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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 화물노동자의 허망한 죽음, 정부가 부채질한 노란봉투법 조롱

등록 2026-04-23 22:22 수정 2026-04-28 11:00
2026년 4월21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씨유(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가 연 ‘살인기업 씨유(CU) 비지에프(BGF) 규탄! 살인진압 경찰 공권력 규탄!’ 결의대회에서 한 조합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진주(경남)=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6년 4월21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씨유(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가 연 ‘살인기업 씨유(CU) 비지에프(BGF) 규탄! 살인진압 경찰 공권력 규탄!’ 결의대회에서 한 조합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진주(경남)=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씨유(CU) 편의점을 운영하는 비지에프(BGF)리테일은 편의점에 물품을 배송하는 화물노동자들의 운임 단가와 물량 배분, 배송 회차 등을 실질적으로 정하는 원청 기업이다. 2026년 3월10일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하청노조의 교섭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 쪽은 화물연대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첫 번째 불법이다.

화물노동자들은 파업했다. 그러자 사 쪽은 대체 차량을 투입해 물품 배송을 시도했다. 노조법은 사용자가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사업과 관계없는 사람을 채용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두 번째 불법이다. 화물노동자들이 이 불법행위를 막는 과정에서 대체 배송 차량이 이들을 치고 갔다.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많은 시민이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에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만 있는 건 아니었다. 노동자의 사망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유하며 혐오하고 조롱하는 반응도 널리 퍼졌다. “노란봉투법 때문에 노조가 깽판 치며 회사가 일을 못하게 한 거다. 그런데 감히 어떤 노동자가 트럭을 몰고 정상적으로 일을 한 거다. 노조원들이 쟤가 일을 하면 시위가 잘 안 되니까 막으려고 트럭을 방해하다가 사고가 난 것”(유머저장소)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나도 맞는 말이 없다. 어떤 커뮤니티에선 노란봉투법에 빗대 “노조식 논리면 유튜버도 구글 직원 아님?”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유튜버는 플랫폼 이용자일 뿐 구글이 노동조건을 정하는 게 아니니 역시 하나도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주장에 수많은 좋아요와 동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혐오와 조롱의 배경에는 고용노동부가 있었다. 노동부는 사고 발생 당일 밤 설명자료를 내어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라 언급하고, 화물연대의 교섭 요구가 노란봉투법의 원·하청 교섭 문제와 관계없다고 밝혔다. 법을 집행하는 노동부가 법에 어긋난 설명으로 사고 발생 초기부터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혐오와 조롱에 명분을 터준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2021년 12월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출근길 탑승 시위를 시작하자 몇 개월 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불법 시위”라고 말했다. 정치와 행정에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 자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불편을 주는 장애인’ vs ‘출근길 시민’으로 갈라치기해 논의의 장을 비튼 것이다. 발언 권력을 지닌 제1야당 대표의 이 규정은 장애인들을 향한 혐오와 조롱에 길을 터주는 명분이 됐다.

이재명 정부는 산업재해 사망사고 같은 ‘최저선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집권 초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를 선취했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를 위한 노란봉투법을 폭넓게 적용하는 문제,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아니라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문제, 특수고용직·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위해 근로기준법과 4대 보험을 확대 적용하는 문제 등에선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노동부의 왜곡된 설명자료가 이런 소극적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면 이재명 정부는 더 이상 노동친화적 정부라고 평가받을 수 없다. 제발 이 평가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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