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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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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상태도 신고… 사고 전 ‘위험 요인’부터 모은다

10년의 세월—모범사례를 찾아서
선장 이동현씨가 말하는 영국 선사의 안전 문화
“배마다 ‘사고 이력’ 관리하고 선원들이 작업 지침 스스로 개정”
등록 2024-04-13 16:56 수정 2024-04-18 10:00
영국 선사 시피크 소속 선장 이동현(가운데 태극기 든 이)씨가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현씨 제공

영국 선사 시피크 소속 선장 이동현(가운데 태극기 든 이)씨가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현씨 제공


배를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수많은 선박 침몰 참사를 겪고도 한국 사회는 아직 그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

영국 선박회사 시피크(Seapeak) 소속 직원 이동현(34)씨는 선원 생활을 알리는 유튜브 채널 ‘비타민씨’에서 영국 선사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있다. 그가 속한 회사에는 배마다 독자적인 사고 데이터가 구축돼 있고 작업 지침도 선원들끼리 수시로 고친다고 한다. 이씨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해양수산부에 청년 정책위원 자격으로 정책 제안을 하기도 했다. 2024년 3월30일 이씨와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직무 매뉴얼은 체계화, 체크리스트는 단순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승선한 지 올해 11년차고요. 해양대를 졸업하고 2013년부터 5년 동안 한국 선사의 엘엔지(LNG)운반선 선원으로 승선했습니다. 이후 6년 동안은 영국 선사 시피크로 이직해 LNG운반선에 승선했어요. 현재 직위는 선장입니다.”

—시피크는 어떤 회사인가요.
“제가 속했던 한국 선사도 LNG운반선을 8∼9척 보유했는데요. 여기는 LNG운반선만 50척 보유하고 있어요. LNG 운반 분야에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죠.”

—한국과 비교하면 영국 승선 환경은 무엇이 다른가요.
“한국 회사도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지만 잘 따르는 문화는 아니었어요. 매뉴얼에 업무가 정해져 있더라도 상급자마다 다른 업무방식을 가진 게 보통이었죠. 매뉴얼에 명시된 자기 직무를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상급자가 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모두가 큰 틀에 합의하고 곁가지만 조금씩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시키는 사람마다 작업 내용과 방식이 달랐어요. 시피크에선 직급별로 해야 할 직무가 굉장히 구체적으로 돼 있어요. 직무마다 매뉴얼을 자세히 정해놓고 누가 와도 그걸 따라가는 구조예요. 우리끼리는 ‘바이블’이라고 불러요.”

—바이블을 뒷받침하는 개별 작업 지침도 있다고요.
“일단 큰 줄기는 다 지켜요. 복원성 점검 등 모든 선박에 적용되는 대원칙이죠. 그런데 배마다 조금씩 특징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그 배만의 안전절차를 또 선원들이 덧붙여나가요. 예를 들어 10년 된 선박이라고 하면 부품 중에 낡거나 고장이 잘 나는 부분이 있겠죠. 그러면 선원들이 그에 따른 작업 절차를 덧붙여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하는 방식이고요. 그러니 안전절차가 갈수록 구체적이고 현장과도 가까워지죠.”

25년 된 선박 세월호는 평상시 방향타를 돌려주는 조타기가 잘 작동하지 않는 등 위험 요소가 많았다. 이 때문에 세월호 선장 신보식과 항해사 강원식 등은 조타기 2대 중 1대를 항해 중 끄는 식으로 배를 요령껏 몰았다. 그러나 참사 당일 근무조인 이준석 선장과 박한결 항해사 등은 조타기를 그대로 켠 채 항해했다고 한다. 항해사 간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위험 신고 잘한 선원에게 매달 포상

—한국도 안전을 중시하는 경영문화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은 여전히 잘 몰라서 다들 좌충우돌하는 것 같아요.
“좌충우돌이라고 하니 한 가지 예시가 떠오르는데요. 제가 타는 배가 지금 17년 됐거든요. 이 배가 그간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겠어요. 실제 인명 피해까지 안 갔지만 가까스로 사고를 피한 ‘아차사고’(Nearmiss·거의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험 상황)도 많았겠죠. 우리는 그것들만 모으지 않아요. 아차사고의 전 단계, 그러니까 위험 요인부터 모으고 신고하게 돼 있어요. 예를 들어 배의 핸드레일(난간 손잡이) 중에 상태가 안 좋은 걸 봤어요. 그럼 거기서부터 리포팅하는 거예요.”

—사고 날 뻔한 상황이 아니어도요?
“그렇죠. 아차사고까지 안 가도 ‘누군가 일하다 잘못해서 사고 날 수도 있겠다’ 하면 다 보고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아차사고보다 더 낮은 단계인 ‘위험 보고’(Hazard Report)예요. 아차사고 나기 전부터 위험 요소를 제거해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보고된 걸 어떻게 처리하죠?
“아침 미팅에서 전날 위험 보고 들어온 걸 다 공유해요. 각 부서장 등이 매일 아침 모여 전날 일어난 위험 보고서를 공유하고 사진도 공유하죠. 신고 내용이 좋은 사람에겐 매달 상을 주고 그 내용을 전사에 뿌려요. 그 과정에서 선원들이 안전 데이터를 축적해요. 사실 배마다 승선하는 선원 구성이 자주 바뀌고 그 배를 처음 타보는 선원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 배에 이때까지 이런 사고가 있었으니 작업할 때 뭘 조심해야 한다는 데이터를 축적하죠. 근데 한국 같은 경우는 비슷한 원인으로 일어나는 사고의 빈도수가 높다고 알고 있어요. 심지어 같은 회사 소속 배인데도요. 사고 사례가 제대로 공유가 안 된다는 얘기죠.”

—위험 신고가 선원들에겐 가욋일이고 용기도 필요한 일일 텐데 적극적으로 하나요.
“‘열린 보고 문화’(Open Reporting Culture)라고 해서 다양한 사고 내용을 투명하게 보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어요. 물론 본선에서도 터무니없는 아차사고면 보고하기 꺼리지만, 그 정도 아니면 다 신고하려 하죠. 한국은 위험 신고를 좀 창피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긴 그렇진 않아요.”

—배마다 고유한 위험 요소를 관리한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선내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배 안에 위험도가 큰 반복 작업이 많거든요. 그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만 번을 했겠어요. 각자가 축적한 시행착오를 작업 허가서에 추가하는 거예요. 그 작업의 안전 절차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거죠. 어떤 배의 크레인을 사용한다고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 배의 크레인은 낡아서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사용하지 말라, 저렇게 작업하는 것이 더 낫다’ 하는 내용이 인수인계서에 굉장히 자세하게 적혀 있어요. 배마다 특성을 반영한 ‘세부 절차’가 다 따로 있는 거예요.”

영국 선사 시피크 소속 선장 이동현(한가운데)씨가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현씨 제공

영국 선사 시피크 소속 선장 이동현(한가운데)씨가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현씨 제공


—여러 선박사고 조사 보고서도 평상시에 볼 기회가 많다고요.
“한국의 사고 보고서뿐만 아니라 전세계 선박사고 보고서를 볼 일이 많아요. 시사점 있는 주요 사고들을 회사에서 자주 공문으로 돌리거든요. 그걸 아침 미팅 시간에 선장과 기관장, 시니어 사관 등이 다 모여서 체크해요.”

—2021년 1월 한 화물선이 화물을 가득 싣고 악천후에 출항했다가 전복된 사고가 있었어요. 선장이 우려했는데 선주가 괜찮다고 밀고 나간 경우죠. 이처럼 육상의 경영진과 해상 선원들의 위험 인식이 다를 수 있을 텐데요. 그 차이를 좁히는 절차가 있나요.
“우리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우리 회사 배가 중국에 입항하려는데 사방에 짙은 안개가 낀 거예요. 모든 선박이 입항을 멈추고 앵커링(닻내림)을 하고 있었죠. 점점 안개가 걷히니까 포트컨트롤(선박통항관제센터) 쪽에서 입항 오케이(OK) 사인이 떨어졌어요. 주변 배들도 들어가기 시작했고요. 근데 우리 회사 쪽 선장이 버텼어요. 입항하기엔 시야가 아직 안 좋다고 판단했죠. 나중에 회사 호출을 받았을 때 선장이 안개 낀 시야를 사진으로 쭉 보여줬더니 아무 징계도 안 받았어요. 근거가 합리적이면 회사도 이해해줘요.”

—한국은 선원에 대한 교육과 투자가 잘 안 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2019년 골든레이호 전복 사고도 1등항해사가 복원값 계산 방법을 한 번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죠. 영국은 선원 교육을 어떻게 하나요.
“선원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해요. 제가 영국으로 교육 한 번 받으러 가면 비행기삯, 숙박비 다 해서 거의 1천만원 들거든요. 근데 그걸 6년 동안 15번 넘게 갔어요. 진급 테스트가 엄격한 대신 합격하고자 하는 선원에겐 아낌없이 교육해주죠. 한국에선 그런 훈련을 최소화하잖아요. ‘이걸 못 들으면 배를 못 탄다’ 하는 과목들 위주로 듣죠. 심지어 선기장(선장과 기관장) 진급하는 데도 테스트가 없거든요.

사실 관문을 높이려면 그만큼 메리트도 줘야 해요. 처우가 좋아야 그만큼 고생해가며 위로 올라갈 거잖아요. 근데 한국은 선원들 처우가 너무 안 좋다보니 다들 빠져나가요. 그러면 남은 사람들에게도 진급 규정을 강화하기가 어렵거든요.”

선원 일자리 투자가 곧 안전 투자

—선원 일자리의 질이 안전과도 연관될까요.
“영향을 많이 미치죠. 선원의 피로도랑 교육 투자 면에서요. 영국에선 3개월 승선하고 3개월 쉬거든요. 쉴 때도 100% 월급이 다 나와요. 선원 피로도도 덜하고 교육받을 열의도 있죠. 한국에선 배를 8개월∼1년씩 타고 쉴 때도 100% 월급이 안 나와요. 그렇게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선원들이 어떻게 안전을 따지고 질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 하겠어요. 선원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교육 투자도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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