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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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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이름으로 폭력 자행하는 입국심사를 묻다

연극 ‘입국심사’,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이뤄지는 다양성에 대한 폭력 다뤄… 안전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 존중
등록 2026-07-02 21:16 수정 2026-07-07 18:05
2026년 7월18~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입국심사’. 공연을 앞두고 이뤄진 최종 연습에서 경찰(입국심사관) 역을 맡은 이나리 배우가 재상 역을 맡은 장재호 배우를 제압하는 장면. 즉각반응 제공

2026년 7월18~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입국심사’. 공연을 앞두고 이뤄진 최종 연습에서 경찰(입국심사관) 역을 맡은 이나리 배우가 재상 역을 맡은 장재호 배우를 제압하는 장면. 즉각반응 제공


 

한 남자가 외국의 한 공항 입국장 벽 앞에 서 있다. 대기 사유조차 설명하지 않은 채 30분 넘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다소 폐쇄적인 공간으로 이동을 명령받는다. 한국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것도 소용없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묻는 말에 대답을 거부하면 추방된다’는 압박성 경고만 이어진다.

‘입국심사’라는 명목으로 남자는 온갖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는다. ‘가족의 인적사항을 대라’ ‘가족의 월급은 각각 얼마냐’ ‘정규직이냐’ ‘딸의 남편 직업은 무엇이냐’ ‘계좌 잔고는 얼마냐’ ‘다니는 회사의 연매출은 얼마냐’ ‘시위에 참여한 적 있느냐’ ‘최종 학력은 무엇이냐’ ‘다닌 학교의 이름을 대라’ ‘미국 9·11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별 정체성이 무엇이냐’ ‘성적지향은 무엇이냐’…. 낯선 타국에서 녹화·녹음이 진행되는 와중에 사생활 침해가 분명한 질문 세례를 받는 이 과정, 과연 정당한가?

 

사생활 침해가 분명한 질문들

 

2026년 7월18~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입국심사’는 테러, 전쟁, 난민 문제 등으로 인해 경계의 장소가 된 입국심사장에서 ‘자국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법칙이 과연 다양성과 인권을 존중하는지, 이 법칙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행위의 정당성이 충분히 설명되는지를 묻는다. 현대에 실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에 천착해온 창작집단 ‘즉각반응’의 신작으로, 앞서 2025년 무대에 오른 ‘엔드월-저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의 파트2 격인 작품이다. 6월29일 이 작품의 극본을 쓰고 총지휘를 하는 하수민 연출을 서울 성북구 동선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공연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터라 연습실에서는 런스루(공연 직전 최종 연습)가 한창이었다.

‘입국심사’는 재상(장재호), 경찰관(이나리), 통역사 여인(이정미), 단 3명이 출연하는 단출한 연극이지만, 무대 위 에너지는 관객을 압도할 만큼 밀도가 높다. 즉각반응 제공

‘입국심사’는 재상(장재호), 경찰관(이나리), 통역사 여인(이정미), 단 3명이 출연하는 단출한 연극이지만, 무대 위 에너지는 관객을 압도할 만큼 밀도가 높다. 즉각반응 제공


‘입국심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2018년 2월 벨기에 샤를루아 공항에서 슬로바키아 국적 남성 요제프 호바네츠가 탑승을 거부당한 뒤 유치장에 감금돼 항의하다가 경찰이 10분 넘게 가슴을 짓누르는 등 과잉 대응을 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그를 진압하던 경찰 중 한 명이 ‘나치 경례’를 하는 모습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둘째는 하수민 연출이 2018년 캠핑 여행을 하기 위해 방문한 나라에서 겪은 사건이다. 하수민 연출은 입국심사에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개인적 경험을 한 뒤 뒤늦게 알려진 벨기에 사건을 접하는 순간,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연극의 얼개는 제가 겪은 일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요. 제가 단편영화도 찍는데 2018년 ‘광명동굴 국제 판타지 페스티벌’ 단편영화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부상이 외국의 한 특수촬영 회사에서 인턴십을 이수할 수 있는 자격이었거든요. 가는 김에 두 달 정도 자연을 감상하는 캠핑 여행을 하기 위해 텐트와 짐을 잔뜩 싸서 갔다가 작품에 나오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수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그는 입국심사 과정에서 겪었던 일을 하나하나 묘사하며 감정적으로 동요했다. 트라우마가 남은 탓이다. “처음부터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느낌, 해부접시에 핀으로 고정된 개구리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훨씬 더 첨예하게 만들죠. 그게 폭력이고, 특정한 과정을 통해 숨겨진 폭력이 드러납니다.”

작품을 준비하며 취재하다보니 주변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이가 여럿이었다. 하 연출은 공익법단체 ‘두루’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인천공항 입국심사 취재도 빼놓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공무원이 그러더군요. ‘절차상 당사자에게 추가적인 입국심사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고, 녹화·녹음 동의 여부도 묻게 돼 있다’고요.”

연극 ‘입국심사’의 극본·연출을 맡은 하수민씨. 즉각반응 제공

연극 ‘입국심사’의 극본·연출을 맡은 하수민씨. 즉각반응 제공


 

대답을 거부하면 추방된다

 

작품의 얼개는 하 연출의 개인적 경험이 토대가 됐지만, 주인공 재상(장재호)은 앞선 작품, 파트1인 ‘엔드월’의 연장선에서 설정했다. ‘엔드월’은 2021년 경기도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망한 대학생 노동자 이선호씨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작품 속 주인공 아성의 아버지인 재상이 아들이 꿈꿨던 ‘아름다운 자연 속 다이빙’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국외여행을 갔다가 입국심사 과정에서 겪는 일을 그린 것이 파트2 ‘입국심사’인 셈이다. 그래서 경찰(입국심사관·이나리)이 던지는 사생활 침해성 질문을 통해 재상이 겪은 아들의 죽음, 그리고 한국의 노동 현실이 이 작품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두 작품은 ‘수평선’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요. ‘엔드월’은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고 ‘입국심사’는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이야기인데, 제가 하고픈 얘기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지만 결국 한 개인이 한 개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가 상대방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내년엔 두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연속 공연 무대를 마련할 계획이에요.”

런스루에선 볼 수 없었지만, 무대 연출 면에서 ‘입국심사’는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마치 시시티브이를 연상시키는 카메라가 인물들의 표정, 미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클로즈업으로 포착해 관객 앞에 드러내는 방식이다. “인물들 간 경계가 드러나는 대사나 장면에서 주로 영상이 작동할 겁니다. 관객은 입국심사실 밖에 있지만, 영상을 통해 내부 공간의 목격자가 되죠. 그것을 통해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의 압박감도 경험할 수 있고요.”

하 연출이 사건 당시 통역사의 차분한 언어를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듯, 작품 속 재상 역시 통역사 ‘여인’(이정미)의 공감과 이해를 통해 극단적 결말을 피하게 된다. “통역사 여인이 맨 마지막에 ‘수평선’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각자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수평선은 늘 존재하는 것, 즉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상정했습니다. 벨기에 사건의 결말은 ‘죽음’이었지만, 재상에겐 살아서 아들의 꿈인 다이빙도 하고 수평선도 보는,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결말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입국심사’는 재상(장재호), 경찰관(이나리), 통역사 여인(이정미), 단 3명이 출연하는 단출한 연극이지만, 무대 위 에너지는 관객을 압도할 만큼 밀도가 높다. 즉각반응 제공

‘입국심사’는 재상(장재호), 경찰관(이나리), 통역사 여인(이정미), 단 3명이 출연하는 단출한 연극이지만, 무대 위 에너지는 관객을 압도할 만큼 밀도가 높다. 즉각반응 제공


 

한국의 노동 현실도 담아내

 

2023년 ‘육쌍둥이’를 통해 ‘용산 참사’를, 2024년 ‘새들의 무덤’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그려냈던 하수민 연출.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무엇인지 물었다. “‘쿠팡’과 관련한 작품을 고민 중입니다. 연극계의 신진 양성 프로그램인 ‘봄 작가, 겨울 무대’ 낭독회가 8월에 있어요. 9개 작품 중 세 작품을 선정해 11월에 본공연을 하는데, 9개 중 쿠팡 관련 작품을 쓴 작가가 있더라고요. 제가 연출을 맡아볼까 해요. 연극은 주로 비극을 다루는데, 비극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벌어진 동시대의 비극에 관해 얘기해보고 싶다는 제 철학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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