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유죄 여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는 것처럼 그의 ‘혁신교육 10년’을 평가하는 시선도 진보 진영에서조차 극과 극이다. 시험에 목매는 교육,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벗어난 교육을 지향했다는 목소리가 있는 한편, 과도하게 경쟁적인 우리 교육을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교육의 향방이 다시 유권자 손에 달렸다. 한겨레21은 학생·교사·학부모 세 교육 주체에게 교육감 선거 쟁점 중 하나인 ‘경쟁 교육’에 대해 물었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어떤 주장과 오해가 있는지도 살폈다. —편집자주
‘53.2%’
2022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성향 후보 3명(조전혁 23.5%·박선영 23.1%·조영달 6.6%)의 득표율을 합산한 수치다. 당시 보수 진영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조희연 전 교육감은 38.1% 득표율로 당선됐다. 보수 진영이 이번 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만큼은 반드시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로선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등 후보가 난립하지만,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상황이 유리해졌다.
진보 진영에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가장 크다.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진보 진영 경쟁 후보에게 단일화 대가성 선거자금을 건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2012년 교육감직을 상실(대법원 징역 1년 확정)했다. 교육감 선거는 독립성을 위해 정당 공천이 불가능하지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시민 상식선으로 볼 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며 출마 재고를 요청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진보 진영에선 강신만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 김경범 서울대 교수,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안승문 전 서울시 교육위원,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 등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보수 진영의 유력 후보인 조전혁 전 의원은 정치색이 강한 후보다. 그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념으로 오염된 학교를 깨끗이 정화해야 한다. 정권 코드에 맞춘 비합리적인 탈원전 교육, 무분별한 젠더리즘, 동성애 코드 등이 걸러지지 않고 학교에 침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는 공교육에 두 가지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대한민국 국민 만들기’, 또 다른 하나는 ‘능력 있는 개인 만들기’”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국민 만들기’는 현 역사교과서, 경제사회교과서가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하고 ‘건국영웅·부국영웅’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능력 있는 개인 만들기’는 현재의 학생 평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학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만큼의 시험을 부활시키겠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사비를 들여 레벨 테스트를 받고 실력을 파악해야 하는 이상한 현실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지난 10년간 추진해온 교육과 대척점에 있는 공약들이다. 조 전 교육감은 시험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이 진로탐색·체험학습·토론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자유학기제를 확대했고,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를 추진했으며, 입시 위주 교육보다 토론, 발표, 체험활동 등을 위주로 교육하는 혁신학교 확대를 추진해왔다.
지금 상황을 교육 주체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학군지 ‘맘카페’ 여론을 보면, ‘혁신교육’을 추진해온 조희연 전 교육감의 교육감직 상실에 대해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중학생 학부모 ㄱ씨는 “학교에서의 시험, 평가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커졌다. 토론 등 교육이 좋은 건 알지만 어차피 입시를 앞두고 시험 성적을 통해 학교에 가야 하는데 학부모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금 격차가 분명한 한국 노동시장에서 ‘학력’은 학생들의 ‘취업시장 상품가치’를 높이는 주요 수단인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입시 위주 교육을 외면하는 것은 이상적이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ㄴ군의 생각은 다르다. 중학교 때 전교 회장을 할 만큼 학교생활에 진지하게 임하는 그는, 자사고를 다녀보니 ‘반대하는 입장’까진 아니지만, 과연 이런 교육이 “학생들한테 이로운지, 공교육에 의미가 있는지” 회의를 느끼곤 했다고 털어놨다.
중3·고3 자녀를 둔 김아무개(서울 동대문구)씨도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고 그 학교에서도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게) 공교육이 탄탄하게 다져지면 좋지 않을까. 어떤 학교를 가더라도 그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정치와 법’ 과목을 가르치는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대변인은 서울 교육을 두고 ‘지금의 이 경쟁도 부족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되물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24년 8월27일 서울대 심포지엄에서 “왜 우리나라의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어떤 정책을 해도 떨어지지 않고 작은 외부 충격이 있으면 급격하게 상승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느냐”며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자녀가 학교 갈 나이 되면 서울로 오고 또 강남으로 오며, 그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또 다음 세대가 똑같은 목적으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고착시키고 이 구조적 문제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아이가 학력이 떨어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중1·중3 학부모이자 아이들을 혁신학교에서 길러낸 서울 강동구의 송윤희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혁신교육을 지지한다.
조전혁 예비후보는 2022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혁신학교와 자유학기제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반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이번 보궐선거 출마의 변에서 자신이 “혁신교육의 설계도를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지구가 안정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며 혁신교육 계승 의지를 밝혔다. 2022년 선거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과 단일화에 합의했고 이번 선거에도 출마 의사를 밝힌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은 좀더 적극적으로 혁신교육을 옹호한다.
입시 전문가인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모든 교육 논쟁의 핵심은 대학입시 개혁에 있다고 본다. 경쟁을 완화하는 진보 교육으로 나아가려 해도 대학입시 제도라는 더 큰 구조가 매번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학생, 학부모, 교사의 고통을 줄이는 첫걸음이 대학입시 개혁이고, 대학입시 개혁의 출발점은 9월 수시모집 폐지”라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입시나 교육 문제 이전에, 서이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학생·학부모·교사 간 ‘신뢰 상실’ 문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교육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는 “서로 신뢰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의 이권을) 계산하면 무슨 정책이든 의미가 있겠느냐.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게 교육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건 아이들 학습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했던 사회적 소수자 관련 교육 정책을 계승해주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초·중·고를 다니는 세 자녀 학부모 용은중씨는 “혁신교육지구 교육후견인제라는 게 있다. 예를 들면 게임 중독이 심한 한부모 가정 내 아이가 있는데, 아버지가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다. 비슷하게 우울증, 자살 충동을 겪는 아이들을 마을에 있는 약사 선생님이 수학지도를 하면서 아이를 살피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는 다양한 활동이 이뤄져왔다. 이런 정책이 교육감이 바뀐다고 엎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학생 학부모 송윤희씨는 “장애 학생을 다른 학교에선 안 받아주거나 분리 수업을 해서, 장애 학생과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오기도 한다. 체육수업 때 장애가 있어 등나무 밑에 앉아 있는 친구를 보고 ‘너도 끼어야지’ 하면서 같이 밀고 뛴다거나 현장학습 때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는 그런 경험을 장애가 없는 학생들이 한다. 차기 교육감이 이 문제에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고, 조 전 교육감이 특수학교 관련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 부분이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조희연 교육감이 특수학교, 특수학급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는 (더 나아가) 통합교육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지 않아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장애아동이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똑같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는 통합교육 지원 확대가, 새로운 교육감 정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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