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직접 잡은 참치, 사조에서 직접 잡은 참치.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사조참치.
집 앞 마트를 들르면 이런 광고 노래를 종종 듣습니다. 중독성 있는 리듬이라 저도 무심코 흥얼거리곤 했지요. 이젠 따라 부르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연속기획 ‘10년의 세월’ 2번째 이야기로 제1509호에 실린 ‘세월호‘들’이 있었다’를 취재하며 사조산업의 배 ‘제501오룡호’ 침몰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본 탓입니다. 이젠 그 노래를 들으면 거친 러시아 바다가 떠오릅니다. 2014년 12월, 5m 파도가 굽이치는 베링해에서 명태를 잡던 선원들이 떠오릅니다. 어획고 7천t을 채우려다 피항 시기를 놓쳐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은 선장이 떠오릅니다. 이젠 ‘사조에서 직접 잡은’ 것들을 마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귤은 또 어떤가요. 저는 겨울만 되면 귤을 한 상자씩 사먹는 귤 귀신입니다. 그런데 이제 귤을 보면 그것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2021년 1월, 귤 상자를 실은 화물선 ‘삼성1호’가 전남 완도 근처에서 침몰한 사건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배에 화물이 이미 꽉 찼는데도 선박회사 대표이사는 귤 상자 7개를 더 밀어넣고 풍랑 속 출항을 강요했죠. 결국 배 화물창이 닫히지 않아 성난 파도가 열린 틈새를 파고들었습니다. 이 사고로 62살 선원 1명이 끝내 실종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는 ‘세월'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게 돼.” 지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일상의 자연스러운 대화에 그 단어를 담기가 어쩐지 꺼려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말할 때도 ‘긴 세월’이라고는 안 해. 좀 부자연스러워도 ‘긴 시간’ ‘긴 역사’로 바꿔 쓰게 돼.” 저 역시 공감했습니다. 참사가 있은 뒤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 가사를 전처럼 흥얼거리지 않지요. 이제는 ‘세월’이라고 말하면 낭만보단 희생과 고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엔 그런 말이 너무 많습니다. 삼풍, 대구 지하철, 구의역, 이태원, 오송…. 한때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던 말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말이 됐습니다.
이 모든 사고가 특정 개인 혹은 기업의 악덕 때문이라고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안전에 무지한 채 살아왔고, 그래도 됐던 사회의 자화상일 것입니다.
‘안전하게 항해하자’고 외치긴 쉽습니다. 하지만 배의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개선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직원은 가족’이라고 써 붙이긴 쉽습니다. 하지만 그 직원들을 지키려 출항을 늦추거나 화물량을 줄여주진 않습니다. 안전과 이윤이 충돌할 때 그것을 해소한 경험도 없고, 구체적 판단 기준과 시스템을 갖추지도 못했다면 이윤이 안전을 이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세월호‘들’을 취재할 때 전직 선원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배라는 게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만큼 알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제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안전을 확보하는 여정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다. 그런데 그만큼 알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귤 상자와 맞바꾼 목숨, 세월호 똑 닮은 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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