서 열풍 땐 그 격차가 더욱 도드라진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2024년 10월10일 이후 10월13일까지 교보문고는 31만 부, 알라딘은 22만 부를 판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지역서점은 많아야 150권 남짓, 적으면 2~3권 팔았다는 경우도 있다. 찾아오는 손님도 적거니와 지역서점에 들어가는 물량 자체가 적어서다. 출판사들은 “최대한 지역서점에도 물량을 배분하고 있다”는 입장이나, 지역서점 도매상 ‘웅진북센’에 들어온 한강 서적 물량(10월10일∼10월16일)은 3만 권에 불과하다. 주문량(15만권)의 5분의 1 수준이고, 이마저도 전국 서점이 나눠 가져야 한다.
“온라인몰은 품절돼도 예약판매를 다 걸어놓으니까요. 사실상 무한정 파는 거예요. 마케팅 페이지도 요즘은 한강 작품만 거의 걸려 있어요. 이런 분위기에선 다른 작가들 신간을 내밀기도 어렵죠.” 조재성 한겨레출판 경영이사가 말했다.
10월16일 교보문고 온라인 일간 베스트 판매순위를 보면 상위 20권 중 15권이 한강 작가의 책이다. 나머지는 경제 트렌드 분석서와 유명 교수의 인류학서. 다른 작가들로 문학적 관심을 확장하기엔 아직 시장 쏠림이 심하다.
한강 작가도 대형서점 기업의 시장 장악력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획일적 취향에 맞서 다양한 책을 선보이는 공간이 지역서점이라고 믿었다. 한강 작가는 웹진 ‘비유’ 2022년 7월호 인터뷰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책방오늘’이 “만성적으로 큰 폭의 적자”라면서도 “어떤 대가도 없이 좋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잘 보이도록 매대와 서가에 진열해두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 선택하기 어려웠던 그 책들을 손님이 만나게 된다. 그 반가운 순간들이 서점을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도서 관련 예산을 죄다 깎고 있다. 지역서점의 북토크 등을 지원하는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예산은 2024년 전액(11억원) 삭감됐고 우수 도서를 보급하는 ‘문학나눔’과 ‘세종도서’ 예산은 통합돼 20억원 줄었다. 이동식 도서관 등 국민 책 읽기를 지원하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사업은 58억원 전액을 없앴다.
‘읽는 사회’로 이행하지 않고서 노벨상만 흠뻑 즐기는 현상이 오래갈 수 있을까. “계룡문고처럼 큰 지역서점도 문을 닫고 책 읽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데 정부는 손놓고만 있습니다. 도리어 아이들 교과서를 디지털화한다죠. 책 읽고 사유하는 문화를 정부가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독서정책을 만들긴커녕 다 없애고 있어요.” 조재성 이사가 지적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도 “한강 작가의 수상이 긍정적 역할을 하려면 읽지 않는 사회에서 읽는 사회로, 독서 소외인을 줄이고 독서 생활화의 지평을 넓히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백원근 대표는 문학 읽어주기와 독서정책, 지방자치단체의 책 읽기 강화 등 다방면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은 하버드대학, 엠아이티(MIT)도 교양수업에서 문학 읽기를 하고 있다”고 짚었다.
읽는 근육 없이 한국문학을 덥석 맞이했다가 도리어 튕겨져 나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필명 아난케(Ananke)라는 작가는 플랫폼 ‘브런치’에 이런 글을 썼다. “지금 한강 작가의 멋진 성과로 많은 사람이 서점을 찾는다. 그렇게 구매한 작품을 끝까지 읽어낼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특히 자의가 아니라 부모님·학교·학원이 (필수도서로) 지정해 읽게 될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다 읽는 바람에 떠밀리듯 책을 집어들었다면? 이들이 ‘역시 문학은 어렵구나,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책을 내려놓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다.” 아나케는 아울러 “늘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에게 한과 울분이 담긴 한국문학은 다소 낯선 언어”라며 “책 읽는 즐거움을 주려면 한국문학이 지금보다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벨상 수상작이 아닌 책도 두루 읽히는 사회. 그때에야 유행을 넘어선 전성기가 될 수 있다고 출판계는 본다. “베스트셀러를 다 같이 읽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책 리스트가 생기려면 지평을 넓히는 게 중요하거든요. 저희 독서모임에 오신 어떤 분은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첼리스트 양성원·수학자 김민형 저)을 읽고 ‘겨울 나그네’ 24곡 전곡을 처음으로 다 들어봤다더군요. 개인이 책을 통해 그런 경험을 찾아나설 수 있다면 어떨까. 노벨문학상 수상은 정말 기쁜 소식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이 있다면 다른 책은 뭐가 있을까’ ‘한강 작가는 무슨 책을 읽었을까’ 이렇게 번져나가면 어떨까. 그게 읽는 사람 역할 아닐까요.” 지역서점 ‘생각을담는집’ 임후남 대표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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