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청년이 아르바이트로 출근 이틀째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었다. 2024년 8월13일 오후 4시40분께,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유족과 노동단체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청년은 구토하며 탈진해 현장에 쓰러져 있었는데 회사 팀장은 잔혹하게도 청년이 쓰러진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회사 인사 담당자를 통해 청년의 어머니에게 연락해 “평소 정신질환이 있었느냐. 위치를 알려줄 테니 애를 데려가라”고 했다고 한다. 청년은 그 뒤로도 1시간 정도 방치되어 있다가 병원에 이송됐으나 3시간 만에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청년에겐 기저질환이 있었는데 병원 이송 당시 체온이 높아 이를 측정할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날 전남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기록한 장성군의 최고 체감기온은 35.4도였다.
질병관리청 통계를 보면, 8월13일까지 집계된 온열질환 신고 건수는 2503건, 사망자 수는 22명이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2년 동안 집계한 평균 신고건수(1625건)의 1.5배, 사망자 수(15.7명)의 1.4배나 된다. 무엇보다 온열질환은 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청년처럼 혹독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냉방시설이 없는 곳에서 일하다 쓰러져도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나 저소득층을 찾아갈 것이다.
올해로 20년째 열린 태백 해바라기축제는 예정보다 사흘 일찍 문을 닫았다.(이번호 ‘눈’) 백만 송이 해바라기가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시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줄기가 태양을 향해 굽어지는 모습이 마치 태양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이 해바라기인 꽃이 더는 태양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사실만큼 역행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해바라기문화재단은 “자연이 하는 일이지만 머리 숙인 해바라기처럼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이 역행은 분명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산업사회가 과도하게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초래한 기후붕괴 탓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 기획한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에는 지구의 이런 역행을 그 누구보다 심각하게 인지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들마저 목표했던 탄소 배출 감축량 달성에 실패했다는 건 시민 개개인의 개별적 의지만으로는 기후붕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지구를 위해, 1.5도 라이프’ 2부에서 마을에 옷이나 구두, 가전제품 수리점 등의 환경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바탕으로 주택 옥상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빗물을 저장해 재활용하며, 퇴비를 만들어 채소를 키우는 에너지자립마을을 찾아가 이들의 어우러진 삶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와 에너지자립마을 역시 특수한 개별 사례로만 존재한다면 의미값이 떨어진다. 기후붕괴에 대응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정부가 나서서 시민들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절대적인 노동 시간을 줄이고, 주택 지붕과 베란다에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지원하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도로를 늘리고, 더 나아가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수도권 집중주의를 해소하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기업은 원료 확보와 상품 생산, 물류,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
2024년 9월7일 서울 강남대로 일대에서 열리는 907기후정의행진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려퍼질 것이다. 바꿔야 하는 건 기후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목소리 말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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