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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의 ‘우리만’ 성과급

AI 슈퍼사이클 속 삼성 노조의 성과급 요구… 이제는 하청·산재 노동자와 시민의 몫까지 함께 이야기할 때다
등록 2026-05-07 22:46 수정 2026-05-12 15:51
2026년 4월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 결의대회에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성과급 상한 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2026년 4월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 결의대회에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성과급 상한 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노동조합이 그저 ‘이익단체’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노조가 노동조건과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정치를 말하면 정부와 사법기관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했다. 노조가 말하는 정치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며 평등을 확대하는 공익성을 지니고 있어도, 이들의 목소리를 색깔론으로 낙인찍거나 사회갈등의 주범으로 몰아붙여 억압했다. 이런 사회에서 2026년 1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에 성과급 상한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5%를 달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한 노조를 두고 대통령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를 하지 말라고 비판하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의 역대급 실적은 경영진의 판단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먼저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간 지속되는 초호황기)을 만든 시기적 요인이 있다. 여기에 산업재해 위험성이 큰 반도체 라인에서 수십 년 동안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산업을 지탱해온 숙련노동자들의 헌신이 배경에 있다. 그러니 노조의 성과급 요구는 그 자체로 정당하고, 성과급 규모는 노사 협상으로 결정할 일이다. 다만 노사의 틀 밖에서 이번 실적에 대한 공적 배분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노동자들의 헌신은 정규직만의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각각 25.4%, 29.4% 일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소속과 임금이 다르다. 산재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도 같다. 외려 하청업체 소속이어서 산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삼성전자 사 쪽이나 노조가 이들을 위한 성과급 배분을 논의한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이들뿐만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십 년 동안 무수한 노동자의 희생을 밟고 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3살에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다. 황씨 외에도 여전히 수십 명의 산재 피해자와 유가족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채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노동자들의 헌신’에 이들까지 포괄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부가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물과 전기, 도로망 등 산업 기반시설을 조성하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법인세를 20%까지 감면해준데다 시설투자에 대해 15% 세액공제까지 해주면서 삼성전자가 지난 3년 동안 막대한 세금을 절감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민들이 반도체산업에 조금씩 쌈짓돈을 보탠 셈이다. 게다가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전기를 쓰기 위해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삶이 위협받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에 손을 보탠 주체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이 사회 공헌으로 거둔 이익을 제대로 환원한 적은 없다. 재벌 총수 가족이 법적으로 내야 할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한 사실이 화제가 될 정도다. 그러니 기대할 곳은 노조뿐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며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 삼성전자 노조가 이제는 정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사법기관의 가르침을 낡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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