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덕(가명) 어르신 저혈당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하셨어요.”
주민센터 의뢰로 찾아뵌 순덕 어르신은 요양병원에서 막 퇴원해 집에 돌아온 상황이었다. 혼자 살며 오래 비운 집은 엉망이라 일상을 챙기기 힘들어 보였다. 일주일이 지나 어르신 드실 약을 챙기러 다시 찾아갔을 때 어르신은 계단을 내려와 현관문을 열어줬다. 거동이 어려워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 2층은 거의 낭떠러지처럼 보였다. 인터폰에 반응할 수도, 전화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르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어도 전화하면 받지 못하고 집 전화가 울릴 때에야 전화를 받는다.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인터폰과 같은 기계를 다루기 어렵다. 어르신이 지팡이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현관문 밖에서 보며 괜히 왔나 자책했다.
어르신은 웃으며 나를 환대해줬지만, 막막했다. 처음 만났을 때 퇴원 약을 챙겨 드시라고 했지만 배가 아프다며 드시지 않았다. 약을 살펴보니 변비약이 하루 세 번 있어서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은 필요 없는 약이었다. 어르신은 집 안을 살펴보더니 몇 달 전 대학병원에서 받았던 약이라며 보여줬다. 당장 드시기에 적절해 보여 이 약을 드시라고 했다.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전체적인 혈액검사를 하기로 했다. 인지 저하 소견은 생활 곳곳에서 보였다. 집 문 번호키를 조작하지 못해 옆집 이웃이 수차례 알려줘도 똑같이 되묻고, 건너편 집 이웃에게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냐고 여러 차례 묻는다. 이웃들도 어르신을 안쓰럽게 여겨 도와주려 노력했지만 반복해도 잘 해내지 못하니 안타까워했다. 인사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며칠 뒤 검사 결과를 확인하니 당뇨 수치는 정상이었다. 한 번의 검사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약을 챙겨 드시지도 못하는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찾아뵈려던 차에 주민센터에서 어르신이 넘어져 상처가 났다고 살펴봐달라고 연락해왔다. 검사 결과를 알려드릴 겸 찾아뵙고 상처를 소독해드렸다. 상처는 경미했다. 어르신이 자주 넘어진다는 점이 문제였다. 여전히 식사를 못 챙겨 드신다는 점은 더 큰 문제였다. 장기요양서비스가 시급함을 모두가 알았으나 어르신이 급성 증상으로 입원 치료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6개월이 지나야 장기요양제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 일시 돌봄 서비스만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얼마 뒤 어르신이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원인이라는 저혈당이 당뇨‘병’으로 인한 게 아니라 식사를 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당뇨 수치가 호전된 것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어르신의 인지 저하는 오랜 독거 생활로 인한 외로움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찾았지만 일상 돌봄은 부족했고 어르신은 혼자서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어르신의 입원은 질병이 아니라 명백히 돌봄의 부재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는 이유가 꼭 질병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경우를 사회적 입원이라고 한다. 사회적 문제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인지 저하가 있는 어르신이 집에서 홀로 살아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순덕 어르신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온다고 한들 밥 한 끼 제대로 드실 수 있을까? 꾸준히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루 세 시간 가능한 장기요양서비스가 시급한데 제도는 한발 늦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119를 통해 입원했으니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아무리 촘촘하게 제도를 마련해도 완벽한 건강 상태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건네는 손길이 돌봄의 그물망이 되어 위기의 삶을 건져내기만 해도 다행이다. 어르신과 지난 만남을 돌이켜보면 자책이 앞선다. 다시 어르신을 만났을 때는 좀더 신경 써서 안부를 건네고 싶다.
홍종원 찾아가는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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