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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눈 감고 변죽만 울려온 ‘혐오 놀이’ 처방

등록 2026-05-28 23:36 수정 2026-06-02 08:51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026년 5월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026년 5월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공개 사과로 한 주를 시작했다. 정 회장은 스타벅스가 ‘탱크데이’ 마케팅을 하며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해 벌어진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 회장의 사과는 사태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정 회장이 회견 말미에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고 싶단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 같다고 믿는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역사적 아픔이 엄연하고 피해자들이 엄존하는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혐오 놀이는 ‘생각이나 의견의 차이’로 규정할 일이 아니다. 혐오는 폭력일 뿐 의견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저 발언으로 ‘멸공’ 해시태그 놀이를 하고 한국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으로 불리는 ‘빌드업코리아’ 행사에 후원한 자신의 평소 행태까지 합리화하려 했다. 비판이 더욱 거세진 까닭이다.

이번 사태를 보고 일각에선 극우의 혐오 놀이가 일상에까지 스며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스타벅스 사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17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한 남녀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티셔츠를 입고 조롱성 인증 사진을 찍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베 사이트 폐쇄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 사태를 극우의 혐오 놀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으로 무조건 보호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입증하는 전환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다수 시민이 더는 이런 혐오 표현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감수성을 지녔다는 걸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 이후 극우에 대한 경각심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더욱 커진 상태다.

이런 인식을 더욱 능동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출신, 성적 지향, 종교,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누군가를 부당하게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사회적 기본 규범에 관한 법이다. 사회가 이 법을 바탕으로 혐오에서 비롯된 차별 행위를 용인하지 않고 피해를 구제하는 제도를 갖추게 되면 혐오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감수성도 더욱 확산할 수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다. ‘능력·노력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는 약자를 향한 멸시와 조롱을 혐오가 아니라 능력 없는 사람에 대한 공정한 비판이라고 자기합리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 이주민, 노인, 지방 거주자 등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집단’이라거나 ‘사회에 기여 못하는 집단’으로 묶여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처럼 일어난 들불 같은 시민적 저항을 지속할 키워드다. 폐쇄나 처벌보다 우선해야 할.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한겨레21의 ‘휴게소의 약탈자들’ 시리즈 보도(박준용·채윤태·권지담·김완 기자)가 한국기자협회의 제428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더욱더 최선을 다해 만들겠습니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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