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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성과급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등록 2026-05-15 10:51 수정 2026-05-21 07:23


“인당 얼마 해서 1년치를 회사에 (삼성전자가) 도급비로 내려줍니다. 예를 들어 200억원에 예약하면 12번을 쪼개서 내려줘요.”(삼성전자 하청업체 직원 ㄱ씨)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하이닉스에만 머물고 가는 거예요. 전 우리 회사(피앤에스로지스)가 어딨는지도 몰라요.”(에스케이(SK)하이닉스 하청업체 직원 ㄴ씨)

ㄱ·ㄴ씨와 같은 하청 노동자는 5만7079명(삼성전자 4만2589명·2024년 기준, SK하이닉스 1만4490명·2025년 기준)에 달한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투입되는 인원의 약 25~29%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작지 않다. 설비 유지보수는 물론 물류·장비의 셋업과 기술지원 등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작업이 하청업체의 손에 맡겨져 있다. 서류상 다른 회사이지만, 하청 노동자는 오로지 단 한 곳의 원청(삼성전자 또는 SK하이닉스)에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청 사업장에서만 일한다.

한겨레21은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장기간 지속되는 초호황기) 국면에서 반도체 생산공장 하청 노동자를 만났다. 원청 정규직이 1명당 수억원의 성과급 파티(SK하이닉스)를 벌이거나, 더 많은 성과급을 위한 파업(삼성전자)을 예고한 상황이 하청 노동자에게는 “남 일”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영업이익을 낸 원청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어려울 때마다 하청업체 일감부터 줄였다. 불황은 하청 노동자에게 인원 감축이라는 ‘낙수효과’로 이어졌지만, 활황에서는 누구도 이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청업체와 협력하지 않으면 반도체 생산라인은 돌아갈 수 없다”(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지적이 있지만, 하청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2026년 5월21일부터 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정해지지 않은 어젠다(하청 노동자 성과급)를 추가로 확정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한 산업계 전문가는 “대체 불가능하지 않으니 외주화를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규직만큼 성과급을 받겠다는 게 아니다. 같이 고생했지 않나”(ㄱ씨)라는 호소도 ‘반도체 공장 파업’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버렸다. 국가 기간산업을 논하는 자리에 상생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반면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는 수천 개의 협력·하청 업체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일감을 나눠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 대만 중소업체들은 티에스엠시의 미국·일본·독일 등 글로벌 시장에도 함께 진출하며 자생력을 키웠다. 2026년 기준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상위 20곳 중 한국 업체가 3곳에 불과한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만에서도 부동산 가격 상승, 상대적 빈곤 등 반도체 활황으로 인한 부작용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한국처럼 하청업체의 기술 탈취나 하청 노동자의 처우가 문제된 적은 없다.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모든 이윤을 독점해온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티에스엠시를 따라잡으려 기를 쓰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점유율은 약 7%에 그쳐 티에스엠시와의 격차는 60%포인트 이상 벌어진 상황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하청업체와 관계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전자는 과거 내세웠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가치에 하청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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